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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이던 은행들, 벌써 과거가 그리운가

정부 지원금 받을 땐 언제고, 다시 공익보다 수익추구에 골몰

등록|2009.04.15 16:50 수정|2009.04.15 17:28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규모 정부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은행들이 그 동안 정부의 압박과 국민의 비난 앞에 숨죽이며 지내오다가, 최근 억눌렸던(?)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미국 금융가의 때 이른 기대와 은행들의 저항

이는 미국에서 먼저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최대 생명보험사 중 하나인 메트라이프가 자본금이 충분하다며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골드만삭스도 이미 받은 구제금융 가운데 100억 달러를 상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구제금융을 대가로 요구하는 각종 규제와 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수익을 추구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최근 1/4분기 경영실적이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웰스파고와 골드만삭스가 예상보다 높은 흑자를 기록한 것이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이 되고 있다. 웰스파고는 지난해 인수한 와코비아의 실적을 포함한 1분기 순이익이 30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혀 그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4월 13일자로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1분기 순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퍼센트 증가한 18억100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분위기를 이어갔다.

▲ [그림1] 주요 은행들의 주가 추이 ⓒ 새사연



그 결과 미국 은행들의 주가가 상승하고 2월에 몰아쳤던 상업은행발 제2의 금융위기가 소강상태를 넘어 회복조짐에 들어선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낳게 했다. 4월 16일 발표될 JP모건의 실적과, 특히 17일 발표될 씨티그룹의 실적이 나와봐야 좀 더 그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미국 정부가 시행중인 자산규모 1000억 달러 이상의 19개 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4월 말에 나와야 알겠지만, 과연 금융위기 국면이 끝났다고 자신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간섭을 피해보려는 움직임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 와중에도 실업률은 이미 8.5퍼센트를 돌파했고, 소매판매지수가 부진을 보이는 등 실물경제 악화는 계속되고 있다. 실업률 기준으로 본다면,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의 기본시나리오는 이미 넘어버렸고, 최악의 시나리오인 8.9퍼센트도 훌쩍 넘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 [표1] 미국 19개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시나리오 ⓒ 새사연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이 파산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는 무작정 정부에 손을 벌리다가 사태가 조금 나아지자, 곧바로 과거처럼 정부의 규제를 벗어나 다시 사익을 추구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국내은행, 정부의 자본확충 요구 때문에 손해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최근 조금 다른 문제로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로 지난해 말 정부가 은행들에게 자본확충을 요구해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발행했던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 채권) 부담에 대한 불만이다.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자, 국내 시중은행들도 자금조달처가 막히고 대출부실이 확대되면서 자본 건전성이 악화되는 등 위기의 징후를 보이게 된다. 그러자 당황한 정부는 2008년 11월 14일 서둘러 1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을 발표하면서 금융채 매입에 나섰고, 2008년 12월 3일에는 금융감독원이 은행별로 적정 자기자본비율(12퍼센트) 달성을 위한 자본확충 필요액을 제시하면서,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BIS 비율을 12퍼센트까지 늘리라고 압박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2008년 12월 18일,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자본확충 펀드' 20조 원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2009년 2월 시행에 들어가 2009년 3월 말까지 1차로 4조 원 규모의 은행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를 매입했다.

▲ [표2] 자본확충 펀드에 의한 은행별 매입액 ⓒ 새사연



그런데 정부가 자본확충펀드를 동원해 은행채를 매입하기 이전에, 주요 시중은행들은 채권시장을 통해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을 팔아서 자체적으로 자본을 조달해왔다. 이렇게 시중은행들이 조달한 자금이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후순위채권 약 9조 원, 신종자본증권 약 4조 원 규모에 달한다(금융감독원 국회정무위 업무보고 2009.4.13). 

