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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개를 찾기 위한 서민의 하루가 리얼하다

[진흙속중국영화캐기-03] 루쉬에창 감독의 <카라는 내 개다>

등록|2009.04.13 18:17 수정|2009.04.13 18:17

▲ 영화 <카라는 내 개다>에 나오는 개 '카라'. '허가증'을 만들지 못한 주인으로 인해 붙잡힌 신세가 된다. ⓒ Huayi Brothers




"1994년 11월 30일, 베이징 시 제10회 인민대표대회상무위원회 제14차 회의가 <베이징시양견엄격제한규정(北京市严格限制养犬规定)>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1995년 5월 1일부터 시행한다."

영화는 이렇게 자막으로 시작한다. 초저녁 애완견을 운동시키러 나온 주민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공안(公安)들 때문에 개와 함께 도주하기 바쁘다. 카라(卡拉) 역시 사슬에 묶이고 차에 실려 끌려가게 된다. 이 '엄격한 규정'을 벗어나려면 허가증이 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아니 가난한 집안의 사랑 받던 강아지 카라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된다.

▲ <카라는 내 개다> 포스터 ⓒ Huayi Brothers



베이징 도심 시청취(西城区) 신지에커우(新街口)에 거주하는 공장노동자 라오얼(老二)은 밤샘 근무를 하고 퇴근한다.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고 소심한 성격의 그에게 유일한 말벗이고 삶의 낙이던 카라는 이미 라오얼 부인이 데리고 나갔다가 사라진 후였다.

부인 위란(玉兰)과 아들인 량량(亮亮), 사랑스러운 강아지 카라와 함께 살며, 지극히 평범하고도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라오얼은 광견병 퇴치를 위해 시 정부가 마련한 법안으로 인해, 허가증이 없는 개들은 도시 밖으로 퇴출시키라는 '엄격한' 단속에 결렸으니 잔잔하던 일상이 하루 아침에 꼬이게 됐다.

그리고 카라를 데려오려면 5천 위엔을 내고 허가증을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로 인해 영화는 서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장면들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카라는 나의 개(卡拉是条狗, Cala, My Dog)>는 2002년에 만들어진 영화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초연됐다. 베이징 태생으로 미술학도이면서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한 루쉬에창(路学长) 감독은 라오얼 역에 당대 최고의 배우인 거여우(葛优)를 등장시켰다. 그는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의 유일한 상영금지 작품인 <인생(活者)>에서 공리(巩俐)와 함께 중국 현대사의 인생 역정을 잘 그려낸 배우로 유명하다.

▲ <카라는 내 개다>의 한 장면. 아들 량량은 카라가 잡히자 친구와 함께 파출소로 가서 카라를 구하기 위해 사정한다. ⓒ Huayi Brothers

▲ <카라는 내 개다>에서 주인공 라오얼(거여우 분)은 붙잡힌 카라를 보기 위해 파출소에 갔다. ⓒ Huayi Brothers





또한, 거여우는 <야연(夜宴)>의 펑샤오강(冯小刚) 감독과 영화작업을 많이 한다. <야연>에서는 장쯔이(章子怡), 저우쉰(周迅)과 함께 출연했으며 2008년 12월 개봉된 <페이청우라오(非诚勿扰, If You are the One)에서는 <조폭마누라3>에 등장했던 수치(舒淇)와 열연했다. 당대 최고의 중국 여배우들과 품격(?)이 맞는 몇 안 되는 남자 배우이다.

▲ 중국영화배우 거여우. 그는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에서 빛을 보기 시작해 펑샤오강 감독의 <야연>을 비롯 당대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고 있다. 이 포스터는 펑샤오강 감독의 최신작 <페이청우라오>의 홍보포스터. 제작사 역시 <카라는 나의 개>를 만든 화이브라더스. ⓒ Huayi Brothers



이제 카라를 되찾아 오려면 '양거우(养狗)허가증'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불과 18시간만 남았다.

만 하루도 되지 않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공장노동자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그에게 긴박한 시간임에도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서 영화는 한심한 정도로 느리게 일상을 그려낸다.

아빠의 소중한 희망이며 집안의 화평을 유지하는데 카라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아들 량량도 고군분투한다. 공안인 친구 아빠를 찾아가 사정해보지만 실패한다.

