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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2년차 부부, 함께 목욕하던 날

나무꾼 되어 선녀의 옷을 내주고픈 심정

등록|2009.04.13 10:47 수정|2009.04.13 12:04
때는 대부분 대중목욕탕에서 아들과 함께 밀지요. 하여, 결혼 12년차 부부지만 아내와 목욕하는 날은 거의 없었지요. 부끄럽다는 이유로 샤워 시 등만 밀어주고 마니까요.

지난 토요일, 산행 후 아이들 대신 아내와 강아지 목욕을 시키게 되었습니다. 비누칠을 하던 중 아내가 한마디 던지더군요.

"예전에는 비누칠을 하면 몸부림을 치더니, 강아지가 컸다고 눈을 지그시 감고 가만있는 거 봐요. 좋은가 봐요."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목욕을 즐기는 폼이더군요. 깨끗이 물로 행근 후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 놓아 주었지요. 그랬더니 녀석은 이리저리 발발거리고 다니더군요.

"그게 무슨 때야?"... "이게 때 아니면 뭐예요"

그러다 자연스레 부부가 같이 목욕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고 보니 아내 등만 몇 번 밀어줬을 뿐 강아지처럼 구석구석 꼼꼼히 닦아준 적이 없더군요. 결혼 12년간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보, 등 내소. 내가 빡빡 밀어줌세."
"어머, 당신이 웬일?"

아들 녀석 때 밀어주던 것처럼 등과 팔, 다리를 정성껏 밀었지요. 아내가 부끄러워 할 줄로만 알았는데 좋아하더군요. 미안하더군요. 그랬더니 제 등도 밀어주더군요.

"때 없지?"
"때가 없어요? 거지가 형님, 하겠어요."
"뭔 때가 있다고 그래?"

능청을 떨었지요. 그런가보다 넘어가면 좋으련만 아내는 때 수건을 눈앞에 들이밀고 "이건 때 아니에요?"하며 확인시켜주더군요. 이럴 때, 가만있으면 재미없지요.

"그게 무슨 때야."
"어머머, 이게 때 아니면 뭐예요."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지요. 아이들이 웃음소리에 "무슨 재미난 일 있어요?"하고 문을 빼꼼이 열고 묻더군요.

▲ 세면장에 웃음꽃이 피었지요. ⓒ 임현철


나무꾼 되어 선녀의 옷을 내주고픈 심정

"여보, 등 대소."

아내의 몸에 비누칠을 했지요. 아이 둘 낳은 여인의 펑퍼짐한 엉덩이. 불어만 가는 뱃살. 처진 가슴. 살이 오른 허벅지. 탱탱하던 아내의 몸에도 어느 새 세월이 앉았더군요.

나이가 켜켜이 쌓여가는 아내의 몸을 보니 '나무꾼과 선녀' 생각이 나더군요. "아이 셋 낳을 때까지 날개옷을 보여주지 마라"는 말을 잊고, 옷을 내 준 나무꾼처럼 행동하고 싶더군요.

하여, 아내가 훨훨 날 수 있게 옷이라도 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현실의 차이겠지요. 못난 신랑 만나 고생하는 아내가 측은하게 여겨지더군요. 남편들의 비애 아니겠어요? 그로 인해 정성껏 비누칠을 하였지요.

"여보, 고마워요."

목욕을 마친 후, 아내의 표현이었습니다. 정성에 대한 보답(?)이었지요. 하지만 당치 않았습니다. 결혼 12년간 묵묵히 살아온 아내의 수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아내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더군요.

이날 저는 젊은 날의 열정적인 사랑이 아닐지라도, 결혼생활 12년 된 부부의 잔잔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게 작은 행복이겠지요?
덧붙이는 글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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