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달러, 과연 '노씨 패밀리 사업자금'일까?
[분석] 3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본 검찰-노무현측 공방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지난 12일 밤 11시 35분경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 사이의 500만 달러 거래 의혹 등과 관련해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14시간여 동안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뒤 굳은 표정으로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우리 증거에 의해 노건호씨의 진술이 번복되고 있다.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인 대검 중앙수사부(검사장 이인규)가 17일 작심한 듯 '발언'했다. 일부 언론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에 건넨 '600만 달러'와 노 전 대통령의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을 겨냥한 일종의 '반격'이었다.
그동안 검찰은 500만 달러의 실체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 처남 권기문씨, 최측근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을 수차례 소환해 조사해왔다. 검찰은 연씨에게 투자됐다는 500만 달러의 종착지는 노건호씨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노씨가 500만 달러에 상당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로 노씨와 연씨가 공동으로 설립한 엘리쉬&파트너스의 투자금이 노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오르고스'와 노씨의 외삼촌 권기문씨의 국내회사에 흘러들어 갔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검찰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장남과 조카사위, 처남 등이 500만 달러 투자 흐름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500만 달러가 노씨 일가 투자사업을 위한 종자돈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씨와 연씨 등은 대리인을 통해 "엘리쉬&파트너스가 오르고스나 권씨 회사에 투자한 적이 없다"고 관련 의혹들을 일축했다. 이들은 "나중에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향후 치열한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쟁점①] 노건호씨는 '엘리쉬&파트너스'의 대주주인가?
▲ ⓒ 권우성
이후 500만 달러의 40%인 200만 달러는 타나도인베스트먼트에 남겨두고, 60%인 300만 달러는 노씨와 공동으로 설립한 또다른 창업투자회사 '엘리쉬&파트너스'에 투자했다. 두 회사 모두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됐다.
엘리쉬&파트너스는 지난해 3월 이후 300만 달러의 일부를 미국·베트남·태국 등지의 리조트 개발사업 등에 투자했다. 문제는 엘리쉬&파트너스의 설립을 노씨가 주도하면서 생겼다. 엘리쉬&파트너스의 대주주가 노씨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 이는 300만 달러의 투자처, 규모 등을 노씨가 결정할 만한 위치에 있음을 뜻한다. 500만 달러 실소유주와 직결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노씨와 연씨가 타나도인베스트먼트와는 별개 회사로 서로의 지분을 나눠 가지는 형태의 엘리쉬&파트너스를 만들었다"며 "하지만 실제 지분으로 들어간 돈은 없다"고 해명했다.
문 전 실장은 "(노씨가) 서류상으로 지분을 가졌지만 들어간 돈이 없기 때문에 실제 지분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며 "(서류상의) 지분조차도 LG전자로 복귀하기로 결정하면서 정리됐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노씨가 MBA 과정이 끝나면 투자회사를 설립하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노씨가 '투자'에서 손을 떼고 LG전자로 복귀한 배경과 관련, 노 전 대통령이 장남의 '복잡한 투자 흐름'을 인지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LG전자에 복귀해 올 1월부터 미국 샌디에이고법인 모바일커뮤니케이션본부에서 일해왔다.
[쟁점②] 300만 달러 일부가 처남 권기문씨 회사로 흘러갔나?
앞서 엘리쉬&파트너스가 300만 달러의 일부를 미국·베트남·태국 등지의 리조트 개발사업에 투자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이 돈이 국내회사 두 곳에도 투자됐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노 전 대통령의 처남인 권기문씨가 대표로 있다는 A사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오르고스'이다. 권씨의 A사에는 25만 달러(2억5000만 원)가, 오르고스에는 수억 원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권양숙씨의 막내동생으로 노씨의 외삼촌이다. 그는 우리은행 임원으로 재직하다 2007년 말 퇴직했다. 그는 퇴직한 이후 A사를 설립하고 엘리쉬&파트너스로부터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검찰조사에서 "외삼촌의 회사라는 걸 몰랐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노건호씨의 대리인인 김진국 변호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엘리쉬&파트너스에서 A사와 오르고스에 투자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이것만은 확실하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연철호씨의 대리인인 정재성 변호사(법무법인 부산 공동대표)도 "엘리쉬&파트너스에서 두 회사에 투자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정 변호사는 "(엘리쉬&파트너스가 권기문씨 회사에 투자했던 시기는) 권씨가 우리은행 임원으로 재직하던 시기"라며 "정권 교체를 눈앞에 두고 몸조심하던 상황인데 권씨가 회사를 차릴 수 있었겠는가"라고 부인했다.
