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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68) 마스터

[우리 말에 마음쓰기 613] ‘괴도권을 마스터’, ‘점자도 마스터하고’ 다듬기

등록|2009.04.19 13:40 수정|2009.04.19 13:40

ㄱ. 괴도권을 마스터

.. 자네의 복수심이라면 극한의 상황도 견뎌야만 얻을 수 있다는 소림 기타 18 괴도권을 마스터할 수 있을 거야 ..  《이경석-속주패왕전》(새만화책,2006) 38쪽

 "자네의 복수심(復讐心)이라면"은 "자네가 품은 복수심이라면"이나 "앙갚음에 불타는 자네 마음이라면"으로 다듬어 줍니다. "있을 거야"는 "있어"나 "있겠어"로 손질하고, "극한(極限)의 상황도 견뎌야만"은 "마지막까지 견뎌야만"이나 "엄청난 괴로움도 견뎌야만"쯤으로 손질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 마스터(master) : 어떤 기술이나 내용을 배워서 충분히 익히는 일.
 │    '숙달', '통달'로 순화
 │   - 동생은 일 년 만에 일본어를 마스터했다 /
 │     그 기술을 마스터하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린다
 │
 ├ 괴도권을 마스터할 수 있을 거야
 │→ 괴도권을 익힐 수 있어
 │→ 괴도권을 뗄 수 있겠어
 │→ 괴도권을 모두 배울 수 있겠구나
 │→ 괴도권을 훌륭히 배울 수 있겠구나
 │→ 괴도권을 네 것으로 삼을 수 있을 테군
 └ …

 '숙달'이나 '통달'로 고쳐쓰라고 하는 '마스터'이지만, '마스터'를 걸러내거나 털어내는 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냥저냥 씁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을 코앞에 두고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가까운 동무가 이런 말을 쓰든 집식구가 이런 말을 쓰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 숙달(熟達) : 익숙하게 통달함
 └ 통달(通達) : 사물의 이치나 지식, 기술 따위를 훤히 알거나 아주 능란하게 함

 '숙달'과 '통달'이라는 낱말은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국어사전에 나오기로는 '마스터'를 '숙달'이나 '통달'로 고쳐쓰라고 나옵니다만, '숙달' 뜻풀이는 '= 통달'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구태여 '숙달'과 '통달'을 나눌 까닭은 없을 텐데요. 한자말 '통달'은 "아주 능란(能爛)하게 함"을 가리킨다지만, '능란'을 다시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익숙하고 솜씨가 있다"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리하여 '숙달' 뜻풀이는 "익숙하게 익숙함"이라는 소리이고, '통달' 뜻풀이는 "익숙함"이라는 소리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토박이말 '익숙하다'라고 하면 넉넉했을 낱말들이요, 괜히 한자라고 하는 껍데기를 뒤집어씌우고 있다는 셈입니다.

 ┌ 일 년 만에 일본어를 마스터했다
 │→ 한 해 만에 일본말을 떼었다
 │→ 한 해 만에 일본말을 익숙하게 했다
 ├ 그 기술을 마스터하는 데는
 │→ 그 솜씨를 익히는 데는
 │→ 그 솜씨에 익숙해지는 데는
 └ …

 우리는 배우면서 삽니다. 모르기에 배우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새로 배웁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삶에 익숙해집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우리 마음에 새기고 오늘은 오늘대로 우리 몸에 새깁니다.

 스스로 바라는 대로 배우게 되며, 스스로 나아가려는 길에 따라 익히게 됩니다. 좀더 올바르고 훌륭하게 배우기도 하지만, 얕은 셈속을 채우거나 돈다발 밥그릇을 붙잡으려고 익히기도 합니다.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널리 나누고 싶어 배우기도 하는데, 혼자만 잘 살겠다는 어리석은 매무새에 따라 얌체가 되는 길을 익히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스스로 가고픈 길을 갈 따름이고,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밟을 노릇입니다. 생각 한 줌 알뜰히 다스리고픈 사람이 있어 알뜰하게 길을 갈고닦는 사람이 있을 테고, 생각이고 삶이고 말이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배고픈 길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ㄴ. 점자도 마스터하고

.. 다케시타는 점자도 마스터하고 기타까지 즐길 만큼 시각장애인 학교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  《고바야시 데루유키/여영학 옮김-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강,2008) 53쪽

 "시각장애인 학교의 생활(生活)에"는 "시각장애인 학교에"나 "시각장애인 학교에 다니는 데에"나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지내는 삶에"로 다듬어 줍니다.

 ┌ 점자도 마스터하고
 │
 │→ 점자도 다 익히고
 │→ 점자도 떼고
 │→ 점자도 잘 읽고
 │→ 점자도 잘하고
 └ …

 영어 '마스터'가 언제부터 우리 삶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다른 숱한 영어와 비슷한 때에 스며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일본사람을 거쳐서 들어오게 되었는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곧바로 받아들였는지 궁금합니다.

 요사이에는 영어 '마스터'를 모르는 사람이나 안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책을 읽어도 밥을 해도 집을 지어도 학문을 해도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해도 온통 '마스터'입니다. '다 하'거나 '모두 떼'거나 '제대로 익히'거나 '빈틈없이 배운'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흐름은 앞으로도 거의 바뀌지 않으리라 보입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더욱 튼튼하게 뿌리내리거나 자리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라에서 영어마을을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요, 사람들이 영어에 미쳤기 때문만은 아니며, 세상힘을 미국이 거머쥐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런저런 까닭이야 있기는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우리가 무엇을 하면서 어떤 이웃하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길이 즐거움인 줄을 잊거나 잃은 탓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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