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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지만 버릴 수 없는 매력, 자전거 출퇴근!

[자전거 릴레이기획 ②] 9년째 자출 전태일 교수와 동행 출근

등록|2009.04.11 14:18 수정|2009.04.11 15:15
<오마이뉴스 대전충남>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다양한 대전 시민들을 동행 취재하고 이용 현황을 점검해 안전한 이용을 돕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 오늘의 자전거 출퇴근의 대략적인 코스(정부청사 - 대전대) ⓒ 야후 지도찾기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른 월요일 새벽 6시. 이 시간에 일어나 본 적이 언제였던지, 부스스한 머리를 한 번 만지고,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고 빠르게 세면을 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장갑과 카메라, 그리고 수첩을 챙긴 채 집을 나섰다.

어느새 6시 30분, 재충전하라고 주어진 주말이건만 다들 주말에 사연을 간직한 듯 회사 가는 이들도, 학교 가는 이들도 눈이 퀭하기만 하다. 교촌동에서 마을버스 3번을 타고 가서 구암역에서 내렸다. '환승입니다'라는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난 정부청사 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날 아침 라디오 뉴스에선 북한의 위성발사 논란을 꽤 흥분된 목소리로 전했지만,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엔 정적만이 가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동차 안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조그마한 소리라도 내면 안 될 듯한 그런 정적이 출근길엔 흐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자전거 좀 빌리려고 왔는데요!"
"잠시만요. 어르신, 이쪽에 들어오셔서 신분증 주시고, 사인하고 가셔야 돼요."

대전지하철에서 자전거를 빌려주는 사업은 이른 아침인데도 성황리(?)에 진행 중이었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은 자전거를 한 어르신이 유심히 살펴보고 계셨다.

'양심자전거'.

녹색에 작은 바퀴를 지닌 자전거는 그렇게 오늘 나와 하루를 같이 하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그리고 KT 건물이 있는 정부청사역 2번 출구를 향해 나는 자전거와 함께 걸어나갔다.

'아, 하늘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구를 빠져나오면서 빼꼼 보인 하늘, 아침에 본 사람들이 눈빛만큼이나 퀭해 보인다. 황사인지, 매연인지…. 대전의 오마주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린 것만 같았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나 볼 법한 복장을 한 전태일 교수

▲ 둔산동 자전거 도로의 모습, 제법 많은 곳에 자전거 도로는 설치되어 있지만 인도와의 구분이 없고 충돌을 걱정해야 되는 자전거 이용자들은 이 도로를 이용하는게 썩 내키지 않는다. ⓒ 고두환


오전 7시 10분, 약속시간보다 10분이나 빨리 도착했건만 전태일 대전대학교 교수(전산정보보호학)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자전거용 슈트, 헬멧, 장갑과 천으로 된 복면, 튼튼해 보이는 자전거엔 렌턴과 속도계가 달려 있었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나 볼 법한 복장을 한 그와 나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난 오늘 그의 출근길을 함께 할 생각이었다.

"보통 정부청사에서 대전대까지 제 속도로 가면 40분 정도가 걸려요. 보통 시속 20㎞ 정도 되는 속도로 가거든요. 그런데 기자님과 함께 가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할테니까 여유있게 가보죠."

출근길, 세 글자에서 밀려오는 각박함을 그는 조용히 씻어주었다.

처음 만난 둔산동의 길, 대전에서 제법 자전거도로가 잘 설치되어 있고 이용 시민도 많은 이곳은 그래도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호의적인 곳이었다. 길거리 어디에서나 자전거 전용도로 팻말을 찾아볼 수 있었고, 횡단보도에는 자전거 전용 건널목이 그려져 있을 정도였다. 대전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둔산동 쪽에 올 일이 없는 나로서는 상당히 독특한 체험이었다.

▲ 둔산동 자전거 전용 횡단보도의 모습, 최근 자전거 출퇴근자를 위한 여러 정책들이 이처럼 펼쳐지고 있다. ⓒ 고두환


"둔산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배려를 많이 한 지역이에요, 그렇다고 안심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동네도 아니죠."

그의 말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정부청사를 나서자 곧 아파트 단지가 많은 곳으로 들어섰다. 자전거도로가 표시되어 있는 곳은 너무 비좁아서 보행자와 자전거가 함께 다닐 수 없고 왕복 4차선인 도로에는 불법 주차된 차들과 쌩쌩 달리는 차들 때문에 자전거가 내려서기 쉽지 않은 처지였다. 그 상태에서 전태일 교수는 찻길을 선택했다.

