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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사랑의 감별사입니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조금 더 괴로워하고 싶습니다

등록|2009.04.18 12:30 수정|2009.04.18 12:30

영어심화연수 한국의 전통문화를 영어로 소개하는 3분 스피치 시간에 같은 반 조영심 선생님(좌)은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 우리의 판소리를 영어로 소개하여 큰 반응을 얻었다. 원어민 강사인 엘리자베즈(우)가 한복을 대신 입고 연수관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했다. ⓒ 안준철


아침입니다. 매일 같이 아침이 온다는 것은 참 신비한 일입니다. 이런 신비한 일들이 매일 반복되다보니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뿐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삶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묵은 일상에서 새로움을 재발견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래 전에 한 아이의 생일에 써 주었던 시입니다.

서로 일어서는 사랑을 해요
함께 키를 키우는
자작나무 숲처럼


맑게 흐르는
시린 물줄기처럼
깨어 있는 사랑을 해요.


눈 뜨면 언제나
하얗게 서 있는
아침처럼…

이곳에 와서 통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소년 같은 설렘으로, 조금 뒤에는 영어소설 읽는 재미로 잠을 빼앗기다가(사실은 형편없는 영어실력 때문에 너무 더디게 읽다보니) 나중에는 다음날 수업을 생각해서 잠을 청하고 싶어도 통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니 몸 상태가 엉망이 되고 말았지요.

그러다가 며칠 전인가는 잠이 깨어 눈을 떴는데 아침이었습니다.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눈을 뜨자 창가에 하얗게 서 있는 아침을 본 것이지요. 그것이 저로서는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저로 모르게 "하나님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의 탄성을 지를 정도였습니다. 그 뒤로는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좀 더 잦아졌습니다.  

그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고 고달팠었는데 아침의 의미랄까 기쁨이랄까 하는 것을 되찾은 기분이어서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만나는 아침이 사실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듯, 우리가 매일같이 만나는 아이들 또한 예사롭지 않은 존재일 것입니다. 우리 교사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이지만 말입니다. 그 묵은 일상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재발견하는 것, 우리 교육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곳 담양에 와서 저에게 작은 기쁨이 생겼습니다. 가끔씩 문자로 전해져 오는 아이들의 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사랑했던 아이들, 하지만 너무도 어리고 철이 없어 그 사랑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날이 더 많았던 아이들이 엄연한 사랑의 주체가 되어 저를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문자를 날려 온 것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가 좀 거북하기도 하지만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늘 순수한 빛깔만을 띄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처음의 빛깔로 되돌리게 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괴로워한다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가장 뚜렷한 정체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괴로움이 동무처럼 따라나섭니다. 그 귀찮은 동무 덕에 매일 같이 겨우 인간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영어심화연수 개불알풀, 혹은 땅비단이라고도 불리운다. 저 작은 봄꽃들도 긴 겨울을 지나면서 꽃을 피우기 위한 괴로운 시간들을 맞이했을 것이다. ⓒ 안준철


사랑한다는 말의 반대말은 사용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그를 내 탐욕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 즐거움을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그가 필요한 것이지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혹은 명문학교로 발돋움하기 위해 아이들이 필요하듯이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 늘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일상이 되어 타락의 길을 밟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교육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사랑의 감별사입니다. 늘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자신만만했던 제가 아이들의 예리한 감별력에 무참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낭패를 당한 뒤에야 저는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런 과정에서 쓴 자작시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원어민 선생님들을 위해서 영어로도 옮겨보았습니다. 

깊어진다는 것은

색채를 잃고
밑그림으로만 남아 있는
겨울산에 와서
도취 없이 생을 사는 법을 배운다.
잎 다 떨구고 비로소
숲이 되어 서 있는 나무들
잎 진 자리마다
무한 허공이 달려 있다.
깊어진다는 것은
홀로 무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저렇듯, 제 잎을 지워
멀리 있는 것들을 보여 주는 것이리.
산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오줌통 같은 병을 매달고 서 있던
고로쇠나무들처럼
깊어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약수를 내어주기 위해
한 번 더 추워질 날을 기다리는 것이리.


Getting into profoundness

Going to a winter mountain
Which has lost its colors
And has left just a lifeless sketch
I learn how to live without fascination.
The trees standing as a part of the forest
After having cast off all their leaves
Every side of becoming leafless.
The infinite space hangs down
Getting into profoundness, I guess
Is not making his thick foliage
But letting others see remote things
By casting off his own foliage.
At a turning to the mountain track
As Korosei trees of a mountain
Hanging some bottles like a urinal tub
Getting into profoundness, I guess
Is once more waiting for another cold day
In order to give someone curable water.


고로쇠나무 연수원식당 근처에 고로쇠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고로쇠나무는 날이 따뜻했다 추웠다 해야 물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자신의 물을 원하는 누군가를 위해 한 번 더 추운 날을 기다려야한다. ⓒ 안준철


다시 아침입니다. 아침은 밤을 통과해서 옵니다. 밤이 없다면 아침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환한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밤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눈부신 4월의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들꽃들도 꽃을 피우고 다음 세대의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괴로운 시간들을 이미 맞이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사가 되어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 괴로움이 충분하지 못하자면 조금 더 괴로워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감별사인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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