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월명공원에는 '절골'도 있습니다
절골 할머니 "아랫녘으서 벌어먹을라고 이사왔지유"
엊그제는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벚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궁금해서 월명공원에 올라 두 시간 가까이 거닐었는데요. 산책로 주변 개나리는 노랗게 피었는데 벚꽃은 아직 꽃망울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군산 월명공원은 개나리와 벚꽃으로 유명합니다. 전망이 좋고 숲이 잘 조성되어 있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공원인데요. 한때는 강 건너 장항제련소 굴뚝까지 붉게 물들인 석양 노을이 사진작가들을 흥분시켰던 곳이기도 합니다.
흥천사를 끼고 공원에 오르면 금강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금강하굿둑이 가물가물하게 보입니다. 좌측 산책로는 수시탑, 장계산, 점방산을 지나 은파유원지까지 이어지는데요.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수림이 뛰어나 산책이나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시작 장계산 월명산을 지나는 산책로는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이 만개해서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데요. 벚꽃축제가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대부분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고 있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주말에나 만개할 듯싶네요.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5월이 되면 공원과 월명산 일대는 폭설이라도 내린 것처럼 아카시아 꽃이 장관을 이루었고 감미로운 아카시아향이 진동했습니다. 따라서 꿀의 여왕이라는 아카시아 꿀로 재미 보는 집들이 많았는데요. 양봉하는 아저씨와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나 웃음이 나왔습니다.
가난뱅이들이 사는 동네로만 알았던 '절골'
비둘기 집에서 수시탑을 지나 장계산 방향으로 걷다가 채만식 문학비가 있는 조각전시장에서 발길을 돌려 군산여고 쪽으로 내려오면, 골목 사이에 크고 작은 집들이 얽히고설켜 있는데요. 개 짖는 소리가 정겨운 '절골'이라는 산동네입니다.
군산에 살면서도 신흥동은 알아도 절골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공원에 자주 갔던 저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산동네, 점쟁이들이 많이 사는 산동네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신흥동이니까 동명(洞名)을 부르면 됐지 구태여 절골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몰라 궁금해하기도 했지요.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로 불리기도 했고, 난민촌이기도 했던 절골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 주택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올해 77세가 되는 큰 누님이 세상 물정 모르는 열다섯 살에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동네라서 달리 느껴지더군요.
어린 나이에 가난한 동네로 시집가서 시어머니 시중을 들던 얘기, 시누이의 질투로 속상했던 얘기, 한국전쟁을 겪었던 얘기 등을 해주던 누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노인성 치매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요. 공원에서 사진도 찍고 자장면도 사주었던 누님 얼굴이 만개한 목련 사이로 잠시 나타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차돌이 많아 '차독산'이라고 했던 산줄기와 연결된 절골은 옛날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왜놈들이 지은 절(흥천사)은 아이들 유치원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선조들이 남겨놓은 유적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니 잠시나마 죄인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군산에는 절골, 째보선창, 백두게, 독점재, 사챙이 다리, 둔배미, 콩나물 고개, 덜컥 다리, 설애, 감도가, 궁멀, 아흔아홉 다리, 팔마재, 흙구더기 등 순수한 우리말 지명이 많은데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한자로 바뀐 지명을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하고 전망이 좋기로 소문난 군산 월명공원, 가족동반 나들이나 산책을 한 번 가더라도 조상의 얼과 전통문화까지 말살하려 했던 왜놈들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절골에서 만난 '젊은 할머니'
이집저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정겨운 동네(절골)를 지나다가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심는 아주머니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요. 탤런트 김수미 씨가 살았던 동네를 묻는 말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주머니, 밭에다 무엇을 심고 계세요. 이 동네가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로 나왔던 탤런트 김수미가 살았던 동네라고 하는데 그녀가 살았던 집을 알고 계시나요?"
"나는 옛날에 광양에서 이사와 가꼬 잘 모르는디유, 쩌기 저짝길로 쭈욱커니 가다보믄요, 아파트 지나서 이런 꼴창이 하나 있고 두 개 차에 있는 동네에서 살았다고 허는디, 나는 깜깜하죠."
말씨가 경상도 억양이라서 딱딱할 줄 알았는데 무척 살가웠는데요. 밭주인 친구가 지어 먹으라고 해서 며칠 전에는 열무를 심었고, 상추를 심고 있는데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니까 곧 따먹을 것이라며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저 뒤에 심겨져 있는 것은 보리 같은데요, 어림잡아 두어 가마는 나올 것 같습니다. 언제쯤이나 거둬먹나요?"