다음날 등교해 친구에게 또 다시 부탁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친구를 괴롭히던 학교 불량배를 뒤쫓아가 자전거로 치어 사고를 내는데 팔꿈치가 부러지는 바람에 유치장에 감금되고 만다.

라오얼은 친하게 지내던 이웃 이혼녀를 찾아가, 그녀의 개 허가증을 빌어 경찰을 속이려 하지만 실패한다. 카라와 닮기는 했지만 허가증 속 개 사진과 눈 주의 색깔이 다른 것을 눈치챈 경찰로부터 호통만 듣고 만다.

다시 허가증을 되돌려주러 가자 이혼녀는 그를 딱하게 여긴다. 전 남편의 도움을 받아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수소문을 거듭한 끝에 도시 외곽에 있는 개 처리장으로 가게 된다. 허가증 없는 개들이 오게 되는 곳인데 카라 대신 키우라며 엉뚱한 개를 받기도 한다.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 카라가 오면 집으로 되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 <카라는 내 개다>에서 라오얼과 이혼녀가 버스를 타러 급하게 뛰고 있다. 베이징 외곽에 있는 개 집하장에서 카라를 구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 Huayi Brothers



여전히 불안한 그는 집으로 돌아와 꼬깃꼬깃 모아둔 비상금을 모두 꺼내 아내에게 돈을 달라고 사정해 본다.

아내는 늦게 돌아온 라오얼과 이혼녀와의 사이를 의심해 왔던 터라 오히려 부부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게다가 거금 5000원씩이나 써서 개를 데려올 필요가 있냐며 화를 낸다. 결국 이혼녀 때문에 싸우고 카라 때문에 다투고 이윽고 둘 다 지치고 만다.

서서히 감정을 죽이고 아내는 전 재산인 정기예금통장을 내놓고 교육비와 생활비 걱정을 한다. 라오얼은 통장을 되돌려주며 "카라 필요 없어"라고 한다.

개 한 마리 허가 받을 여유 돈조차 없지만 카라의 소중함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서민 가정의 하소연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자괴감이 교차한다.





카라와 통장으로 인해 부부는 오랜만에 화해를 하고 밥과 술 그리고 오이를 나눠먹다가 서로 사랑을 하려고 커튼을 친다. 그러나, '여전히 카라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아내의 말에 그들의 사랑은 멈추고 만다.

오후인데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밤샘 근무로 낮잠을 자는 라오얼을 깨운다. 아들을 찾아 다니던 중 동물시장에서 불법으로 숨어 파는 일당에게서 개 한 마리를 속아서 사고 만다. 본전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동물시장에 앉아 개를 되팔려고 한다. 다시 불법 단속에 걸린다. 공안은 카라 때문에 파출소를 다녀간 라오얼이 일당이 아닌 어수룩한 서민임을 알고 풀어준다.

▲ <카라는 내 개다>의 한 장면. 라오얼 부부가 카라와 이혼녀 문제로 다툰 후 다시 화해하면서 하는 대화. 아내가 계속 의심하자 "정말 아무 일도 아냐. 마오주석에 걸고 맹세해'라고 하는 장면 ⓒ Huayi Brothers

▲ <카라는 내 개다>에서 강아지를 속아서 산 걸 알려주는 한 아가씨가 라오얼을 부르는 장면. ⓒ Huayi Brothers






이제 오후 4시까지는 1시간 남았다. 아들을 찾기 위해 학교에 가고 다시 할머니 집을 찾으니 아들이 다녀간 것을 알게 됐다. 집 앞에서 이혼녀가 카라를 저녁에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동시에 집으로 들어가니 아들이 파출소에 잡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라오얼과 아내가 파출소에 가니 마침 개들을 태우고 갈 트럭이 나타난다. 라오얼은 아들 일을 잊고 카라에게 사료를 주며 안쓰러워 한다. 정에 못 이겨 카라를 탈출시키려 하지만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때 유치장에 있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시 만난 공안으로부터 피해자 부부의 항의가 거센 것에 기가 막히고, 또 만나는 라오얼을 바라보는 공안도 너무나 한심해 기가 막힐 뿐이다. 피해자 부모는 법정으로 가겠다고 기세가 등등하고 라오얼이 아무리 사정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피해보상을 협의하고 있는데 카라 울음소리가 들린다. 카라를 태운 트럭이 파출소를 떠나려 한다. 철창 밖으로 목을 빼고 낑낑거리며 안타깝게 우는 카라. 유치장 안에서 카라 울음 소리를 들은 아들이 소리친다. 다시 아들에게로 가보지만 '아빠 자격조차 없다'는 소리에 쓸쓸히 돌아서고 만다. 그렇게 아들도 카라도 그에게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무거운 존재들이었다.

