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람] 별이야기 경청하는 인민군 여자장교
[김갑수 한국전쟁 역사팩션 31] 파란 별과 붉은 별' 편
이두오는 더벅머리 속으로 손가락을 찌른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수현도 이두오를 따라 밤하늘로 눈길을 옮겼다. 하늘은 온통 별이 차지하고 있었다. 별들은 마치 석류 속처럼 투명하고 영롱해 보였다.
북악의 신록 사이를 타고 내려온 훈풍이 두 사람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시 배 향기와 어우러진 흙 내음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휩싸여들었다. 그 시간 두 사람에게는 민족이나 전쟁 같은 것들은 아주 멀리 떠나 있었다.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할 나위 없이 호젓하고 흡족한 시간이었다.
이윽고 조수현이 손가락을 웅크려서 이두오의 어깨를 건드리며 말했다.
"별이 그렇게 많은데 밤하늘이 왜 어두운 것인지 말하려 했어요."
"... 그렇군요."
"왜 어두운 것인데요?"
조수현의 얼굴에 다정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두오는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몇 번 쓸어보더니 별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일찍이 에드거 앨런 포우는 <유레카>라는 제목의 산문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여기에는 그가 생전에 모아두었던 천체 관측 체험들이 산문시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별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면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 별은 광활한 우주 공간의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주 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멀리 있는 별들의 빛이 아직 우리 눈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포우는 자신의 발상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자신 있게 결론 내렸습니다. 우리는 어떤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알아내는 유력한 방법 하나를 포우에게 시사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판별해 보는 방법입니다.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양측의 주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어느 것 하나 아름답기는커녕 추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남과 북 두 집단의 주장은 모두 틀린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단언하건대 아름다움을 아는 능력은 인간이 지닌 최상의 미덕입니다. 이것은 어떤 정의나 도덕이나 진리보다도 더 상위의 포괄적 개념입니다. 석가가 마야부인의 옆구리로 나왔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수현씨, 어떻습니까, 아름답습니까?"
조수현은 짙어진 배 향기와 흙 내음을 맡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전쟁에 대해서는 남과 북을 같이 말할 수는 없다고 봐요."
"수현씨는 인민군 장교니까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요."
"꼭 내가 인민군 장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미안합니다."
"어쨌든 우리 민족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통일입니다. 다만 뭐랄까? 우리 민족은 우주라든지 아름다움이라든지... 그런 거대하고 우아한 것들을 생각해 볼 겨를이 없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녀는 이두오 쪽으로 다가앉았다. 이두오는 그녀가 편안히 앉도록 너럭바위의 공간을 넓혀 주었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아까보다 더욱 총총거리고 있었다. 이두오 말마따나 '스타'도 있었고 '별'도 있었다. 그녀는 이두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별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 있는 듯했다. 그녀는 이두오의 어깨에 손을 올려 보았다. 밤이슬이 내려 낮아 그의 체온에 눅눅해져 있었다. 그녀는 그의 체온에서 손을 거두어 자기 뺨으로 옮겨 대 보았다.
이두오는 계속 말해도 되겠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번에는 조수현의 고개가 빨리 끄덕여졌다.
"놀랍게도 포우가 제시한 아름다운 가설은 천문학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주었습니다. 우리의 우주는 정적으로 고정된 늙은 우주가 아니었습니다. 우주는 어느 시점에서 돌연히 탄생했고 유한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아주 멀리 있는 별들로부터 방출된 빛은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별은 지금의 모습이 아닌 먼 과거의 모습입니다. 별에서 방출되는 빛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시간이 소요됩니다. 우리가 보는 저 달은 2초 전의 것이며 우리가 낮에 보았던 해는 8분 전의 해였습니다. 가장 멀리 있는 별은 아마 100억 광년 이상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주의 끝에 있는 별을 찾아낸다면 우주의 나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의 나이를 알아내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현재 나이를 알면 그 사람의 탄생과 최후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우주의 최 변방에 있는 별을 찾기 위한 연구와 작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물리학자, 천문학자들의 야심이고 염원입니다. 저는 이 세기가 다 가기 전으로 인간은 그 별을 찾아내리라고 봅니다. 요컨대 '별은 어디에?' 이것이 내 연구의 목표입니다."