"글쎄요, 보리는 여름에 먹으니께. 나는 농사를 안 져봐서 잘 모르것는디유, 대강 예산을 해보믄 한 가마는 나올 것 같으네, 한 가마···."
옛날에는 산골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언제부터 살았냐며 나이를 물으니까 수줍게 웃더니 예순일곱 살이라며 "저그 저 고향 아랫녘으서 벌어먹을라고 이사왔지유, 그러니께 한 사십년 살은 것 같은디유."라고 말했습니다.
"청구목제랑 나무공장이 많았던 그때는 돈벌이가 좋았어유, 선창에 나가믄 배들이 새우랑 조기랑 많이 잡아왔응께. 조개도 많이 나와서 나가기만 허믄 요새 돈으로 5만 원은 우습게 벌었지. 연탄 100장에 2천5백 원씩 헐 때였응께 애들 넷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지유."라고 말하는 아주머니 얼굴에는 세월의 나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67세라면 할머니인데 무척 젊게 보이니까 '젊은 할머니'라고 해야겠네요."라고 했더니 "옛날에 일만 해먹느라 골병만 들어가꼬···." 라며 한숨을 내리 쉬더니 "그래도 젊으면 좋은 게지요."라며 활짝 웃더군요.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아낙네가 걸어오자 뭐라고 했는데 말이 너무 빨라 알아듣지 못했으나 의미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낙이 이를 해 넣으려고 치과에 간다니까 "언능 갔다 온나 많이 먹게"라며 웃는 젊은 할머니에게서 진정한 이웃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젊은 할머니 얘기만 듣고는 고향이 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충청도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억양은 경상도가 분명한데, 말하는 것을 보면 전라도 같고, 끝맺음은 충청도 말씨라서 도통 헷갈렸는데요. 다음에 또 뵙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 월명공원 비둘기집에서 바라본 금강, 금강은 충청도와 전라도 경계이기도 한데요. 해상공원이 들어설 해망동 수협 앞 인공섬(해상매립지)은 군산의 꿈이기도 합니다. ⓒ 조종안
▲ 군산 월명공원의 상징 ‘수시탑’. 바람에 나부끼는 돛 모습과 번영을 상징하는 수시탑은 오후 6시가 되면 경관조명이 밤 12시까지 가동되어 웅장한 야경과 항구도시의 웅장함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 조종안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군산 월명공원은 개나리와 벚꽃으로 유명합니다. 전망이 좋고 숲이 잘 조성되어 있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공원인데요. 한때는 강 건너 장항제련소 굴뚝까지 붉게 물들인 석양 노을이 사진작가들을 흥분시켰던 곳이기도 합니다.
공원에서 시작 장계산 월명산을 지나는 산책로는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이 만개해서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데요. 벚꽃축제가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대부분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고 있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주말에나 만개할 듯싶네요.
▲ 산책로에 활짝 핀 개나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공원의 운치를 더하는데요.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시기는 주말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조종안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5월이 되면 공원과 월명산 일대는 폭설이라도 내린 것처럼 아카시아 꽃이 장관을 이루었고 감미로운 아카시아향이 진동했습니다. 따라서 꿀의 여왕이라는 아카시아 꿀로 재미 보는 집들이 많았는데요. 양봉하는 아저씨와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나 웃음이 나왔습니다.
가난뱅이들이 사는 동네로만 알았던 '절골'
▲ 공원에서 절골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햇볕을 많이 받아서인지 주변에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 조종안
비둘기 집에서 수시탑을 지나 장계산 방향으로 걷다가 채만식 문학비가 있는 조각전시장에서 발길을 돌려 군산여고 쪽으로 내려오면, 골목 사이에 크고 작은 집들이 얽히고설켜 있는데요. 개 짖는 소리가 정겨운 '절골'이라는 산동네입니다.
군산에 살면서도 신흥동은 알아도 절골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공원에 자주 갔던 저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산동네, 점쟁이들이 많이 사는 산동네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신흥동이니까 동명(洞名)을 부르면 됐지 구태여 절골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몰라 궁금해하기도 했지요.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로 불리기도 했고, 난민촌이기도 했던 절골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 주택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올해 77세가 되는 큰 누님이 세상 물정 모르는 열다섯 살에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동네라서 달리 느껴지더군요.