문 전 실장도 "노씨의 지분이 있다는 회사(엘리쉬&파트너스)에서 권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 투자했다는 보도가 있어 내부에서 확인해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며 "검찰이 공식브리핑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는데 어떤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얘기하는지 밝혀야 한다"고 오히려 검찰 쪽을 압박했다.
[쟁점③] '오르고스'는 노건호씨 소유 회사인가?
엘리쉬&파트너스가 300만 달러의 일부를 국내에 투자했다고 의심받는 곳은 앞서 언급한 A사와 오르고스다. 오르고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인터넷서비스업체다. 지난 2007년 12월 노씨의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 동문인 정아무개씨가 국내에서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롭게도 오르고스의 설립 시기는 박 회장과 노씨가 베트남에서 만나고, 노씨가 갑자기 일시 귀국하던 때와 겹친다. 이는 당시 노씨가 활발하게 사업구상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 노씨는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에도 벤처기업에 투자할 정도로 투자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노씨가 오르고스에 영향력이나 결정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오르고스의 실소유주는 노건호'라는 보도가 오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아무개씨가 대표로 있는 오르고스의 실질적 소유주가 노씨라는 얘기다.
검찰은 엘리쉬&파트너스에 투자된 300만 달러의 일부를 노씨가 오르고스 직원들의 월급, 사무실 임대료, 기타 경비 등으로 사용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노씨가 최소한 300만 달러에는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타나도인베스트먼트에 남아 있는 200만 달러도 노씨의 소유라는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의혹들이 증거로서 입증될 경우 "연씨가 투자명목으로 500만 달러를 받았을 뿐 노건호씨나 노 전 대통령과는 이 돈과 무관하다"는 기존 해명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재성 변호사는 "오르고스를 노씨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분명한 것은 오르고스건은 500만 달러와 무관하고, 엘리쉬&파트너스도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500만 달러 일부를 오르고스에 투자했다는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
다만 정 변호사는 "미국에 있는 투자회사가 노씨와 관련이 있는데 거기에서 오르고스에 투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노씨와 오르고스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 지분 소유 여부 등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특히 정 변호사는 "엘리쉬&파트너스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수익성이 있는 투자처에 투자하는 회사"라며 "(박연차 회장을 제외한 사람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건이 터져 박 회장 돈만 들어온 것으로 보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 변호사는 "박 회장으로부터 돈이 들어온 때는 권력 말기이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됐는데 박 회장이 뭐하러 (노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주겠나?"라며 '포괄적 뇌물죄'를 검토하고 있는 검찰에 불만을 터뜨렸다.
다음주중 노 전 대통령 소환할까?... "검찰, 박 회장 진술 지나치게 맹신해"
▲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인 대검찰청 10층과 11층 중수부 사무실. 직원들이 분주히 오가며 업무를 보는 가운데 11층 사무실은 외부에 노출이 되지 않도록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다. ⓒ 권우성
검찰이 500만 달러 투자 흐름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다음 주중에 노 전 대통령이 소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다음 주에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다는 보도는 너무 나간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은 시기만 남아 있어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측의 한 인사도 "검찰이 다음 주말을 넘기지 않을 것 같다"며 "다음 주초나 말에는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다만 이 인사는 "이광재 의원을 제외하고 구속된 인사들이 다 인정하니까 검찰이 박 회장의 진술을 지나치게 맹신하며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검찰은 지금 온갖 사람들을 불러 증거를 확보하려고 하고 있지만 (500만 달러와 노 전 대통령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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