[표3]에서 볼 수 있듯이, 2008년 말 후순위채나 신종자본 증권 발행시 은행들은 7~9퍼센트를 넘나들 만큼 높은 금리를 물어야 했다. 그러나 최근 기준금리가 2퍼센트까지 떨어지고 금융위기가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대출 금리도 급격히 떨어지자 지난해 고금리로 조달한 것이 은행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 [표3] 주요 은행 자본확충 현황 ⓒ 새사연




현재 시중금리가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준으로 고시금리는 3~5퍼센트, 실제 적용금리는 5퍼센트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7~8퍼센트에 자금을 조달해서 5퍼센트 수준으로 대출을 해야 할 판이니 예대 마진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역마진을 우려하는 상황이 과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은행들은 곧바로, 지난해 말 정부가 강압적으로 자본확충을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고금리로 후순위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지금 수익성 압박을 받게 되었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 한 고위 인사가 "금융당국이 선제적인 자본확충을 강조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채 발행에 나선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 사례가 그것이다(<매일경제> 2009.4.14).

반년 전의 아찔한 위기를 잊어버린 은행들

하지만 이는 한국의 시중은행들이 불과 3,4개월 전 스스로의 상황이 어땠는지를 망각하고 하는 발언이다. 이미 2008년 10월부터 시중은행들은 환율폭등과 단기차입외화 만기 연장을 할 수 없어 줄줄이 신용등급 하향 경고가 이어졌고, 신용스프레드가 커져서 외화 조달금리는 급등했다. 그 때문에 정부가 시급히 외화 1000억 달러 지급보증과 300억 달러 지원을 포함한 유동성 공급에 나서야 했다.

이어지는 실물경제 침체로 연체율이 올라가면서 대출자산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산건전성도 위협을 받게 된다. 이미 과잉된 CD와 은행채는 소화되지 않아 원화 자금조달에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자본건전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2008년 연말까지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지 못해 은행 신용등급이 강등되었다면, 연쇄적으로 신용위험이 높아져 은행 신용부도스왑이 올라가고 차입을 위한 가산금리가 폭등하는 사태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다소 상황이 풀리니 이런 위급한 상황을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시중은행들이 까맣게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이 급전직하로 하락하고 차입금 만기 연장은 50퍼센트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며, 실적 역시 적자로 반전되어 2008년 4분기 기준 18개 은행들이 대략 3000억 원의 순손실을 보기까지 했던 것이 바로 몇 개월 전이었다. 고금리라도 감수하고 자본확충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BIS자기자본 비율이 2007년 말 12.3퍼센트에서 2008년 9월 말 10.9퍼센트로 떨어졌던 것이, 그렇게 자본확충을 했다고 해봐야 2008년 말 기준으로 1년 전 수준인 12.3퍼센트 되돌아온 것에 불과했다.

은행의 고금리 부담, 경영권을 지키려고 스스로 택한 길 아닌가?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왜 은행들이 자본확충 방법으로 주식을 늘리지 않고 부채라고 할 수 있는 채권을 늘렸는가 하는 점이다. 은행들이 비싼 이자를 감수하고 자본확충을 위해 발행했던 후순위채권이나 신종자본증권은 엄밀히 말하면 부채이지 자기자본이 아니다. 일반 은행채에 비해 상환부담이 적어 BIS에서 소위 보완자본(Tier 2)으로 인정해주는 것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에는 은행 건전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후순위채권이 포함된 BIS자기 자본비율이 아니라 순수하게 주식만을 자기자본으로 인정하는 '기본 자기자본(Tier 1) 비율'로 평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아예 의결권과 책임성이 없는 우선주도 빼고 보통주만을 가지고 자산건전성을 엄밀하게 평가하는 '보통주 자기자본비율(단순자기자본비율; TCE, Tangible Common Equity)'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중은행들은 의결권과 경영권 위협들을 회피하기 위해 굳이 후순위채 발행이나 신종자본증권 발행이라는 편법적인(?) 방식의 자본확충에 집착을 했고, 그 대가로 높은 금리 부담을 감수했을 뿐이다. 즉 시중은행들은 어떻게 하든 경영간섭을 피해보려고 정상적인 자본확충방법인 보통주 증자는 물론이고 우선주 발행도 하지 않고 오직 후순위채권 등의 발행에만 의존했다. 그 대가로 고금리 지불은 당연한 것이었다. 더구나 우리 정부가 사실상 공적자금으로 은행의 자본확충을 지원하면서도 언제나 경영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친절한(?) 단서조항까지 달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부실 위험에 빠진 씨티은행에 대해 미국정부가 우선주를 매입했던 것과는 대비된다(2009년 2월 27일, 미국 정부는 씨티은행에 투입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시키면서 사실상 국유화했다). 결론적으로 고금리 후순위채 발행 부담은 은행이 선택한 것이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은행 민영화 재검토, 그러나 산업은행 민영화는 왜 계속?

