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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

여수시 덕충동 철거 예정지 ‘귀환정’ 사람들의 하소연

등록|2009.04.14 14:42 수정|2009.04.14 14:42

▲ 해방으로 이렇게 일본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사는 귀환정. ⓒ 임현철


"안녕하세요. 위원장님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나는 몰라요."

여수시 덕충동 귀환정 마을 입구에서 국수를 삶고 있던 아주머니의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냉대에서 '자기편이 아닐 것'이라는 경계를 느꼈습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예정지여서 오는 8월 철거 예정인 귀환정. 그들은 자기네끼리 똘똘 뭉쳐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분에게 물었더니, 꽹과리 소릴 쫓아가면 만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취재를 요청하자 "하소연 할 곳이 없다"고 반기더군요.

▲ 여수역 철도 역사 내에 위치한 판자촌인 귀환정 입구. ⓒ 임현철


"취재 한다고 고생하는데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우리 기사 좀 잘 써줘!"

취재하다 보면 이런 소리 종종 듣습니다. 보통 한쪽 귀로 흘리지요. 그러나 지난주 철거 예정지에서 만났던 할머니들의 집단 하소연은 차마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밥까지 얻어먹은 터라 더욱 그러하였지요.

"취재 한다고 고생하는데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아~예. 가서 먹으려고요."

철거 대책위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료 챙기느라 움직이고 있는데 식사를 권했습니다. 이게 사람 사는 맛 아니겠어요.

"그러지 말고 여기서 먹어. 다른 사람들은 다 먹었어."
"됐어요. 음료수도 안 사왔는데 국수까지 먹고 가라고요, 염치없이."

그리고는 못이긴 척 건네는 국수를 넙죽 받았지요. 하여, 국수 값(?)을 해야 했지요.

▲ 귀환정 마을 공터에 앉아 있는 주민들. ⓒ 임현철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 이젠 옛말

"남사스럽지만 부부 관계가 제일 문제였지. 좁은 집에 3대가 살아도 부부관계는 해야 하잖아. 방 하나에 식구들이 모여 자다가, 방을 나누고, 아이들이 크자 그것도 안돼 다락을 올렸지. 그 고충을 알겠어?"

6~8평 좁은 곳에서 3대 7명이 살아야 했던 김종천(63)씨의 고충이었습니다. 그는 "평균 6~8백만 원의 철거 보상금으로는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며 "보상 감정 시 주민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평가를 했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5살 때 일본에서 나와 쭉 귀환정에서 살고 있는 김은순(72) 할머니는 "당시 이곳에서 가마니로 문을 치고 살았다."며 "살림이 어려워 전기세를 못내 전기가 자주 끊겼고, 가운데 구멍을 내 양쪽 집에서 나눠 쓰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형편입니다. 귀환정 마을은 본래 철도청 부지로 매년 일정 금액의 사용료를 내며 살아왔습니다. 자기 땅 한 평 없이 사용료를 낸, 누렇게 변한 영수증을 보여주는 그들의 표정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자들의 서러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 합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못 사는 게 자랑이냐?' 할 수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함께 사는 사회에서 가난은 자신의 잘못보다 사회구조 모순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 귀환정 주민들이 보여준 철도청 부지 사용료 영수증은 빛이 바래 있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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