오후 4시 5분. 가게(超市) 앞에서 물건을 사던 아내는 카라를 태운 트럭이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아들 생각에 파출소를 향해 고개를 돌려본다. 그리고 카라가 떠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 슬로모션이다. 영화가 끝났다. 그리고 자막이다.

카라는 그날 저녁 다시 라오얼의 집으로 돌아왔다.
라오얼은 다음날 파출소에 가서 카라를 호적에 올렸다.

영화는 끝났고 카라도 다시 되돌아왔지만 그들의 삶은 또 어떻게 변화해갈까. 카라를 호적에 올리기 위해 통장을 해지했으니 또다시 하루 벌어 하루 살며 어렵사리 조금씩 돈을 모아가겠지. 그리고 정부정책에 따라 흔들리는 서민들의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 <카라는 내 개다>에 출연한 배우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라오얼, 그의 아내, 아들. 젊은 공안, 이혼녀, 그리고 마지막은 이 영화 제작자이면서 유명 감독으로 개를 운반하는 기사 역으로 나온 펑샤오강. ⓒ Huayi Brothers




능력 없고 가진 것 없지만 열심히 일만 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지만 순박하게 살아가는 라오얼에게 카라는 아내보다도, 아들보다도 더 사랑스러운 가족이다. 아내도 아들도 라오얼을 사랑하고 존경하기는커녕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카라는 달랐다.

퇴근하면 현관에서부터 반기고 이리저리 따라 다니고 안기고 함께 놀아주는 위안이었다. 도박에 빠져 집에도 들어오지 않던 라오얼이 카라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도박을 끊었다. 그런 카라가 없는 삶은 무덤과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 <카라는 내 개다>의 감독 루쉬에창. ⓒ 소후닷컴 sohu.com


희극황제로 불리는 거여우의 시선과 목소리 그리고 자질구레한 몸짓은 서민적이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이 영화의 재미며 주제를 부각시키는데 긴요하다.

영화 앵글이 머무는 곳마다 베이징 도심 후퉁(胡同, 골목)의 적나라한 모습과 무질서와 혼란, 불법과 사기가 판치는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정책을 집행하는 공안과의 더도 덜도 아닌 관련성을 군데군데 세밀하게 잘 묘사했다. 그 속에서 가끔씩 저절로 터지는 웃음이 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는 색다른 흥미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빼앗긴' 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만 하루 동안의 에피소드는 애완견에 대한 그저 그런 애정표현이 아닌, 소외된 사회 빈곤 계층의 무기력과 아픔, 슬픔을 대변하고자 했다.

코미디 장르 영화이면서도 장면마다 차분하고 안정된 전개가 돋보인다. 그래서, 베를린영화제 초연 당시 전통적 방식의 코미디영화보다 더욱 익살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회 풍자를 더욱 리얼하게 드러내고자 한정된 시간(18시간) 안에 마무리(카라의 회수)돼야 할 일상을 끌어냈음에도 오히려 여유가 넘치게 다양한 일상을 두루 섭렵하는 수법과 솜씨는 이 영화의 감독을 되새겨 보게 한다.

또한, 이 영화는 서민 생활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고 매우 짜임새 있다. 루쉬에창 감독의 영화가 '시나리오가 탄탄하다'는 평가와 잘 어울린다. 그의 영화는 정말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다른 감독들과 달리 인간의 감성 표현에 아주 깊이 천착하는 감독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13억과의대화 www.youyue.co.kr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오현정(한양대학교 국제관광대학원 엔터테인먼트학과)과 공동 작업으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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