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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지 않으려거든 희망을 멀리 두라

[시 더듬더듬읽기 109]정우영 시 '계족산'

등록|2009.04.18 13:34 수정|2009.04.19 08:58

▲ 계족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안개낀 풍경. 멀리 보이는 산은 식장산이며 그 뒤로 보이는 산은 서대산이다. ⓒ 안병기


계족산이란 산이름의 유래와 나

내가 사는 대전이라는 도시는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움푹 들어간 분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채 아늑한 도시를 이루고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의 지척에는 계족산(423.6m)이란 산이 있다. 이 산 정상에 서면 이런 대전의 지형 지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식장산(598m). 그 뒤로는 충남 제일 봉 서대산(904m)이 보이고, 맞은 편을 바라보면 보문산(457m)이 눈싸움을 걸어온다. 오른쪽인 서북쪽을 바라보면 금병산·우산봉·갑하산이, 서남쪽으로는 도덕봉, 백운봉 등이 계룡산을 호위하듯 가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산줄기들 너머로는 전북 완주군·충남 금산군·논산시 벌곡면 걸친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는 대둔산이 동서로 달려가고 있다.

난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산을 오르내린다. 신선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산을 오르노라면 머릿속 헛된 잡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두루뭉술했던 사념들이 깨끗이 정리되어 머릿속까지 가벼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얻어진 명징한 사고는 유약한 내가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되곤 한다. 사람들은 등산을 체력 단련의 한 과정으로 간주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비가 내리건, 눈이 내리건 전혀 개의치 않고 산을 오른다. 오히려 악천후를 즐긴다. 차가운 비나 눈이 뺨에 와 부딪치면서 무딘 정신을 각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산 정상에 오르면 바람이라든가, 안개라든가, 비·눈이 부리는 무궁무진한 조화가 기다린다.

때로는 대전 시내 전체가 거대한 안개 바다가 돼버리는 아득한 풍경을 지켜볼 때가 있다. 작고한 기형도 시인은 '안개'라는 시에서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라고 썼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대전 시민은 누구나 안개의 주식을 가진 셈이다. 그러나 자신이 이 안개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아는 대전 시민은 얼마 되지 않는다. 새벽에 이 산 꼭대기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언젠가 동물원에서 코끼리 쇼를 본 적이 있다. 직립한 코끼리는 별의별 재주를 다 부렸다. 어떻게 그 커다란 덩치로 저런 오묘한 재주를 부릴 수 있는지 직접 보기 전엔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계족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안개는 한 마리 거대한 코끼리다. 안개 바다 한 가운데 솟구친 안개 기둥은 거대하고 하얀 코끼리가 직립하는 동작이다. 스러지고 솟구치면서 갖가지 재주를 다 부린다.

안개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젖곤 한다. 저 안개는 어디서 흘러왔는가. 도대체 무엇 하러 여기까지 흘러 왔는가. 안개는 내게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 덧없음을 보여준다. 안개는 그렇게 존재의 궁극을 하나의 놀이를 통해 보여준다. 정지해 있는 온갖 풍경을 감싸고 돌면서 덧없음·막막함·정처 없음을 설(說)한다.

계족산(鷄足山)은 그렇게 내게 참으로 많은 것을 베풀어주는 산이다. 그러면 이 계족산이란 이름은 어디서 왔는가. 어떤 이들은 한자를 단순히 풀이해서 산의 형상이 닭의 발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이름은 봉황산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계족산이란 이름은 불교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계족산은 원래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야의 동북쪽에 인접한 산이다. 또한 석가모니의 수제자인 마하가섭이 입적한 산이기도 하다. 가섭은 아직도 석가모니불 입적으로부터 56억 7천만 년이 지난 후에야 이 땅에 와 중생을 구제할 예정인 미륵불에게 세존의 가사를 전해주려고 계족산에 머무는 중이다. 

기다림에 지쳐버린 사람들이 찾아가는 산

정우영의 시 '계족산'은 이러한 계족산에 대한 불교 설화를 바탕으로 해서 산산이 깨진 민중의 희망을 노래한 시다. 