"자전거는 차로 인식이 돼요. 인도에서 사람과 부딪히면 차와 부딪힌 것으로 처리가 되죠. 차도에서 차와 부딪혀도 차와 차가 부딪힌 것으로 처리가 돼요."
"자전거 전용 도로는 어떤가요?"
"보통 여러 이유 때문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인도에 함께 설치되죠. 그리고 사람들 역시 좁은 인도에 함께 설치된 자전거 전용 도로를 아무 생각 없이 걷게 되고요. 그러면 자전거와 사람은 부딪히기 십상이죠. 그리고 부딪히면 무조건 자전거에게 불리할 뿐이에요."

"자전거는 차로 인식이 돼요"

그래서일까. 출근길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곤 했는데 대부분 차도를 이용했다. 나무뿌리나 엉성한 포장으로 울퉁불퉁한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특히 장거리 출퇴근자들은 충격으로 엉덩이가 아프고 쉽게 균형을 잃어서 너무 피곤해지는 게 인도를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였다.

"요즘 만들어지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인도도 차도도 아닌 곳에 세워지죠. 충남대에서 유성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그 좋은 예죠. 하지만 기존의 도로는 그렇지 않아요. 둔산동은 그나마 인도에라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지만 시내나 동구쪽은 많이 취약해요. 출퇴근에 자전거를 이용하긴 힘든 실정이죠."

요즘 정부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에 맞추어 수많은 곳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고 있지만, 실상 매일 생활 속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사정은 그리 나아져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막상 차도에 내려와 달리기 시작하니 여간 위험한 게 아니었다. 택시들은 위협적으로 경적을 울려댔고, 아파트 입구에서 나오는 차들은 불법주차된 차들 때문에 보이지 않기 일쑤였다. 일일이 속도를 늦춰서 가다가는 출퇴근에 자전거를 절대 이용하지 못할 아이러니한 상황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결국 10년 가까이 자전거 출퇴근을 한 전태일 교수가 능숙한 솜씨로 길잡이에 나서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그래도 도로 사정상 인도로 가야 되는 경우가 있었다. 삼거리나 복잡한 차선 도로를 피해야 할 때도 있다. 그곳을 쌩쌩 달리는 차 가운데서 배겨낼 자전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생각 없이 인도로 올라서려는 순간, 내 자전거는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조심하셔야 돼요. 인도에 턱이 있는데 이게 말끔한 게 처리된 곳도 있고 안 된 곳도 있거든요, 익숙해진 사람들이야 요령껏 타지만 초보자들한테는 정말 위험하죠."

그 때 아차 싶어서 생각이 든 것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이었다.

얼마쯤 달렸을까. 처음 몇 번은 자전거에서 내려서 건너던 횡단보도도 출근길에 늦어질까봐 그냥 자전거를 타고 건넜다. 짧은 거리인데도 몇 번 위협적인 상황을 맞이하면서 우린 겨우 둔산에서 대전 시내로 이어지는 하상도로에 들어설 수 있었다.

▲ 사람과 자전거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하상도로. 복잡한 도심에서 자전거가 숨쉴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이다. ⓒ 고두환


하상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비교적 잘 갖춰진 곳이고, 습지가 조성되어 자전거를 타기 그만인 곳이었다. 다만 일반도로에서 하상도로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차를 위한 길만 뚫려있고, 자전거는 그 찻길을 위험천만하게 건너야 했다. 문제는 출근길에 쌩쌩 달리는 차들이 자전거가 건너게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10분을 넘게 기다려도 못 건널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지금은 제법 운전자들이 자전거가 지나갈라치면 기다려주기도 해요. 그만큼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아졌구요."
"실제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나요?"
"그럼요. 10년 전엔 정말 몇 명 못보곤 했는데 지금은 자전거 출퇴근자들이 정말 많이 늘어났어요. 자전거 전용도로에 꽤 많은 출퇴근자들이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빨리 가려는 사람들은 추월도 할 정도죠."

