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이 '식상'하다고? 애초 섭외는 왜 했나
[주장] 10년을 넘어 20년 전 5공화국으로 가고 있는 KBS
▲ 최근 8집 <공존>을 발매하고 활동을 재개한 YB(윤도현 밴드)의 윤도현(보컬) ⓒ 유성호
혹시 중견배우 박용식을 기억하는가? 그는 지금은 없어진 TBC 공채탤런트 4기 출신으로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 인자한 교장 선생님이나 훈훈한 동네 아저씨로 자주 등장했었다. 영화 <연애술사>에선 오윤아의 아버지로 등장해 모텔 카운터에 서서 딸의 남자친구에게 현금이나 카드를 받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던 그.
이름과 출연작만 들어서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 분들을 위해 결정적인 힌트를 하나 더 드리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닮은 사람'이라고 하면 이름과 얼굴이 매치가 될는지?
이유는 간단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생김새가 흡사했기 때문이다. 고작 그 이유 하나로, 그는 유일한 생계 수단을 잃어야 했다. 탤런트가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하니 살길이 막막했다. 그 시절 그는 생계를 위해 방앗간을 하며 참기름도 짰다고 한다.
연세 지긋한 노(老)배우들이 방송에 출연하여 군사독재 시절 있었던 방송 일화 등을 이야기할 때면 그 시절을 겪지 못했던 요즘 사람들은 놀라움 반 재미 반으로 폭소를 터뜨리곤 한다. 반공 드라마를 찍는데 유명 영화배우를 섭외하려니까 배우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게 싫어 스케줄을 이유로 거절했단다. 그러자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 직원이 배우 스케줄을 확인해 은근히 협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통령 욕하는 걸 취미생활로 즐기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려 더 재밌었던 건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세월 지나 5공화국 때로 달려가는 방송가
그런데 요즘, 조짐이 심상치 않다. 보수 세력에게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이 너무 뼈아팠던 것일까? 1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5공화국의 그 시절인 20년 전으로 회귀하려는 모양새가 방송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특히 얼마 전 8집 앨범을 내고 활동을 시작하려는 가수 윤도현 밴드(YB)의 윤도현은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KBS 관련 프로에서 줄줄이 출연 취소 조치를 당했다. 12일 녹화하기로 되어 있던 <1대100>은 7일 갑작스레 출연 불가 통보를 받았고, 22일 잡혀 있던 <비타민> 역시 출연이 취소됐다.
가수가 새 앨범을 내면 여러 예능 프로에 출연하여 앨범 발매 소식을 알리는 게 보통이다. 공연을 중심으로 하는 윤도현이라고 해도 활동 초반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것은 원활한 앨범 활동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돌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방송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연예인이 제작진에게 갑작스레 출연 번복 통보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런데 이번처럼 작가 미팅까지 다 마친 상황에서 제작진이, 그것도 윤도현 씩이나 되는 연예인에게 출연 취소 통보를 하는 일은 정말 드문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윤도현을 곱지 않게 보는 KBS 윗선의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윤도현이 지난해 촛불집회를 지지하고 직접 참가하여 노래를 부르는 등 현 정권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윤도현의 방송 출연이 불편한 게 아니겠냐는 것이다.
정권 비판한 윤도현이 '그렇게' 눈에 거슬렸나
▲ <오마이뉴스>는 4월 1일 오후 4시 30분 YB(윤도현 밴드)와의 인터뷰를 생중계한다. ⓒ YB ROCKS
실제로 윤도현과 KBS의 찜찜한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 윤도현은 자신이 7년째 진행하던 음악 프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갑작스레 하차했다. 당시는 KBS에 이병순 사장이 취임하고 가을 개편으로 <미디어포커스> <생방송 시사투나잇> 같은 진보적 성향의 시사 프로들이 연달아 폐지되던 때였다.
당시에 대외적으로는 윤도현의 공연 준비와 앨범 제작 문제 때문이라고 밝혀졌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윤도현의 하차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은 후속 프로 <이하나의 페퍼민트> 진행을 맡게 된 이하나의 섭외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봄 개편으로 종영이 결정된 <이하나의 페퍼민트>의 진행자 이하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 프로 진행을 맡아달라는 섭외 요청을 방송 10일 전에 받았다"고 했다. 게스트로 1회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를 최소 6개월 이상 이끌어 갈 MC의 출연 섭외를 방송 10일 전에 급박하게 했다는 건, 그만큼 윤도현의 하차 결정이 갑작스러웠다는 말이 된다.
윤도현의 이번 8집 앨범 '공존(共存)' 역시 다분히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가사가 담겨진 노래가 많다. 앨범의 두 번째 수록곡인 '88만원의 Losing game'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88만원 세대로 통칭되는 젊은 세대의 실업난과 현 정권의 무기력한 청년 실업 대책을 비판하고 있다. 세 번째 수록곡 '깃발'은 거칠고 직설적인 가사로 용산참사를 다뤘고, 여섯 번째 곡 '후회 없어'는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윤도현은 정치성과 사회성이 짙은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설득력 떨어지는, 궁색하기 그지 없는 KBS의 변명
윤도현의 이번 KBS 출연 불가와 관련해 <1대100>의 제작진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도현씨는 그동안 KBS의 다른 프로에도 많이 출연해 더 낫고 참신한 다른 출연자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며 외압설을 부인했다. MC며 게스트며 가릴 것 없이 만날 보던 얼굴들이 몇 년째 그대로인 방송가 예능 현실에서 새 앨범을 들고 오랜만에 방송 출연을 하는 윤도현이 그렇게나 '식상'하게 보였던 걸까? 그렇다면 애초에 섭외는 왜 했을까? 참 설득력이 떨어지는, 궁색한 해명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개그맨 최양락은 KBS <상상플러스>에 출연해서 5공화국 당시 어려웠던 방송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대머리', '주걱턱', '순자'라는 말이 방송에 쓰일 수 없던 그 시절, '실업자', '백수'가 나올 수 없었던 그 시절, 늙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만 해야 했던 그 시절, 어떤 배우가 대통령과 닮았단 이유만으로 10년 넘게 방송에 출연조차 하지 못했던 그 시절.
정권에 비판적인 윤도현은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프로의 제작진으로부터 돌연 출연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러다 한 20년 쯤 후에, 개그우먼 안영미가 방송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까?
"다행인줄 알아, 이것들아~ 우리 땐 '쥐', 'MB(메가바이트)' 이런 말 방송에서 상상도 못 했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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