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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웃기는 개그맨? 엄마 모셔와!"

'콩트 코미디' KBS <코미디쇼 희희낙락> 첫 녹화 현장을 가다

등록|2009.04.23 20:08 수정|2009.04.24 10:12

▲ <코미디 희희낙락>의 출연자들. 왼쪽부터 박영진, 황현희, 신봉선, 남희석, 유세윤, 김준호, 이수근, 김병만. ⓒ KBS


TV 화면으로만 봐오던 방송 프로그램의 녹화 현장, 그곳은 어떤 곳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1시간 분량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몇 시간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그곳. 스튜디오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족히 40~50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녹화 준비를 위해 종종 걸음을 하고 다녔다.

17일은 '정통 코미디의 부활'이란 기치를 내걸고 KBS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첫 녹화날이었다. 지난 3월 6일 파일럿 방송이 나간 뒤 반응을 보고 정규 편성 여부를 논의하겠다던 KBS는 장수 프로그램인 <사랑과 전쟁>를 폐지하고 그 후속작으로 <코미디쇼 희희낙락>을 결정했다(24일 밤 11시 5분 첫 방송). <개그콘서트>·<개그야>·<웃찾사>와 같은 공개 코미디가 대세로 자리 잡은 이 때, 왜 '비공개 코미디'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일까?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연출을 맡고 있는 조준희 PD는 그 질문에 "코미디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고 답했다. 방송 3사의 대표 코미디 프로가 모두 공개 코미디 프로인데, 그래서 80~90년대 우리를 웃게 만들었던 비공개 코미디, 이른바 '콩트'가 마치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취급받는 게 한 편으론 불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스탠딩 개그도 코미디고 콩트도 코미디인데 너무 한 쪽으로만 쏠리는 현상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미디 프로에서 NG라니!

<코미디 희희낙락>을 촬영하는 KBS TS-4 스튜디오 세트 앞 쪽엔 고사상 차림이 한창이었다. 새 출발을 알리는 첫 녹화이니만큼 고사를 지내는 것이다. 상이 차려지자 출연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메인MC 남희석과 패널 신봉선·유세윤·이수근·김병만·황현희·김준호·박영진까지 모두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격려차 방문한 간부들, <연예가 중계> 및 그 밖의 취재팀들까지 합세해 스튜디오 안은 북새통이었다.

고사를 지내고 연예인들이 삼삼오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이, 스태프들은 막바지 녹화 준비에 한창이었다. 현장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코미디 희희낙락>의 이선희 PD였다. 그녀는 현장을 총괄지휘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카메라·조명·오디오 상태는 어떤지 일일이 체크하고, 대본과 소품까지 하나하나 챙겼다.

낮 12시 30분, "녹화 시작하겠습니다"는 이선희 PD의 외침에 스튜디오 안은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카메라가 돌면서 드디어 녹화가 시작됐다. 시작부터 NG가 났다. 남희석과 신봉선이 오프닝 멘트를 하던 중 발음이 꼬이는 바람에 NG가 난 것이다. 관객이 있는 공개 코미디와는 달리 관객이 없는 비공개이니만큼 개그맨들은 실수나 NG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NG가 난 것은 그때뿐이었다. 멘트가 정해져 있는 오프닝 때와는 달리 이후 대화는 개그맨들이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이었고, 그들은 저마다 입담을 과시하며 스튜디오 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관객 없는 코미디... "우리만 웃긴 거 아니야?"

▲ <코미디 희희낙락>의 전신인 파일럿 프로그램 <웰컴투 코미디> ⓒ KBS


조준희 PD는 촬영 전 인터뷰에서 "관객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녹화가 진행되면서 알 수 있었다.

호응을 해 줄 관객이 없다는 것, 그건 코미디 프로에서 작지 않은 문제다. <개그콘서트>만 해도 500명에 이르는 관객 앞에서 개그를 선보인다. 그런 만큼 그에 대한 반응 역시 즉각적이다. 재미있는 멘트를 날렸을 때,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를 선보였을 때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하고 크게 호응해준다.

그런 것들이 개그맨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그런데 관객이 없으니 힘을 덜 받는 건 둘째 치고 '지금 녹화가 제대로 되고 있는 건가', '연기하는 우리만 웃긴 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다.