더욱 황당한 것은 시중은행들이 정부가 후순위채 발행을 압박한 것을 두고 "자본확충이 시급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중소기업 대출을 무리해서 늘리라는 당국 주문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매일경제> 2009.4.14).

상식적으로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은행 자본확충을 지원해 준다면 당연히 은행 자신만을 위해서일 수가 없다. 국민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이 기업과 가계의 대출여력을 확대할 목적이 있음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이 같은 주장을 한다면 심각한 글로벌 금융위기 한 복판에서도 오직 은행 자신만 살겠다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아니다.

그 어떤 금융회사보다 공적인 책무가 큰 은행들이 국민경제의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속한다면 사실상 어떤 지원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은행들에 대한 평가 지표를 오직 '수익성'으로만 측정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향후에는 적어도 은행에 대해서는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 이외에 '산업적 기여도'와 같은 공적 지표를 만들어 정부지원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 공적 은행들의 역할과 비중을 높여 사적 수익만을 추구하는 시중은행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것마저 검토되어야 한다.

최근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한 포럼에서 "기업은행은 (산업은행과 달리) 민영화 자체가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문제제기가 있다"면서 "그나마 기업은행이 있어서 금융위기 상황에서 이 정도라도 대응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고 주장했다(<한국경제> 2009.4.13).

최근 시중은행들의 행태에 비추어 바람직한 주장이다. 새사연은 이미 금융위기 초반기인 2008년 9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에 대한 민영화 계획도 현재 상황에서 추진하기에는 무리다. 그나마 국내 시중은행이 대부분 민영화되고 외국인 지분이 다수인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국책은행마저 민영화하겠다는 것은 금융불안에 대비할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없애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새사연,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와 MB정부의 경제정책 전환", 2008.9.22)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진 위원장은 동시에 "기업 금융에 노하우를 축적해온 산업은행은 그 모델을 갖고 민영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민영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산업은행 민영화 관련법안 통과 강행 의지가 엿보인다. 어째서 기업금융 노하우를 민영화하면 발휘할 수가 있고 국책은행으로 남아있으면 할 수 없단 말인가?

일시적으로 금융위기가 소강상태에 빠지자 미국은행들에 이어 한국의 시중은행들이 다시금 규제와 감독을 피해 수익추구에 몰두하려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 실물경제 불황에서 그들은 아무런 교훈도 얻고 있지 못한 것이 확실한 걸까.

잠시 주식시장이 반등세를 보이자 그 동안 반 토막 난 펀드판매로 곤욕을 치러 다시 적금상품 판매로 돌아섰던 은행들이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펀드판매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펀드 평가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2007년 10월 말 기준으로 설정한 국내주식형펀드 694개의 유형 평균 수익률이 2009년 4월 13일 기준으로 -35.54퍼센트로 집계되었다. 해외주식형 펀드는 -52.45퍼센트로 여전히 반토막이다(<연합뉴스> 2009.4.14). 펀드판매 재개를 서두를 시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 동향을 보건데, 수익추구 제일주의와 주주자본주의 틀에 갇혀있는 국내 시중은행들이 스스로 구조전환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찍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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