어린 나이에 가난한 동네로 시집가서 시어머니 시중을 들던 얘기, 시누이의 질투로 속상했던 얘기, 한국전쟁을 겪었던 얘기 등을 해주던 누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노인성 치매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요. 공원에서 사진도 찍고 자장면도 사주었던 누님 얼굴이 만개한 목련 사이로 잠시 나타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차돌이 많아 '차독산'이라고 했던 산줄기와 연결된 절골은 옛날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왜놈들이 지은 절(흥천사)은 아이들 유치원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선조들이 남겨놓은 유적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니 잠시나마 죄인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군산에는 절골, 째보선창, 백두게, 독점재, 사챙이 다리, 둔배미, 콩나물 고개, 덜컥 다리, 설애, 감도가, 궁멀, 아흔아홉 다리, 팔마재, 흙구더기 등 순수한 우리말 지명이 많은데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한자로 바뀐 지명을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하고 전망이 좋기로 소문난 군산 월명공원, 가족동반 나들이나 산책을 한 번 가더라도 조상의 얼과 전통문화까지 말살하려 했던 왜놈들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절골에서 만난 '젊은 할머니'
이집저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정겨운 동네(절골)를 지나다가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심는 아주머니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요. 탤런트 김수미 씨가 살았던 동네를 묻는 말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 밭에다 상추 심는 ‘젊은 할머니’. 며칠 전에 심은 열무와 상추가 잘 자라주는 게 할머니의 가장 큰 꿈인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의미가 되겠네요. ⓒ 조종안
"아주머니, 밭에다 무엇을 심고 계세요. 이 동네가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로 나왔던 탤런트 김수미가 살았던 동네라고 하는데 그녀가 살았던 집을 알고 계시나요?"
"나는 옛날에 광양에서 이사와 가꼬 잘 모르는디유, 쩌기 저짝길로 쭈욱커니 가다보믄요, 아파트 지나서 이런 꼴창이 하나 있고 두 개 차에 있는 동네에서 살았다고 허는디, 나는 깜깜하죠."
말씨가 경상도 억양이라서 딱딱할 줄 알았는데 무척 살가웠는데요. 밭주인 친구가 지어 먹으라고 해서 며칠 전에는 열무를 심었고, 상추를 심고 있는데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니까 곧 따먹을 것이라며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저 뒤에 심겨져 있는 것은 보리 같은데요, 어림잡아 두어 가마는 나올 것 같습니다. 언제쯤이나 거둬먹나요?"
"글쎄요, 보리는 여름에 먹으니께. 나는 농사를 안 져봐서 잘 모르것는디유, 대강 예산을 해보믄 한 가마는 나올 것 같으네, 한 가마···."
옛날에는 산골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언제부터 살았냐며 나이를 물으니까 수줍게 웃더니 예순일곱 살이라며 "저그 저 고향 아랫녘으서 벌어먹을라고 이사왔지유, 그러니께 한 사십년 살은 것 같은디유."라고 말했습니다.
"청구목제랑 나무공장이 많았던 그때는 돈벌이가 좋았어유, 선창에 나가믄 배들이 새우랑 조기랑 많이 잡아왔응께. 조개도 많이 나와서 나가기만 허믄 요새 돈으로 5만 원은 우습게 벌었지. 연탄 100장에 2천5백 원씩 헐 때였응께 애들 넷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지유."라고 말하는 아주머니 얼굴에는 세월의 나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67세라면 할머니인데 무척 젊게 보이니까 '젊은 할머니'라고 해야겠네요."라고 했더니 "옛날에 일만 해먹느라 골병만 들어가꼬···." 라며 한숨을 내리 쉬더니 "그래도 젊으면 좋은 게지요."라며 활짝 웃더군요.
▲ 젊은 할머니가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이웃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뒤에 주차한 자가용이 작은 동네도 빈부 차이가 심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조종안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아낙네가 걸어오자 뭐라고 했는데 말이 너무 빨라 알아듣지 못했으나 의미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낙이 이를 해 넣으려고 치과에 간다니까 "언능 갔다 온나 많이 먹게"라며 웃는 젊은 할머니에게서 진정한 이웃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젊은 할머니 얘기만 듣고는 고향이 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충청도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억양은 경상도가 분명한데, 말하는 것을 보면 전라도 같고, 끝맺음은 충청도 말씨라서 도통 헷갈렸는데요. 다음에 또 뵙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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