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낳은 자식 아닌데 신경 쓰겠나?"
[현장] 썰렁한 동네로 변한 혁신도시 예정지 '충북 맹동면 두성1리'
▲ 지난해 심었던 고추대가 그대로 방치돼 있고 그뒤로 있던 수박하우스는 뜯겨져 나갔다. ⓒ 이화영
"혁신도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낳은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요. 4대강 정비 사업은 환경성 검토조차 하지 않고 사업발표 하기 무섭게 공사를 시작하는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충북 혁신도시(중부신도시로 명칭 변경)가 들어설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1리 주민의 말이다.
지난 11일 오전, 1년 6개월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외형적으로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혁신도시를 거부하는 현수막과 수박 농사를 위한 하우스가 철거된 것이 작은 변화라면 변화다.
예년 같으면 벼농사, 고추농사, 수박농사를 위해 농민들이 눈코 뜰새 없이 바쁠 때지만 올해는 달랐다. 지난해 심었던 고추대가 그대로 방치돼 있을 정도로 일손을 놓고 있다. 농사를 지을 경우 농사보상금을 주지 않는다는 시행사인 대한주택공사(주공)의 지침에 따라 농사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잰 걸음으로 농토로 향하는 농부들도 없고 일 나간 남편을 위해 밥을 해 나르는 아낙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흙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만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거칠게 동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봄이라기보다 여름에 가까울 정도로 따가운 햇살이 마을을 뒤덮고 있지만 동네는 스산하다 못해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썰렁했다. 동네 청장년 3~4명이 마을회관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고, 이방인을 알아챈 동네 개들만이 연신 짖어대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농사꾼이 땅 놀리니까 마음이 안 편해요"
▲ 마을회관 한쪽 방에 모여 있던 80대 중반의 할머니들은 "아무 것도 심기지 않아 놀고 있는 기름진 옥토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농사 안 짓고 매일 노는 우리 같이 팔자 좋은 늙은이들이 어디 있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 이화영
▲ 혁신도시대책위원회로 쓰였던 마을회관. 지금은 주민복지 생계조합인 (주)두례지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 이화영
▲ 두성리 마을주민 임득순 씨 ⓒ 이화영
임씨가 안내한 곳은 혁신도시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쓰였던 마을회관. 지금은 주민복지생계조합인 (주)두례지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다.
"농사는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임씨는 "농사 안 지어요. 안 지어... 큰 일이여. 큰 일" 체념하듯 던진 말에 근심이 배어 있었다.
농사꾼이 좋은 옥토를 놀리니 마음이 영 편치 않다고 했다. 주공에서 막아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지만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주공에서 경작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5~6월경에 농사 보상금을 준단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농사시기를 놓쳐 농사짓는 건 포기해야 한다. 일부 주민들은 차로 10~20분 거리에 농토를 구입하고 도시락을 싸들고 출퇴근하며 이 고장 특산품인 수박농사를 짓고 있다. 농작물은 때를 가리지 않고 돌봐야 하지만 농토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불편을 겪고 있다.
임씨는 "국책사업이 우리가 반대한다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요구가 다 먹히지도 않겠지만 합당한 의견은 들어줘야 한다"며 "할 줄 아는 게 농사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혀를 찼다.
마을회관 한쪽 방에 모여 있던 80대 중반의 할머니들은 "아무 것도 심기지 않은 기름진 옥토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농사 안 짓고 매일 노는 우리 같이 팔자 좋은 늙은이들이 어디 있어"라며 쓰게 웃었다.
반쪽짜리로 전락한 혁신도시
▲ 두성리 주민인 한 할머니가 "나물을 캐러 간다"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터전 수호하여 고향에 살리라'는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다. ⓒ 이화영
김종률 국회의원(민주당,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은 지난해 10월 성명을 통해 "국토해양부는 실효성과 홍보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혁신도시 기공식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혁신도시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외면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청계천 공사나 4대강 정비사업과는 달리 혁신도시 기공식을 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꼬집은 것.