관객이 없는 비공개 코미디라는 불안감 때문에 <코미디쇼 희희낙락>은 '시청자 평가단'이란 새로운 장치를 고안했다. 일반인들로 구성된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을 녹화 당일 세트장에 불러 개그맨들이 만든 콩트와 여러 코너를 시청하게 한 후 '평가'를 하게 한다. 녹화가 모두 끝난 후 평가단에게 '가장 재미없는 코너'로 선정되면 해당 코너를 만든 개그맨은 '엄마 모셔와'라는 벌칙을 받게 된다.

"비공개 코미디는 한 쪽의 일방통행일 수 있기 때문에 '시청자 평가단'을 고안해서 다소나마 양방통행이 되게 만들었다"는 조준희 PD의 설명은 비공개 코미디의 위험요소를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녹화를 하면서 개그맨과 스태프들은 서로에게 "리액션(Reaction, 다른 연기자의 대사나 행동에 대해 반사적 작용으로 나타나는 연기)을 충분히 해달라"는 주문을 하곤 했다. 박수칠 일이 있으면 남희석은 스태프들에게 같이 쳐달라고 부탁했다. 코너가 방영될 땐 연출진이 개그맨들에게 좀 많이 웃어달라고 부탁했다. 관객이 없는 만큼, 리액션이 부족해지는 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비공개 코미디에서 한 발 진화한 형태의 '코미디쇼'

<코미디쇼 희희낙락>은 비공개 코미디이긴 하나 기존의 비공개 코미디와는 조금 차별화를 두었다.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구성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각자 패널들이 준비한 코너를 방영한다. 그리고 코너가 끝나면 MC와 패널들이 자체 평가를 내린다. 마지막으로 시청자 평가단의 의견을 구한다.

즉, MC와 패널 사이의 대화로 토크쇼의 효과를 노리고, 시청자 평가단이라는 변수를 집어넣어 '버라이어티'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기존의 비공개 코미디에서 한 발 진화한 형태의 '코미디쇼'라고 볼 수 있다.

▲ <코미디 희희낙락>에서 출연자들은 시청자와 패널의 평가를 받는다. 평가가 좋지 않은 개그맨은 어머니가 대신 사과를 한다. 지난 3월 6일 방송됐던 <웰컴투 코미디>에서는 개그맨 황현희의 어머니가 사과를 했다. ⓒ KBS


녹화가 진행되는 동안 소리 내어 크게 떠드는 사람은 개그맨들뿐이 아니다. 한 명 더 있다. 이선희 PD, 바로 그녀다. "테이프 갈고 다시 갈 게요"하는 이 PD의 말이 들리면 조용했던 스튜디오 안은 금세 활기를 되찾는다. 카메라 감독은 테이프를 갈고, 개그맨은 물을 마시거나 대사 연습을 한다. 스타일리스트는 개그맨의 화장과 의상을 봐주고, 스태프는 소품을 챙기거나 대본을 교정한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녹화 들어갑니다"라는 이 PD의 큐 사인이 들리면 스튜디오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오후 4시. 녹화가 시작된 지 4시간 가까이 흘렀다. 중간에 1시간 30분가량의 점심시간이 있었지만 녹화가 길어질수록 개그맨들은 점점 지쳐갔다. 녹화가 막바지에 이르자 그토록 강조했던 리액션도 줄어든다.

지치는 건 개그맨뿐만이 아니었다. 스태프들도 지쳐갔다. 특히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스태프들은 다리가 저려오는지 서 있는 상태로 계속 발을 빙빙 돌리거나 들었다 놨다 하면서 풀어줬다. 스튜디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스태프도 보였다.

스튜디오에서 개그맨들을 제외하고 앉아 있는 사람은 카메라 감독 몇몇 뿐, 조준희 PD를 비롯한 스태프 대부분은 서서 녹화를 진행한다. 이선희 PD는 서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녹화 내내 스튜디오 곳곳을 바삐 돌아다닌다. 그러니 취재를 한답시고 온 기자도 감히(?) 앉을 생각을 못했다. 두 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 다리가 저리기 시작하더니, 녹화가 끝날 때 즈음엔 허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콩트 코미디'의 부활... 신선한 웃음 줄 수 있을까?

오후 4시 55분. 출연진들의 클로징 멘트를 끝으로 녹화가 끝났다. 여기저기서 "수고하셨습니다" 인사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스튜디오 밖으로 빠져 나갔다. 수십 명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스튜디오는 어느새 썰렁해졌다. 막이 내린 무대의 뒤가 이와 같을까. 관중의 박수소리가 없다는 게 다르다면 다를 뿐이었다.

