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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 검찰의 100만달러 진실게임

"집사람이 받아" vs. "종착지는 노무현"...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 임박

등록|2009.04.12 22:10 수정|2009.04.13 09:37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12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중인 10층과 11층 중수부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분주히 오가며 업무를 보는 가운데 11층 사무실은 외부에 노출이 되지 않도록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다. ⓒ 권우성


정관계 로비의혹으로 구속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에 건넸다는 거액의 돈을 둘러싸고 '노무현 대 검찰·언론의 진실게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공격의 진영'에 선 검찰·언론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받았다는 100만 달러는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넨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방어의 진영'에 선 노 전 대통령은 지난 7일 해명한 것처럼 100만 달러의 종착지는 자신이 아니라 권씨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권씨가 지난 11일 검찰의 비공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부탁해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사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 100만 달러의 종착지?

노 전 대통령의 반격은 공교롭게도 장남 건호씨가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고 있던 12일 오후 4시 37분 시작됐다. 부인 권씨가 검찰조사를 받은 다음날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개인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에 올린 글에서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먼저 '해명'이란 100만 달러와 직결된 것이다. 100만 달러는 지난 2007년 6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부인 권양숙씨에게 전달됐다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미 지난 7일 올린 글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정상문 전 비서관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은)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언론은 박연차 회장의 진술을 빌어 노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100만 달러가 해외순방 직전에 청와대에 건네졌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시각 때문에 '정작 본인이 받아놓고 진실이 드러나자 부인 뒤로 숨고 있다'는 힐난까지 나오고 있다.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12일자 논평에서 "대선을 앞두고는 표심을 잡기 위해 아내를 감싸다가도, 사법책임을 앞두고는 슬쩍 아내의 뒤로 숨는 노회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겁함이 국민을 실망케 한다"고 비난했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장남 건호씨의 유학생활, 2007년 7월 노 전 대통령 부부와 건호씨의 미국 시애틀 만남 가능성 등을 보도하며 100만 달러 일부가 건호씨의 유학자금 등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부인이 받았다"... 결벽증에 가까운 노 전 대통령의 사실주의?

▲ 2002년 8월 15일,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 노건호씨와 함께 서대문형무소 독립관을 둘러보고 있다(자료 사진). ⓒ 이종호


노 전 대통령의 12일자 글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온 '해명'이자 '반격'으로 읽힌다. 그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이미 기정사실로 보도가 되고 있다"며 검찰·언론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언론들이 근거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재는 주로 검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나서 '100만 달러'와 관련, 해명에 나섰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참 부끄럽고 구차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민망스러운 이야기하지 말고 내가 그냥 지고 가자. 사람들과 의논도 해보았습니다. 결국 사실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검찰·언론에서 보는 것과 달리, 자신이 아니라 부인 권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도덕적 책임을 지고 비난을 받는 것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고 결백의 주장을 폈다. 

"더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사실대로 가는 것이 원칙이자 최상의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구차하고 민망스러운 일이지만, 몰랐던 일은 몰랐다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두고 일각에서는 "결벽증에 가까운 노 전 대통령의 '사실주의'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실과 다른 박 회장의 진술이 의심스럽다?

다음은 '해명'에 이은 '방어'다. 이는 박연차 회장이 검찰조사에서 '사실와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는 노 전 대통령의 직감(?)과 관련된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증거여서 저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박 회장은 500만 달러와 100만 달러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연철호씨와 권씨에게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방어'가 시작된다. 그는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무슨 특별한 사정을 밝혀야 하는 부담을 지겠다"며 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저는 박 회장이 검찰과 정부로부터 선처를 받아야 할 일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진술을 들어볼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8일 올린 글에서 "제가 알고 있는 진실과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프레임이 같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100만 달러의 일부가 건네졌다는 '시애틀 만남 의혹'과 관련, 김경수 공보비서관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시애틀에서 건호씨를 만난 적이 없다"며 "관련 보도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문재인 전 실장 "권양숙 여사가 자신이 받았다고 충분히 설명했다"

▲ 문재인 변호사 ⓒ 이종호

노 전 대통령의 '해명'과 '방어'에 앞서, 부인 권씨는 지난 11일 부산 지검에서 비공개 조사를 받았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12일 조사내용과 관련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7일)에 있는 내용"이라며 "현재로선 권씨를 부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홍 기획관은 "더 이상 (권씨를) 수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충분히 조사했음'을 내비쳤다. 특히 '권 여사에게 범죄혐의가 없다고 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해 눈길을 끌었다.

이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의 돈으로 의심받고 있는 100만 달러의 경우 약 11시간에 걸친 권씨 조사로 충분히 해명이 된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권씨의 비공개 조사에 동석한 문재인 전 비서실장도 이날 저녁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구체적인 조사내용과 결과는 얘기할 수 없지만, 권 여사가 정 전 비서관에게 부탁해 박 회장의 돈을 받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또다른 측근도 "검찰이 권 여사를 더 이상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은 어제(11일) 조사를 계기로 100만 달러와 관련된 의혹이 전부 해소됐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만약 '100만 달러'가 문제없는 돈이라면 향후 검찰의 수사방향은 500만 달러의 수사에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다. 홍만표 기획관이 "연철호씨와 노건호씨는 앞으로 한두 번 더 불러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한 것도 그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결국 검찰과 노 전 대통령과의 거액수수를 둘러싼 진실게임 공방은 조만간 있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조사 이후에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노건호씨가 '타나도 인베스트먼트'의 대주주라는 의혹과 관련, 연씨의 변호인인 정재성 변호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타나도 인베트스먼트는 연씨의 1인회사"라며 "사실관계가 복잡해 지금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적당한 시점에 밝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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