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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농촌 접수, 국민은 안방 고수

[미래 르뽀]농촌과 농민이 사라진 나라

등록|2009.04.16 20:48 수정|2009.04.16 20:48
2009년 4월 6일.

막벌이 노동자 김씨가 주위 도움을 얻어 귀농을 결심하고 경상북도 예천에 밭을 계약한 날, 일간지 귀퉁이에 아주 작은 기사(상자기사 참조)가 몇 줄 실렸다.

대기업, 농축산업에 뛰어드나

민관 합동기구인 '대규모 농어업회사 육성추진위원회'는 5일 전북 새만금 지구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동부 계열사인 동부하이텍 컨소시엄 등 7곳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농어업회사로 선정된 기업은 새만금과 영산강지구 1413만㎡땅의 일정 부분을 정부로부터 30년 동안 빌려 농축산물을 생산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사업자 선정이 대기업의 농업 진출 길을 정부가 열어줬다는 점에서 일부 논란도 예상된다.


설마 대기업이 농사까지 짓는다고? 1970년대 '용인자연농원'이란 이름으로 삼성이 축산업에 뛰어들고, 현대가 '서산농장'을 운영하다 국민들 눈총으로 그만 둔 적이 있었으니... 신문을 읽던 김씨는 어쩌면 '이번에도 대기업이 (농축산업에) 뛰어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만의 걱정이 아닌 듯, 다음 날 많은 농민단체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반대했다. 

농민들이 반대하는 뜻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단위 기업농은 소규모 농가를 무너뜨리고 알뜰히 가꾸던 농촌경관과 땅의 황폐화를 가져온다. 현재 농가는 (농민과 직계 가족들이) 먹을 작물을 직접 재배하므로 마을 농토를 구석구석 가꾸지만, 대기업농은 작물을 판매대상으로만 여겨 수익성을 따져 농토를 활용하는 자본논리로 움직인다. 대기업농이 자투리 땅이나 텃밭같은 곳에 신경쓸 일은 없을 테니 소농이 알뜰히 가꾸던 농촌마을이 우거진 풀숲에 갇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둘째, 대단위 기업농은 농촌사회를 소수의 대기업농과 농업임금노동자로 양분한다.
대단위 기업농으로 바뀌면 자급농업은 사라지고 농촌은 농작물 판매를 내세우는 소수의 대기업농과 -기계가 처리하지 못하는 일부 농사일만 떠맡는-농업임노동자로 나눠진다.
얼마남지 않은 농민은 이제 직업군에서조차 빠지고 말 처지다.

셋째, 국토의 슬럼화가 진행되고 도시민은 갈 곳이 없어진다.
땅 한뙈기 갈아먹을 것이 없는 농민들은 농촌 주변 소도시로 밀려나고 농촌마을은 빈집만 남게 된다. 경관이 좋은 일부 지역만 대기업농에서 운영하는 값비싼 농촌체험을 앞세운 휴양-위락시설로 존재할 뿐이다. 농촌은 돈 있는 일부계층만 찾는 곳이 될 터. 마음을 달래러 누구나 편히 찾던 농촌, 농업으로 제2의 삶을 걷고자하는 도시 사람들은 앞으로 찾아 보기 힘들 것이다.

농민들이 도시로 올라왔다. 주요 도시마다 시위를 하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기업이 농업에 진출하는 일에 함께 반대해 줄 것을 당부했다. 시위는 몇달 간 계속됐다. 도시 사람들은 출퇴근길 불편은 입 밖에 내면서도, 정작 농민들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버려진 비닐하우스사람 손길이 가지 않은 농촌은 금세 풀숲 차지이지요. ⓒ 김시열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농촌주요 작목인 유기농 한우를 비롯해 유기농 양돈, 보리, 고구마, 사료작물에서 쌀까지 거의 모든 농업과 농촌은 대기업이 속속 접수했다.

소농으로는 외국 농가와 경쟁이 되지 않으니 '대단위 기업농으로 경쟁력 있는 작물을 재배하고 수출길을 열어야 농촌과 농민이 살 길'이라는 논리를 앞세웠다. 대기업이 주장하는 경쟁력의 핵심은 농토의 크기였다.  

8000만 인구에 농민 30만인 나라

캐나다 1개 농가 면적이 평균 500ha인데 한국은 김씨가 귀농한 경북 예천군 보문면에 있는 밭 면적을 다 합쳐봐야 586ha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업농이 대지주로 있는 언론들은 "작은 덩치로 (캐나다 농가와 같은)거인을 상대하겠다고?" 윽박지르며 김씨 같은 소규모 자영농은 땅을 대기업농에 넘기고 농촌을 떠나라고 등을 떠밀었다. 결국 322만이던 농촌인구가 30만으로 줄었다. 2009년 당시 농촌인구의 40%가 60세를 넘은 노인들이었으니 예상은 했지만... 농촌인구가 거의 없어질 지경까지 오리라곤 짐작조차 못할 일이었다. 
                    
환경부에서는 도시민들이 농촌마을을 드나들 때마다 환경부담금을 걷어서 대기업에 [농촌지역환경보존 및 농업육성기금]이란 이름으로 지원했다. 농촌에서 흔히 보던 장례 행렬은 화장이 대중화된 탓도 있겠지만 대기업농 울타리에 막혀 사라진 풍습이 되고 말았다.
논두렁에 가서 메뚜기를 잡거나 누런 나락을 뒤로하고 사진 찍는 것조차 허가를 받아야 했다. 농업경영에 대한 노하우가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농촌은 더 이상 아무나 자유롭게 넘나들며 맑은 공기를 쐬던 곳이 아니다.
농촌마을 곳곳마다 「 ㅇㅇ 농장」이란 이름 아래 울타리를 치고 출입을 막았다.

2019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덮친 가뭄으로 중국,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식량파동을 기점으로 대부분 나라가 식량수출을 멈추고 자급자족체제로 들어갔다.
이제 채소와 곡물은 대기업농이 부르는 것이 값이다. 김씨처럼 농사를 지어본 어르신이나 농업노동자들은 비탈 밭이나 다랑논을 빌려 채소나마 갈아먹고 싶어도 대기업에서 독점한 씨앗을 (값싸게)구할 길이 없었다. 이웃이 준 모종을 함부로 심다 대기업농 직원 눈에 뜨이기라도 하는 날이면 몇 배의 로얄티를 물어야했다. 농산물을 값싸게 먹을 수 있으리란 예상과 기대는 터무니없이 빗나갔다.

넓고 탁 트인 농지를 위해 논두렁을 밀어버리고 올망졸망한 논배미를 하나로 묶어버리자 큰물이 기다렸다는 듯 여름철마다 거침없이 농촌 마을을 헤집었다. 대기업농은 인체에 해가 없는 저농약/무농약이란 안내방송을 되풀이하며 무인 경비행기로 한 달에 서너 차례씩 땅을 훑듯이 지나가며 농약을 뿌렸다. 억새가 들어찬 땅이 늘고, 대기업농은 하나 둘 발을 뺐다. 버려진 농장이 늘어만 갔다. 

"농사지을 땅을 달라!"... 43년 전, 브라질 카라자스에서 울린 피맺힌 외침이 오늘 한국에서 울려 퍼진다.
덧붙이는 글 카라자스 학살 - 1996년 4월 17일 브라질 엘도라도 카라자스에서 땅없는 농업노동자 19명이 경작하지 않는 농장을 점거하고 '농사지을 땅을 달라!"는 요구를 하며 행진을 하던 중, 브라질 군경이 이들을 포위하고 총으로 쏴서 죽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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