1시간 분량의 <코미디쇼 희희낙락>에서 스튜디오 분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커야 25분 내외다. 그 25분을 만들기 위해 7배가 넘는 3시간여를 녹화했다. 나머지 분량은 야외 촬영 등으로 채운다. 그러나 녹화가 끝이 아니다. 녹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자막·음악·CG작업 등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하나의 프로그램이 나온다.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코미디 희희낙락>은 과연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줄 수 있을까? 첫 방송 하는 24일(금) 밤 11시 5분, 그 궁금증은 해소 될 수 있을 것이다.

▲ '콩트 코미디'의 부활을 선언하며 새롭게 선보이는 <코미디 희희낙락>의 출연자. 왼쪽부터 남희석, 신봉선, 유세윤. ⓒ KBS


- <코미디쇼 희희낙락> 이전에 똑같은 비공개 코미디인 <웃음충전소>를 연출한 경력이 있는데, 두 프로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가장 큰 차이점은 버라이어티를 섞었다는 겁니다. MC와 패널 간의 대화, 그리고 시청자 평가단의 존재, 이 두 요소가 <웃음충전소>와는 다른 점이죠. 기존의 비공개 코미디는 일방적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했는데, 어떻게 보면 다소 '불친절'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포맷에 변화를 줬습니다."

- <개그콘서트>·<웃찾사>·<개그야> 등 명실상부 공개 코미디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요즘인데, 이런 시기에 비공개 코미디를 부활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개 코미디가 큰 인기를 끌면서, '콩트'로 대변되는 비공개 코미디는 시대에 뒤처졌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비공개 코미디는 구시대의 유물이고 재미가 없다'는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고 싶었고요. 가장 큰 이유는 코미디의 저변 확대입니다. 스탠딩 개그도 코미디고 콩트도 코미디인데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 '정통 코미디의 부활'을 기치로 내걸었는데, 사실 메인MC인 남희석 정도만이 유일한 정통 콩트 코미디의 경험자이고, 다른 패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패널 구성을 보면 모두 <개그콘서트> 멤버들인데, 비공개 코미디에 익숙지 않은 이들과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어려움은 없고요. 그 점에 대해서는 시청자분들께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 프로를 같이 할 친구들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본 점이 바로 '연기력'이거든요. 아무래도 콩트는 연기력이 좋아야 하는 만큼, 연기가 되는 친구들로만 섭외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은 없습니다."

- 현재 패널들의 면면을 보면 <개그콘서트>의 주축 멤버들이고, 젊은 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다시 활동을 시작한 최양락, 김정렬 같이 과거 80~90년대 콩트 전성시대를 열었던 개그맨들을 캐스팅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현재로선 어떤 계획도 없습니다. 물론 그 분들이 저희 프로에 참여해주신다면 영광이죠.(웃음)"

- <코미디쇼 희희낙락은> 장수 프로이면서 동시에 잘 나갔던 <사랑과 전쟁>의 후속작입니다. <사랑과 전쟁>은 오랫동안 MBC와 SBS, 양사의 맹추격에도 쉽사리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수성했는데요. 이에 대한 부담은 없습니까?
"시청률에 대한 부담은 크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담이라면, 관객이 없어서 개그에 대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부담입니다. 녹화를 하면서도 '이게 시청자한테도 먹힐까?'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고, 이런 게 부담이 되죠."

- 경쟁 프로가 SBS <절친노트>, MBC <오늘 밤만 재워줘>입니다. <절친노트>의 경우 이미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고, 지난 3월 6일 파일럿 방송 때에는 <절친노트>에 밀려 시청률 2위에 그쳤는데요. 이에 대한 경쟁심은 없습니까?
"<절친노트>는 저희 프로와는 포맷이 다릅니다. 같은 예능 프로라고는 해도 차이가 많죠. 그래서 경쟁심 같은 건 크게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할 수 있다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게 되는 생각 아닐까요?(웃음)"

- 비슷한 시기에 OBS(경인방송)에서 이봉원을 필두로 하는 비공개 코미디 프로인 <코미디多 웃자Go>가 신설됐습니다. 포맷이 같은 만큼 시간대는 달라도 경쟁상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개의 프로가 동시에 전파를 탄다는 게 '정통 코미디의 부활'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뜻 깊을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통 코미디의 부활'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 역시 포맷이 다릅니다. 저희 프로는 콩트에 버라이어티적인 요소를 섞었고, <코미디多 웃자Go>는 과거의 그 방식 그대로인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물론 비슷한 성격의 프로인만큼 신경은 쓰이지만, 부담스럽진 않습니다. 둘 다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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