사회 현상을 김일성과 관련시키는 인민공화국
김성식은 인민보를 읽고 있었다. 거기에는 김일성의 8·15 기념사가 실려 있었다.
-8월을 기필코 해방의 달로 하여야 한다.
김일성의 연설문은 5호 활자로 박혀서 신문의 전·후면에 한 글자도 빠짐없이 실려 있었다. 물론 다른 기사는 전혀 없었다. 다음 날부터는, "김일성 장군의 교시를 받들어서!"하고 각계각층의 화답이 뒤를 이었다.
인민공화국은 거의 모든 사회 현상을 김일성과 관련시키고 있었다. 농부가 부지런히 김매는 것,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 기차가 철로를 달리는 것 등은 확연히 김일성에게 감격한 덕분이었다.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는 것, 비가 제 때에 내리는 것,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까지도 김일성이 천지신명을 감복시킨 결과라고 했다. 아직 해가 뜨고 지는 것이라든지 별이 반짝이는 것에까지는 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그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8월을 기필코 해방의 달로 하여야 한다.
김성식은 활자의 이면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8월 안으로 해방시키지 못하면 기회를 놓치고 만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인민보를 거의 읽어갈 무렵 불문과 손 선생이 김성식의 집을 찾아왔다. 손 선생은 김성식보다 10여 세 연상이었다. 손 선생은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파편에 맞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발은 심하게 부르터 있었다.
"어떻소? 패잔병 모습이지요? 사실은 양식을 구하러 이천, 여주까지 갔다 왔다오."
손 선생은 배낭을 지고 뙤약볕을 걸어 다녔다고 했다. 김성식은 마음이 아팠다.
"나는 나이라도 늙수레하게 먹어 안심하고 다닐 수나 있지요."
"그래도 선생님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처음에는 막막하더니만 이제는 자신이 붙었다오. 노가다고 날품팔이고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소." "그런데 왜 그리 멀리까지 가셨습니까?"
"서울에서 적어도 백 리 안으로는 양식을 구할 수가 없다오. 우리보다 빠른 사람들이 죄다 훑어갔대요. 그 대신 다른 물건들은 참 흔합디다. 서울 사람들이 벨벳치마. 손목시계 등을 마구 가져가서 양식과 바꾼 모양입니다. 지금 시골 사람들은 때 아닌 호사를 누린답니다."
손 선생은 희미하게 웃었다.
북악의 신록 사이를 타고 내려온 훈풍이 두 사람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시 배 향기와 어우러진 흙 내음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휩싸여들었다. 그 시간 두 사람에게는 민족이나 전쟁 같은 것들은 아주 멀리 떠나 있었다.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할 나위 없이 호젓하고 흡족한 시간이었다.
"별이 그렇게 많은데 밤하늘이 왜 어두운 것인지 말하려 했어요."
"... 그렇군요."
"왜 어두운 것인데요?"
조수현의 얼굴에 다정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두오는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몇 번 쓸어보더니 별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일찍이 에드거 앨런 포우는 <유레카>라는 제목의 산문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여기에는 그가 생전에 모아두었던 천체 관측 체험들이 산문시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별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면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 별은 광활한 우주 공간의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주 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멀리 있는 별들의 빛이 아직 우리 눈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포우는 자신의 발상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자신 있게 결론 내렸습니다. 우리는 어떤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알아내는 유력한 방법 하나를 포우에게 시사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판별해 보는 방법입니다.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양측의 주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어느 것 하나 아름답기는커녕 추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남과 북 두 집단의 주장은 모두 틀린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단언하건대 아름다움을 아는 능력은 인간이 지닌 최상의 미덕입니다. 이것은 어떤 정의나 도덕이나 진리보다도 더 상위의 포괄적 개념입니다. 석가가 마야부인의 옆구리로 나왔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수현씨, 어떻습니까, 아름답습니까?"
조수현은 짙어진 배 향기와 흙 내음을 맡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전쟁에 대해서는 남과 북을 같이 말할 수는 없다고 봐요."
"수현씨는 인민군 장교니까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요."
"꼭 내가 인민군 장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미안합니다."
