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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282)

― ‘이런 식의 쇠고기 징발’, ‘성적으로써 인간을 평가하는 식의 세상’ 다듬기

등록|2009.04.16 20:31 수정|2009.04.16 20:31

ㄱ. 이런 식의 쇠고기 징발

.. 10년 동안 이런 식의 쇠고기 징발은 계속되었다 ..  《어니스트 톰슨 시튼/장석봉 옮김-위대한 늑대들》(지호,2004) 32쪽

 늑대가 농장에 있는 소를 한 마리씩 잡아가는 일을 '징발(徵發)'이라는 말로 빗대었습니다. 빗대는 말이기에 어떠한 낱말을 넣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울궈가기'나 '빼앗기'나 '거두어들이기' 같은 낱말을 넣었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품앗이' 같은 낱말을 넣어 볼 수 있고. '계속(繼續)되었다'는 '이어졌다'로 손질하고, "10년(十年) 동안"은 "열 해 동안"으로 손질해 줍니다.

 ┌ 식(式)
 │  (1) 일정한 전례, 표준 또는 규정
 │  (2) = 의식(儀式)
 │   - 식이 거행되다
 │  (3) [수학] 숫자, 문자, 기호를 써서 이들 사이의 수학적 관계를 나타낸 것
 │  (4) '수법', '수식'을 나타내는 말
 │   - 곱셈식 / 덧셈식 / 나눗셈식 / 뺄셈식
 │  (5) 일정하게 굳어진 말투나 본새, 방식
 │   - 그렇게 농담 식으로 말하면 / 그런 식으로나마 그를 상대해 주고 있는 것이
 │
 ├ 이런 식의 쇠고기 징발은 계속되었다
 │→ 이런 식으로 쇠고기 징발은 이어졌다
 │→ 이렇게 쇠고기 앗아가기는 이어졌다
 │→ 이런 쇠고기 훔치기는 이어졌다
 └ …

 이런 식, 저런 식, 그런 식, 이와 같이 '式'이라는 낱말은 자주 쓰입니다. 이 외마디 한자말은 이 나름대로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외마디 한자말 없이 '이런-저런-그런'이라고만 말해도 괜찮고, '이렇게-저렇게-그렇게'라고만 말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이와 같이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또는 '이런 투-저런 투-그런 투'를 써 볼 수 있고, '이런 길-저런 길-그런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열 해 동안 이렇게 쇠고기를 훔쳐 가고 있었다
 ├ 열 해 동안 이와 같이 쇠고기를 빼앗아 가고 있었다
 ├ 열 해 동안 이처럼 쇠고기 바치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 …

 그런데, 외마디 한자말 '식'을 쓰고 싶다면 쓸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나 "저런 식으로"라 써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식의 무엇"이나 "저런 식의 무엇"처럼 꼭 토씨 '-의'를 붙여야만 할까요.

 쓸 때는 쓰고 붙일 때는 붙이면 됩니다. 안 쓸 때는 안 쓰고 안 붙일 때는 안 붙이면 됩니다. 자리와 때를 차근차근 헤아리면서 알맞게 쓰고 올바르게 붙이면 됩니다. "농담 식으로 말하면"과 "농담으로 말하면"과 "농담처럼 말하면"과 "농담 투로 말하면"이 어떻게 다른가를 살피면서, 우리 마음과 느낌을 한껏 담아낼 말투는 어느 쪽인가를 돌아보면서, 우리 말투를 가다듬으면 됩니다.

