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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도시락엔 상큼한 쑥대머리 아니 쑥버무리

세상 불안하지만 우리집은 그나마 먹을거리 걱정없다!!

등록|2009.04.14 09:28 수정|2009.04.14 09:28
너무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른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갈아놓은 논밭에 씨를 뿌리고 논물을 대야하지만 흙먼지가 풀풀 날릴 정도입니다. 그래도 작은 생명들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초여름처럼 더운 봄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여갑니다.

▲ 들길에 쑥과 민들레가 자라났다. ⓒ 이장연


그런 날 아침을 드시고 들에 나간 아버지는 고추모를 심어둔 비닐하우스의 속비닐을 걷어내고 비닐창을 열어둔 뒤 논둑에 솟아난 풋푹한 쑥을 캐왔습니다. 변덕스런 봄날씨에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 어린 손자를 위해 "쑥떡이라도 해주라"며 캐온 쑥을 어머니께 건넸습니다.

▲ 아버지가 캐온 쑥 ⓒ 이장연


▲ 봄하면 역시 쑥이다!! ⓒ 이장연


▲ 물에 잘 씻어놓은 쑥 ⓒ 이장연


그 쑥에 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다듬어 물에 깨끗이 씻어내 소쿠리에 담아낸 뒤, 너무 더운 날씨에 쌀벌레 걱정을 하시는 어머니는 우리집 쌀을 물에 불렸습니다. 아침상을 치운 뒤 오전 11시 쌀을 잘 씻어 2시간 가량 물 속에 담궈두었습니다. 불린 뽀얀 쌀은 오후 4시쯤 방앗간에 가서 쌀가루로 빻아왔습니다.

▲ 물에 불린 쌀 ⓒ 이장연


새하얀 눈보다 더 고운 쌀가루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날 아침 쑥과 쌀가루가 모두 준비되자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휴대용버너에 시루 대용 양재기와 물을 부은 솥을 올렸습니다. 그 뒤 냉장고에서 하룻밤을 보낸 쌀가루를 손으로 "사사삭" 비벼서는 뭉친 것들을 털어낸 뒤 쑥과 함께 버무렸습니다.

▲ 빻아온 쌀가루를 손으로 비벼 뭉친 것을 풀어냈다. ⓒ 이장연


▲ 쌀가루를 손바닥으로 비빈다. ⓒ 이장연


▲ 휴대용 버너에 솥과 시루를 올려놓았다. ⓒ 이장연


▲ 쑥과 쌀가루 버무리기 ⓒ 이장연


상큼한 쑥향기 그득한 쑥버무리 강추!!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린 것을 명주천을 깐 시루에 골고루 쏟아내고는 쪄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옛날 먹고 살기도 힘들 때 음식 축에도 못 들었다는 쑥버무리입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 많이 해먹었다며,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 한 대목인 "쑥대머리~"를 콧노래 부르며 흥겹게 쑥버무리를 쪄냈습니다.

한 시루 가득 쪄낸 쑥버무리는 그 특유의 상큼한 쑥향기로 입속에 침이 그득히 고이게 했습니다. 아직은 뜨거운 쑥버무리를 "후후후" 불어가며 집어 입에 넣으니 고운 쌀가루와 어울린 쑥이 입에서 아이스크림처럼 스스로 녹아내렸습니다.

▲ 쪄낸 쑥버무리 ⓒ 이장연


이래서 어머니는 쑥떡이 아니라 쑥버무리를 하셨나 봅니다. 어린 손자가 먹기 좋을 만큼 부드럽고 손으로 집을 수 있는 쑥버무리를. 그 덕분에 "아들이 점심도 잘 챙겨먹지 않는다"며 안쓰러워 하시는 어머니가 담아준 쑥버무리 도시락을 도서관에 갈 때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벚꽃이 만개하는 봄나들이 가실 때는 불안한 먹을거리보다 몸에 좋은 쑥과 우리쌀로 만든 쑥버무리는 어떨까 싶습니다. 추억의 쑥대머리 아니 쑥버무리를!!

▲ 쑥버무리로 점심 도시락을 ⓒ 이장연


▲ 상큼한 쑥향기 가득, 손으로 집어먹는 재미도 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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