"어쨌든 우리 민족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통일입니다. 다만 뭐랄까? 우리 민족은 우주라든지 아름다움이라든지... 그런 거대하고 우아한 것들을 생각해 볼 겨를이 없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녀는 이두오 쪽으로 다가앉았다. 이두오는 그녀가 편안히 앉도록 너럭바위의 공간을 넓혀 주었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아까보다 더욱 총총거리고 있었다. 이두오 말마따나 '스타'도 있었고 '별'도 있었다. 그녀는 이두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별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 있는 듯했다. 그녀는 이두오의 어깨에 손을 올려 보았다. 밤이슬이 내려 낮아 그의 체온에 눅눅해져 있었다. 그녀는 그의 체온에서 손을 거두어 자기 뺨으로 옮겨 대 보았다.
이두오는 계속 말해도 되겠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번에는 조수현의 고개가 빨리 끄덕여졌다.
"놀랍게도 포우가 제시한 아름다운 가설은 천문학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주었습니다. 우리의 우주는 정적으로 고정된 늙은 우주가 아니었습니다. 우주는 어느 시점에서 돌연히 탄생했고 유한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아주 멀리 있는 별들로부터 방출된 빛은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별은 지금의 모습이 아닌 먼 과거의 모습입니다. 별에서 방출되는 빛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시간이 소요됩니다. 우리가 보는 저 달은 2초 전의 것이며 우리가 낮에 보았던 해는 8분 전의 해였습니다. 가장 멀리 있는 별은 아마 100억 광년 이상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주의 끝에 있는 별을 찾아낸다면 우주의 나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의 나이를 알아내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현재 나이를 알면 그 사람의 탄생과 최후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우주의 최 변방에 있는 별을 찾기 위한 연구와 작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물리학자, 천문학자들의 야심이고 염원입니다. 저는 이 세기가 다 가기 전으로 인간은 그 별을 찾아내리라고 봅니다. 요컨대 '별은 어디에?' 이것이 내 연구의 목표입니다."
사회 현상을 김일성과 관련시키는 인민공화국
김성식은 인민보를 읽고 있었다. 거기에는 김일성의 8·15 기념사가 실려 있었다.
-8월을 기필코 해방의 달로 하여야 한다.
김일성의 연설문은 5호 활자로 박혀서 신문의 전·후면에 한 글자도 빠짐없이 실려 있었다. 물론 다른 기사는 전혀 없었다. 다음 날부터는, "김일성 장군의 교시를 받들어서!"하고 각계각층의 화답이 뒤를 이었다.
인민공화국은 거의 모든 사회 현상을 김일성과 관련시키고 있었다. 농부가 부지런히 김매는 것,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 기차가 철로를 달리는 것 등은 확연히 김일성에게 감격한 덕분이었다.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는 것, 비가 제 때에 내리는 것,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까지도 김일성이 천지신명을 감복시킨 결과라고 했다. 아직 해가 뜨고 지는 것이라든지 별이 반짝이는 것에까지는 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그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8월을 기필코 해방의 달로 하여야 한다.
김성식은 활자의 이면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8월 안으로 해방시키지 못하면 기회를 놓치고 만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인민보를 거의 읽어갈 무렵 불문과 손 선생이 김성식의 집을 찾아왔다. 손 선생은 김성식보다 10여 세 연상이었다. 손 선생은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파편에 맞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발은 심하게 부르터 있었다.
"어떻소? 패잔병 모습이지요? 사실은 양식을 구하러 이천, 여주까지 갔다 왔다오."
손 선생은 배낭을 지고 뙤약볕을 걸어 다녔다고 했다. 김성식은 마음이 아팠다.
"나는 나이라도 늙수레하게 먹어 안심하고 다닐 수나 있지요."
"그래도 선생님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처음에는 막막하더니만 이제는 자신이 붙었다오. 노가다고 날품팔이고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소." "그런데 왜 그리 멀리까지 가셨습니까?"
"서울에서 적어도 백 리 안으로는 양식을 구할 수가 없다오. 우리보다 빠른 사람들이 죄다 훑어갔대요. 그 대신 다른 물건들은 참 흔합디다. 서울 사람들이 벨벳치마. 손목시계 등을 마구 가져가서 양식과 바꾼 모양입니다. 지금 시골 사람들은 때 아닌 호사를 누린답니다."
손 선생은 희미하게 웃었다.
덧붙이는 글
이 소설은 주당 3회 정도로 6월 25일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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