 ┌ 그렇게 농담 식으로 말하면 → 그렇게 농담처럼 말하면
 └ 그런 식으로나마 → 그렇게나마

 토씨 '-의'에서 풀려난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싶지만, 토씨 '-의'만이 아닌 다른 숱한 얄궂은 말투에서 벗어난다면 얼마나 기쁠까 싶지만, 아직 우리 삶터에서는 무척 힘든 일이라고 느낍니다. 생각이 갇히도록 학교가 가두고, 마음이 갇히도록 사회가 가두며, 넋이 갇히도록 바깥 문명이 물결치면서 가두어 놓습니다. 이 거센 물결을 슬기롭게 받아들이거나 흘려보내면서 우리 밑뿌리를 지킬 수 있으면 더없이 즐겁겠지만, 우리 스스로 물결에 휩쓸리거나 물결을 불러들이기까지 하니, 말이며 삶이며 버티거나 거듭나기 어렵습니다.


ㄴ. 성적으로써 인간을 평가하는 식의 세상

.. 인간의 됨됨이보다는 성적으로써 인간을 평가하는 식의 세상에서는, 성적부진의 학생은 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  《W.글래서/홍흥운 옮김-낙오자 없는 학교》(부림출판사,1981) 89쪽

 "인간(人間)의 됨됨이"는 "사람 됨됨이"나 "됨됨이"로 다듬고, '성적으로써 인간(人間)을 평가(評價)하는'은 '성적으로 사람을 재는'이나 '성적으로 사람을 따지는'으로 다듬습니다. "성적부진(-不振)의 학생"은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이나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으로 손봅니다.

 ┌ 성적으로써 인간을 평가하는 식의 세상
 │
 │→ 성적으로 사람을 재는 따위가 판치는 세상
 │→ 성적으로 사람을 재는 세상
 │→ 성적으로 사람을 따지는 이놈 세상
 └ …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쪼개어지고 갈라지고 나뉘어집니다. 그런데 학교에 들기 앞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쪼개어지고 갈라지고 나뉘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린 나날에는 어린 나날다운 기쁨을 누리고, 젊은 나날에는 젊은 나날다운 즐거움을 누려야 할 텐데, 이 나라 아이들한테는 웃음꽃 피우는 기쁨이 아닌, 늙어 죽는 날까지도 '돈 많이 버는 성공을 해야 한다'는 틀에 갇힌 채 주눅들거나 찌들거나 짓눌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아이들을 아주 막다른 벼랑으로 내몰면서 홀가분하고 넉넉하며 따뜻한 마음결을 북돋우지 못하게 가로막고요.

 학생만 성적으로 갈리지 않습니다. 어른도 성적으로 갈립니다. 실적을 내라느니 매출을 내라느니 소출을 내라느니 닦달을 받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벌어들이거나 거두어들이라고 하는데, 늘 '남보다'라는 말이 뒤따르고, '가장 앞에 있는 1등'조차도 '1등을 했을 때보다 더 올라서라'는 채찍질을 받습니다.

 '이만큼이면 넉넉하다'라든지 '이제 괜찮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애썼으니 되었네'라든지 '더 하지 않아도 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하늘 끝까지 경제성장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바다 멀리까지 수출을 늘려야 합니다. 지금 발디디는 이 터전을 꾸밈없이 가꾸면서 우리 모두 오순도순 어울리는 길은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습니다. 두 손에 백만 원이 쥐어져 있어도 모자라다 하고, 천만 원이 쥐어져 있어도 아쉽다 하며, 일억 원이 쥐어져 있어도 멀었다고 합니다.

 ┌ 성적으로 사람을 판가름하는 이 따위 세상
 ├ 성적으로 사람을 가르는 이 몹쓸 세상
 ├ 성적으로 사람을 나누는 이 끔찍한 세상
 ├ 성적으로 사람이 갈리는 이 더러운 세상
 └ …

 성적이라는 숫자에 매이는 동안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놓칩니다. 성적이라는 숫자놀임에 빠지는 사이 우리 손으로 우리 삶을 내팽개칩니다. 성적이라는 숫자장난에 길드는 나머지 우리 몸뚱이는 우리 삶을 잊습니다.

 삶을 놓치니 올바른 말을 놓칩니다. 삶을 내팽개치니 아름다운 말을 내팽개칩니다. 삶을 잊으니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말을 잊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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