"자전거 출퇴근자들이 정말 많이 늘어났어요"

하상도로로 들어서니 그의 말대로 많은 이들이 자전거로 달리고 있었다. 쌀집 자전거(?)에 평범한 차림으로 달리는 할아버지, 아침 운동을 나온 아주머니도 많았지만 전태일 교수처럼 전문적인 복장을 갖추고 달리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 전태일 대전대 교수의 자전거 출퇴근 복장, 처음엔 이 요란한 복장의 용도를 잘 알지 못했다. ⓒ 고두환

"전문적으로 복장을 입는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나도 그랬어요. 왠지 요란한 것 같기도 하고, 유별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자전거를 타다 보니 보온도 신경써야 되고,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헬멧도 꼭 써야 되다라고요. 그리고 퇴근길에는 어두우니까 혹시 모를 사고 위험 때문에 나를 최대한 눈에 띄게 해야 되거든요. 그러니 야광이 들어간 옷을 입게 되고 랜턴도 달게 되죠. 그런 기능성 옷이나 장비를 찾다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더라고요."

하긴, 일상복을 입고온 나는 5㎞ 정도를 지나면서부터 옷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옷을 좀 두텁게 입었는데도, 바람 때문에 제법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복장을 갖춰 입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느 새 봄은 우리 곁에 성큼 와 있었다. 습지엔 끝도 없이 개나리가 피어 있고, 신록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옆으로 물이 흐르고, 그 옆으론 차가 지나가고, 그 옆으론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이 곳은 묘한 동거와 동행을 하는 공간이었다. 대전에 살면서 이런 묘한 공간에서의 체험은 처음이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일단 시야가 트이지요. 차를 타고 쌩하고 지나갈 길이 자연스럽게 나한테 다가오게 되죠. 가장 좋은 것은 무엇보다 자전거 위에서 사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많은 것은 생각하고 고민해 봅니다. 그리고 퇴근길에는 전통재래시장에도 들러보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서서 빼꼼히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것처럼, 자전거를 탄 이후에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상도로의 자전거 출퇴근자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같았다. 서로 마주치며 지나가면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하고, 추월해야 될 상황이면 '먼저 가겠습니다'를 외친 뒤 조심스레 앞질러 가곤 했다. 그들에겐 표지판도 경찰도 없었지만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예의라는 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 자전거를 타고 하상도로를 따라 출퇴근하는 사람들. ⓒ 고두환


그나저나 시내에 다가갈수록 하상도로가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전시에서 하천보수공사를 하는 탓이었고, 복잡한 건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할 때마다 차들은 많아지고,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더 빠르게 달리고 여차하면 경적을 울려대기 일쑤였다.

"차들이 참 폭력적이죠? 도로라는 게 사람이 만들어놓고도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차를 위한 공간이 되어 버렸어요. 인본주의가 없죠. 차를 피해 다니는 게 인도가 돼버렸잖아요. 신호도 그래요. 차가 지나가는 시간은 엄청 길고, 사람이 지나가는 시간은 엄청 짧죠. 어르신들이나 장애인이 도로를 건너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죠. 건널목보단 지하도나 육교 설치를 선호하는 것도 결국 차를 위한 행동들 아닐까요?"

그랬다. 오늘 겪은 차들의 폭력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택시, 아마도 그들이 나쁜 게 아니라 폭력적인 도로에 하루 종일 노출된 그들이 자연스레 그렇게 바뀐 것 같았다.

"아찔했던 순간들 많으시죠?"
"그럼요. 큰 차들은 옷깃이 스칠 정도로 자전거에 위협을 주기도 하고, 자동차들의 경적은 이미 익숙해졌죠.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갈수록 자전거 전용도로도 생기는 추세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죠."

어느새 대전 시내에 도착했다. 그런데 하상도로에서 일반도로로 올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올라가는 길을 찾는 게 어려웠다.

"하상도로에서 일반도로로 올라가는 길, 자전거 나들목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게 흔치 않아요, 차가 올라가는 길은 많아도 복잡한 하상도로에선 이용할 수 없어요. 자전거나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그런 나들목이 부족해요. 특히 물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는 곳엔 꼭 그런 나들목이 있어야 하는데, 보시면 알겠지만 찾아보기 힘들죠?"

