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포르투전 결장이 '굴욕'이라고?
박지성 결장 보도한 언론의 자극적 표현 아쉽다
▲ 박지성 ⓒ manutd.com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FC포르투전 결장을 놓고 여론에서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결장의 주된 이유는 '체력 안배'였지만 문제는 단순한 결장이 아닌 18인 엔트리 제외여서 우리들에게 의문을 낳게 하고 있다.
비단 컨디션 뿐만은 아니다. 맨유는 포르투와의 1~2차전에서 4-3-3을 구사했는데 스리톱 공격수로서 맹위를 떨치기 위해서는 무섭고 파괴적인 공격 본능이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지성은 맨유 스리톱의 일원으로 활약하기에는 '1차전에서 증명한 것처럼' 공격력이 떨어지는 데다 루니-호날두-테베즈-나니에 비해 개인 공격력이 떨어진다. 맨유의 주 포메이션인 4-4-2에서는 '수비형 윙어'로서 자신의 진면목을 발휘했지만 4-3-3에서는 팀 전술의 중심인 루니-호날두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 2차전에서 4-3-3을 썼다는 것은 '감독 입장에서' 박지성의 중용이 절실하지 않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18인 엔트리 제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포르투전에 필요 없는 선수'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18인 엔트리 제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박지성이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첼시전 때도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던 시련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여론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때의 악몽이 아직까지 가시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박지성의 부족한 골 결정력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승리 집착'을 그의 결장 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첼시전과 이번 포르투전 18인 엔트리 제외는 전혀 다른 의미다. 첼시전은 시즌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 주전으로 꾸준히 모습을 내밀던 박지성의 선발 출전이 기정 사실화되면서 18인 엔트리 제외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르투전 같은 경우에는 시즌 종료까지 앞으로 많은 경기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40여 일 동안 최대 12경기(CL+FA컵 결승 진출시)를 치러야 하는 빡빡한 일정 탓에 1주일 두 번 간격으로 뛰어야 한다.
박지성은 올 시즌 나니-긱스와 로테이션 체제로 경기를 번갈아가면서 뛰었기 때문에 시즌 막판의 바쁜 일정 속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없다. 게다가 컨디션 저하로 고전했던 지난 두 경기에서 평균 63분 뛰었기 때문에 포르투전 결장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물론 팀의 1군 주축 선수로서 포르투 원정에 참가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얼마전까지 부상으로 신음하던 하파엘 다 실바도 참가했다)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된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맨유는 선수층이 두껍기 때문에 다른 옵션들을 골고루 활용할 필요가 있을 뿐, 절대로 박지성의 팀이 아니다.
그보다 더 문제는 박지성에 대한 '일희일비' 반응을 나타내는 언론이다. 박지성이 좋은 활약 펼치는 날에는 호의적으로 보도하면서, 결장하는 날에는 팀 내 입지에 문제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비롯해서 '위기'를 운운하며 그를 흔들었다. 특히 지난 1월 말에는 박지성이 3~4경기 연속으로 빠지면서 입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체력 안배였을 뿐이다. 그는 2월부터 꾸준히 경기에 투입하면서 거의 매 경기마다 주전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퍼거슨 감독이 2~3월에 A매치를 비롯해서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있도록 체력적인 배려를 했던 것 뿐이다. 언론들이 숲이 아닌 나무만 바라보니, 소위 '박지성 안티'들이 넘쳐나는 것이며 냄비 여론만 더 가중될 뿐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포르투전 이후에는 일부 언론의 박지성 관련 보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한 경기 빠졌다고 해서 자극적인 표현을 써야 할 필요가 있나?'는 것이 필자의 머릿속 요지. 어느 모 일간지 기사의 첫 문장에서는 "박지성이 출전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는 굴욕을 맛봤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일간지에서는 <(박)지성, 내리막길?...챔스리그 8강 2차전 명단서 제외>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포르투전에 빠졌다고 해서 뭐가 굴욕이고 또 무엇이 내리막길인지 참으로 즉흥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기자들은 현직에서 활동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문장 공부를 했다. 하지만 독자들을 납득할 수 있는 좋은 기사 문장을 쓰려면 사실에 적합한 알맞은 단어를 써야 한다. 아무런 말이나 갖다 붙이면서 독자를 자극시킬 소지가 있는 표현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사실의 본질이 흐려지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 그리고 문장의 호흡이 매끄러워야 그 기사를 읽는 독자의 호흡도 매끄럽기 때문이다.
박지성이 포르투전에 빠졌다고 해서 맨유 커리어에 굴욕적인 일을 겪거나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앞으로 많은 경기들이 남아있는 데다 시즌 막판에만 중요한 경기에 출전할 기회가 여럿 있다. 포르투전 이전까지 두 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는데, 단지 한 경기에 결장했다고 해서 굴욕이나 내리막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두 단어 모두 함부로 쓰면 안된다.
그리고 일부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는 박지성이 중요한 경기에만 빠졌다고 주장한다. 물론 포르투전 18인 엔트리 제외로 인한 여파가 컸다. 그런데 박지성을 두고 '강팀용 선수'라는 수식어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비록 박지성은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과 이번 포르투전에서 18인 엔트리에 빠졌지만, 최근 1년간 중요한 경기에 많은 모습을 내밀었던 선수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과 4강 1~2차전 4경기를 비롯해서 인터 밀란 원정,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첼시-리버풀 같은 빅4팀과의 대결에서 선발로 출전했다. 하물며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풀타임으로 뛰었다. 단지 포르투전 18인 엔트리에 빠졌다고 해서 중요한 경기에 쓰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떤 언론에서는 박지성이 중요 경기 명단 제외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며, FA컵과 리그 컵(칼링컵) 토너먼트 방식의 주요 승부에서 간혹 제외되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올 시즌 FA컵 16강전과 8강전 모두 선발 출전했으며 이제 4강 에버튼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칼링컵은 다른 대회에 비해 권위가 미약한 '군소 대회'일 뿐이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칼링컵 결승전 엔트리에 올리지 않았던 이유는 칼링컵 공헌도가 미약했기 때문이다.(베르바토프, 캐릭도 출전 안했다.) 그동안 칼링컵에서 팀의 결승 진출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영건 및 백업 선수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이들을 결승전에 과감히 선발 출전시켰던 것이다.
만약 박지성이 국내 언론에서 굴욕, 내리막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포르투전에 뛰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지친 상태에서 포르투전에 모습을 내밀었다면 좋은 경기력을 장담할 수 없는데다 컨디션 저하만 더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부상의 위험성만 더 커지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큰 부상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던 그였기에 퍼거슨 감독이 그동안 무리하게 출전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포르투전도 그 중 하나의 '예'였을 뿐이지 절대로 굴욕이 아니다.
아무리 박지성이 '맨유 에이스' 호날두처럼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전하지 못한다고 해서, 호날두처럼 특출난 공격력을 보유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는 아니다. 일부 언론에서 굴욕, 내리막길을 운운하더라도 박지성의 가치 및 팀 내 위상은 여전히 변함 없으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경기에 변함없이 모습을 내밀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맨유에서 네 시즌 동안 로테이션의 주축으로 뛰면서 완전히 입지를 굳혔기 때문에 그의 입지가 문제 있다는 주장도 이제는 설득력을 잃었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의 여전한 신뢰를 받으며 팀에서 성실한 소유자로 인정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성보다 개인 기량이 뛰어난 나니가 벤치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것은, 퍼거슨 감독이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를 선호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박지성에게 굴욕, 내리막길 운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so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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