여기다 주민들은 이전기관 통폐합, 수도권 규제완화 등과 맞물려 반쪽짜리 혁신도시 전락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서게 되는 공공기관은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한국노동교육원 등 12개 기관이다. 이중 현재까지 이전이 확정된 공공기관은 균형발전위원회에서 승인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기술표준원 등 4개 기관뿐이다.
더욱이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기관과 통합돼 이곳으로 올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여기다 한국노동교육원은 폐지가 결정됐다.
당초 이곳에 이전될 12개 기관의 종사자수는 2153명, 예산규모는 5003억원으로 전국평균 종사자수 2988명, 예산규모 13조93억원에 비해 크게 뒤쳐졌다. 여기에 1곳은 폐지, 2곳은 다른 혁신도시 이전기관과 통합이 결정돼 이전기관 규모는 더욱 축소될 전망이다.
정부는 혁신도시를 지방이전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광역경제권 신성장 거점으로 발전시켜 기업과 학교, 연구기관이 어우러진 인구 5만의 자족형 신도시로 구상했었다. 하지만 정부의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에 따라 기업을 유인할 수 있는 동기가 사라져 기업유치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이미 물 건너간 상태다.
위기를 느낀 충북혁신도시건설지원협의회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충북도청의 혁신도시로 이전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1만1645명의 서명을 받아 충북도에 전달했다. 그러나 충북도는 도청 이전에 대해 계획도 없고 앞으로 검토할 생각도 없다고 일축했다.
혁신도시 선정 4년, 세륜 시설이 고작
▲ 혁신도시로 선정된 지 4년이 다 되어가지만 공사라야 마을입구에 만들어진 세륜 시설이 고작이다. ⓒ 이화영
혁신도시로 선정된 지 4년이 다 되어가지만 토지 보상만이 마무리 단계일 뿐 진행된 공사는 거의 없다. 마을입구에 만들어진 세륜 시설이 고작이다. 또한 아직까지 이곳 부지를 매입한 공공기관도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도시 부지는 분양가 부담과 분양면적 이견 등의 이유로 현주민들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곳 이주대상 100여 가구 중 34가구가 인근에 3만여㎡의 택지를 별도 매입해 집단이주하기로 하고 분양을 마친 상태다. 나머지 가구는 개별 이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충주문화방송이 지난해 11월 음성군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명 가운데 3명은 혁신도시 건설을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조사대상자 중 '정상적으로 추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응답자가 43.2%로 가장 높았고, '예정보다 축소돼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은 31.1%로 나타나 74.3%가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는 정부의 사업 추진 의지 결여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른 공공기관 통폐합, 수도권규제완화가 맞물려 빚어낸 결과로 풀이된다.
주민들의 걱정을 해소하고 혁신도시 건설이 차질 없이 추진되기 위해 정부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더불어 제대로 된 도시 형성을 위해 더 많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과 충북의 경우 도청 이전에 대한 주민들 목소리에도 귀 기울려 볼만하다.
정부에서 지방의 균형발전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혁신도시가 자칫 지역공동체를 파괴한 애물단지로 전락되지 않길 현 주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 휴전선 처럼 철제 담장이 길게 쳐져 있다. 담장 안쪽이 농사를 지을수 없는지역이다. ⓒ 이화영
▲ 두성리 주민인 한 할머니가 '고향에 살고 싶다. 정주권을 보장하라'고 쓰인 곳을 바라보며 지나고 있다. ⓒ 이화영
▲ 혁신도시 인근에 34가구가 3만여㎡의 택지를 별도 매입해 집단이주하기로 하고 분양을 마친 상태다. 마을 이름을 지금쓰고 있는 두성리로 정했다. ⓒ 이화영
▲ 심어진지 500년을 넘겼다는 부부 느티나무는 혁신도시 공원의 조경수로 쓰여질 예정이어서 고향을 추억할 수 있는 상징물로 남게 됐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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