자전거에 호의적이지 않은 대전 시내 환경

그랬다. 특히 혼자 정부청사까지 돌아오는 길엔 그 나들목을 찾지 못해 헤매고 또 헤매는 바람에 출근길보다 5㎞는 더 걸려서 돌아오게 되었다. 여하튼 우리는 어렵사리 일반도로로 올라서 대전 시내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대전 시내에서 찻길을 이용하긴 어려웠다. 수많은 버스가 난립하고, 차들이 복잡하게 섞여있는 그 곳, 특히 맨 마지막 차선이 버스전용차로로 지정되어 있으니 자전거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은 별로 없어 보였다. 배달을 하는 할아버지들은 용케도 그 곳을 이리저리 피해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묘기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인도의 사정은 어떨까?

둔산동엔 비록 자전거도로가 인도에 있더라도 많은 부분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어 그리 울퉁불퉁하지 않고 사람 통행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내 사정은 달랐다. 인도는 심하게 울퉁불퉁했고, 사람들의 통행은 많았다. 거기에 상점들이 내놓은 각종 판매 상품들로 좁은 인도는 더 좁아져 있었다. 그 누구도 자전거에게 호의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무섭긴 해도 각박하진 않았는데, 이 곳은 마치 복잡한 도로에 차를 끌고 나간 양 마음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그저 묵묵히 전태일 교수의 뒤를 쫒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내를 통과하고 대전대에 한층 가까워졌다. 동구쪽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차선 도로에 오래된 인도,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할 공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갈수록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안 그래도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가 점점 불편해지는 순간이었다.

▲ 언덕길을 일정한 속도로 오르는 전태일 교수. 그는 대전대까지 끝없이 펼쳐진 언덕을 숨 한번 차지 않고 자전거로 올랐다. ⓒ 고두환


'대전대 400m 앞'이라는 팻말과 함께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길, 전태일 교수는 그 오르막길은 기어를 바꿔가며 일정한 속도로 오르고 있었지만, 난 그럴 만한 힘도 기술도 남아 있지 않았다. 조용히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다. 때마침 지하철과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이 함께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교수님이 이렇게 자전거로 출퇴근 하시니까 학생들도 관심있어 할 것 같은데, 학생들도 제법 이용하나요?"
"몇 명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 학교 교수님 중에도 몇 분 자전거로 출퇴근 하시는 분이 있고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학교까지 오는 길이 그리 만만치 않아요. 꾸준히 타고다니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도 그럴 것이 자전거 출퇴근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위험하고 힘든 순간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대전대학교, 만개한 벚꽃이 우리를 맞아줬다. 처음 방문한 대전대는 자전거를 타고 온 우리에게 '차 없는 거리'로 화답하며 맞아주었고, 독특한 구조의 건물은 자전거를 타고 단숨에 4층까지 올라가서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담소를 나누기 위해 들어선 그의 연구실 한쪽엔 양복과 평상복, 속옷과 양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또 다른 자전거 한 대, 자전거 바람 넣는 기계가 눈에 띄었고 책꽂이에 각종 여행 관련 책자가 꽃혀 있었다.

아찔하고 불편한 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왠지 모를 듯한 뿌뜻함이 느껴졌다.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출퇴근은 그렇게 끝이 났다.

대전시 자전거 출퇴근의 장해물들

ⓒ 고두환


전태일 교수와의 일문일답
1. 자전거를 타게 된 계기는?
젊어서 운동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대학에 처음 와서는 테니스를 쳤는데, 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됐다. 마라톤을 하다 보니 트라이슬론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자전거와 수영을 함께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나이도 먹고 다리도 아파서 마라톤을 자연스레 접게 되고, 혼자서 사색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계속 타게 됐다.

2. 차와 자전거, 출퇴근 하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자전거를 타고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차를 타고 출근하면 25분 정도 걸린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오면 옷도 갈아입고 세면도 해야 되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 밤에 연구실에서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어두워지는데, 물론 차를 타고 가면 조금 더 안전하고 편하게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차를 타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폭력적으로 변해 있고,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자전거는 말 그대로 사람사는 냄새를 생활 속에서 겪을 수 있게 해준다. 참고로 밤 자전거 역시 그 색다른 묘미가 있다.

