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남' 떠난 자리에 진한 수컷의 냄새가...
KBS 새 월화 드라마 <남자 이야기>
▲ KBS 월화드라마 <남자이야기> ⓒ KBS
자살, 사채, 신체포기각서, 교도소, 조직폭력배, 적대적 기업합병, 주가조작, 찌라시, 탠프로….
<꽃보다 남자>는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며 동화처럼 행복해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 같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꽃남'의 자리를 이어갈 후속 드라마 <남자 이야기>는 첫 회부터 세상을 향해 강하게 외치는 듯 하다.
"달콤한 꿈이나 꾸는 애들은 가. 여기는 남자들의 세상이야. 먹지 않으면 먹히고 마는 수컷들의 세계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구."
송지나 작가의 새 드라마 <남자 이야기>가 드라마 마니아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 드라마로서는 최초로 방대한 스케일의 영화 작법까지 동원해 드라마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여명의 눈동자>와 한때 '귀가 시계'라고까지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모래시계>를 통해 이미 우리는 그녀의 '남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이데올로기의 혼돈기였던 한국 전쟁 막바지까지의 시대상을 담아 낸 <여명의 눈동자>에는 화약 냄새나는 '역사 속의 남자'가 있었다. 광주항쟁과 삼청교육대로 대표되는 80년대 시대상을 담아낸 <모래시계>에서는 최루탄 냄새 자욱한 '정치 속의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송지나 식 남자 이야기 그 세 번째 마당이 될 <남자 이야기>에서는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될까?
작품의 기획의도에서 작가는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전근대를 살아내었던 세대의 이야기'를, '모래시계'에서는 '우리가 세우고 지켜야 할 상식'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면, '남자이야기'에서는 '과연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돈이 사람이고 돈이 믿음이며 돈이 진리인 세상, 돈에 죽고 돈에 사는 세상, 돈 냄새가 풀풀 풍기는 세상에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잘 사는 것'은 무엇인지, 잘 사는 방법을 보여 줄 '남자'는 또 어떤 남자인지 궁금하다.
▲ KBS 월화드라마 <남자이야기> ⓒ KBS
채도우(김강우) : 돈 없이 행복하다고? 돈이 곧 자유이자 행복이다
서경아(박시연) : 남자를 사랑하는 것따윈 계획에 없어. 다만 이용할 뿐이지
앞선 두 편이 남자의 역사와 정치 이야기라면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단연 '돈'이다.
한 회사에서 삼 개월 이상 머물러 본 적 없는 천상백수 '김신'의 인생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소규모 만두 공장을 운영하던 형이 만두 파동의 오명을 쓰고 자살하자 형을 대신해 남은 가족들을 지키려다 사채업자에게 신체포기각서까지 쓰며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급한 마음에 돈을 빌렸지만 백수였던 그에게 갚을 능력이 있을 리 만무. 생각 끝에 형에게 쓰레기 만두 오명을 씌운 방송국 기자를 찾아가 살인 미수극을 벌이고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를 자처한다. 차라리 감옥에서 몇 년 지내다 나오면 빚이고 뭐고 다 잊혀지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복역 중 채동그룹 외동딸 채은수의 면회로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닥친 불행의 시작인 만두파동 배후에 채동그룹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김신. 한때 사랑했던 여자친구 경아마저 자신이 빌린 사채 때문에 속칭 '탠프로'라는 어둠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세상을 향해 복수의 칼 가는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간다.
"설마 그 땅 하나 사겠다고 그런 건 아니지? 그깟 땅덩어리 하나 때문은 아니라고 말해."
"대개 돈 없는 것들이 그렇게 말하죠. 그깟 돈 때문에 그런 짓까지 하느냐고. 그깟 돈 벌 능력도 없으면서 그렇게 말하죠. 벌 능력도 없으면서 돈 무시하면 안 되죠.… 지가 모자라서 궁상떨고 살면서 평생 남의 탓만 하면서 징징대는 거 수치스럽지 않아요?"
돈에 대한 두 사람의 극명한 견해 차이를 보여준 채도우와 김신의 교도소 만남은 앞으로 두 사람 앞에 펼쳐질 극적인 대결 구도를 짐작케 하는 장면이다.
▲ KBS 월화드라마 <남자이야기> ⓒ KBS
돈 때문에 상처 입고 그래서 세상에 돈으로 복수하려는 남자. 오직 돈이 세상이며 돈이 행복이고 돈만이 미래라고 믿으며 돈으로 세상을 사려는 남자. 그리고 돈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돈으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여자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 될 <남자 이야기>에 거는 기대는 적지 않다.
다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잘 사는 것'이라는 기획의도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도덕적이며 교훈적인 결말을 유도하려 막장드라마식의 권선징악 구도로 가는 것은 제발 피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교도소에서 집단 폭행을 당한 김신의 절규 "누구한테 뭘 어쩌면 되냐구?"에 대한 안경태의 대답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
"돈, 머니, 오까네. 그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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