1
가섭이여, 가섭이여
두터운 산을 깨고 눈떠 보시라
기다리지 마시라 해방세상 미륵불은 너무 멀어라
다만 오늘 여기 뼈저리게 당신을 부르는
캄캄한 마음들 속에 뒤엉킨 인연 흐늑이고 있으니
일어나라, 가섭이여
당신에게 맡겨진 석가모니의 깨달음 잘게 찢어서
저 고단한 믿음들에게 골고루 뿌려주시라

2
한 없이 머리를 조아리던 고단한 믿음들이 기다리다 지쳐 우 계족산으로 몰려갔더라. 하지만 계족산은 이미 거칠게 풀어헤쳐진 뒤라, 거기 가섭은 없고 찢어진 깨달음만 흰나비처럼 나풀나풀 날아가더라. 허공에 뽀얗게 흩어지더라.

19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정우영은 1989년 무크지 <민중시>(靑史) 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온 시인이다.

이 '계족산'이란 시는 시인이 펴낸 두 번째 시집인 <집이 떠나갔다>에 실려 있다.  첫 시집인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에서 보여줬던 변혁에 대한 열망 대신 관조적이고 생태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시가 대부분인 이 시집 속에서 첫 시집에 정신적 뿌리를 잇댄 몇 안 되는 시 가운데 하나다. 

▲ 시집 표지 ⓒ 창작과비평사

시는 2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시인이 가섭에게 전하는 기원의 말이 담겨 있으나 두 번째 장은 절망에 찬 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입적한 지 어느덧 2500년. 시인은 먼저 스승이 남긴 가사를 미륵불에게 전해주기 위해 아직도 계족산에서 기다리는 충직한 석가의 제자 가섭에게 말한다.

미륵불이 가져다줄 해방 세상은 너무 머니, 언제 올지 모르니 더는 기다리지 마라고, 차라리 "당신에게 맡겨진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잘게 찢어서/ 저 고단한 믿음들에게 골고루 뿌려주시라"고 말한다. 극존칭의 말투는 공손하지만 속내는 거의 야유에 가까워 보인다.

두 번째 장은 자신의 바람을 고분고분 얘기하던 아까와는 달리 오늘의 고달픈 현실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시인은 "한 없이 머리를 조아리던 고단한 믿음들이 기다리다 지쳐 우 계족산으로 몰려갔"다고 전한다. 마치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라는 신동엽의 시 '진달래 산천'의 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구절이다.

그러나 기다림이 왜 그리 먼지, 기다림의 끝은 어디인지를 묻고 싶어 몰려간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가섭의 모습이 아니다. 날아가는 흰나비뿐이다. 시인은 그 허망한 풍경을 보고 "깨달음만 흰나비처럼 나풀나풀 날아가더라"라고 묘사한다.  

절망보다 희망이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묻는다. 도대체 '희망이란 무엇인가'를. 희망이란 본디 기다림을 속성으로 한다. 문제는 희망이란 게 반드시 가능만을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능을 꿈꾸기는커녕 오히려 불가능을 꿈꾸는 일이 더 많다. 그 경우 기다림은 속절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은 멀리 있을 때보다 가까이 있을 때 오히려 절망에 빠지기 쉽다. 바꾸어 말해 희망이 멀리 있을수록 절망은 더디 오는 것이다.

역사 속의 민중이 어떤 경우에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희망이 가까이 아닌 저 아득히 먼 지점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80년대 변혁을 꿈꾸던 많은 사람들이 지쳐버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곧 새 세상이 올 거라는 희망이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지.  

그런데 시인이 다녀왔던 계족산은 어디일까.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계족산인지 혹은 다른 지방에 있는 산인지 가늠할 수 없다. 게족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강원도 영월·전남 순천 등 옛적에 불교가 융성했던 지방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계족산은 변혁을 꿈꾸는 시인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산일 수도 있다. 

무릇 모든 희망이 꿈꾸는 시간은 '새벽'이다. 오늘 새벽, 나는 계족산을 오르면서 생각했다. 시인보다는 가섭이 옳다고, 오랜 시일 두고 보면 쉽게 지쳐버리는 열정보다는 기다림을 평상심으로 가진 채 묵묵히 세월을 낚는 가섭이 옳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때로는 절망보다 희망이 더 고통스럽다는 걸 모른다. 실체가 잡히지 않는 희망이란 얼마나 큰 절망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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