3. 자전거로 오랬동안 출퇴근 한 사람으로서 대전시에 한 마디 한다면?
자전거 전용도로 같은 자전거 관련 정책을 추진할 때 자전거를 오래 탄 사람들과 논의하며 일을 진행했으면 좋겠다. 일반 사람들이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타면서 겪은 이들이 보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도로포장이 좀더 말끔이 돼야 하고, 도로와 인도 사이에 턱을 매끈하게 이어질 수 있게 처리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유성에 설치된 자전거 전용도로 같은 형태가 앞으로도 대전시에 많이 설치되는 게 차와 자전거, 그리고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4. 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자전거를 이용하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가?
미국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보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기에 용이한 도로를 가지고 있진 않다. 다만 내가 살던 미국의 동네는 차가 많지 않고, 사람의 통행이 많지 않으며 매끈한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고, 인도 옆으로는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서 자전거를 타기 제법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럽이 자전거 타기엔 좋은 인프라가 많이 갖추어져 있는데 요즘 공무원들도 해외로 연수를 많이 다니니, 앞으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좋은 연구를 통해 실질적인 정책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5. 왜 자전거를 타는가?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 주위를 둘러보며 사색할 수 있는 방법, 사람사는 냄새를 느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누구보다도 건강해지는 방법. 그래서 난 자전거를 탄다.

전태일 교수의 '센스' 있는 조언
보통 신문사에서 신문을 보면 주는 자전거는 정말 좋지 않습니다. 자전거 이음새가 약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구조 때문에 타는 사람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주는 의도도 좋지 않고, 타면 더 좋지 않은 게 신문사에서 주는 자전거입니다.

우리나라 유수의 자전거들은 튼튼하고 우수합니다. 비싼 외국 자전거나 신문사 자전거에 눈을 돌리기보단 국산 자전거를 이용해도 출퇴근에 전혀 지장 없다고 생각합니다.

취재후 - 돌아오는 길

▲ 하상도로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들의 모습. ⓒ 고두환


익숙하지 않은 길 탓에 적잖이 도로를 헤매곤 했다. 특히 사람이나 자전거를 위해 설치된 표지판이 아닌 차들을 위해 설치된 표지판이 날 헤매게 만들었다. 화살표 대로 따라가다 보면 사람이나 자전거가 쉽사리 갈 수 없는 곳이 나오고, 표지판만 봐서는 거리를 가늠하기 힘든 탓이었다.

능숙한 안내자, 전태일 교수의 빈자리는 컸다. 혼자서 차도로 내려서서 달릴 자신이 없어 인도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동구에서 시내 가는 길은 여간 울퉁불퉁한 게 아니었다. 덕분에 자전거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엉덩이가 아파서 안장에 이리저리 틀어앉기 일쑤였다.

특히 시내 어디쯤 다달았을 때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는데, 자전거를 세워 놓을만한 곳이 없었다. 결국 대전역까지 가서 근처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볼 일을 봐야 했다. 길도 몰랐을 뿐더러,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이리저리 헤매면서 정부청사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어렵사리 찾아들어간 하상도로, 아침보다 차량이 많이 줄어서 자전거가 다니기는 쉬웠다. 하지만 여기저기 길을 들어설 때마다 차를 살피고, 찻길로 들어서야 하니 항상 긴장되었다.

거기에 삼천교를 지나 하상도로에서 일반도로로 올라오는 길을 몰라 헤매기를 일쑤, 일반도로로 올라온 뒤 정부청사역까지 가는 길에 또 길을 몰라 헤매기를 일쑤. 여기저기 차를 끌고 다녀서 제법 길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려니 왜이리 갔던 길도 헷갈리는지 모르겠다.

대전 지하철역에서 자전거 빌리는 법
대전 지하철역에선 아침 6시부터 자전거를 빌려줍니다. 신분증을 내고 기록대장에 사인을 하면 자전거 키를 내줍니다.

그것을 받고 자전거 주차장에 가서 자물쇠를 풀고 자전거를 타면 빌리는 법 끝! '양심자전거'는 안장이 생각보다 낮아서 키 큰 성인 남성에겐 다소 불편할 수 있습니다.

아마 큰 맘먹고 자전거 출퇴근을 선언한 많은 직장인들이 이런 고충탓에 한두 번만에 자전거 출퇴근을 포기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이렇게 나쁜 기억만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대전대에서 시내까지 오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었기에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내달렸고, 갈 때보단 훨씬 여유를 부리며 우리 곁으로 다가온 봄을 만끽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는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주고 받고 오는 길 벤치에 앉아 복잡했던 머리를 수첩에 한 차례 비워내기도 했다.

뿌연 하늘이었지만 따스한 햇볕을 받아서 좋았고, 10년 넘게 대전을 살면서 못 본 대전의 수많은 풍경들이 내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내 자전거 출근 동행길은 끝이 났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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