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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자골목 '재정비',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맛이 있는 풍경 73] 옛 추억 흑백필름으로 스치는 종로3가 '먹자골목'

등록|2009.04.20 16:20 수정|2009.04.20 16:20

탑골공원 먹자골목그 '낙원'이 종로3가 탑골공원 옆에 서 있는 낙원상가 지하시장과 그 주변에 스티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먹자골목이다 ⓒ 이종찬


"너희들도 늙어봐. 이곳 탑골공원 먹자골목처럼 밥값이 싸고 편안한 데다 노인 대접 제대로 해 주는 곳이 있나. 이곳에 오면 밥내기 장기를 둘 친구들도 많이 있고, 술내기 바둑이나 화투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칠 수가 있어. 게다가 돈 만 원만 있으면 술밥 사 먹고, 이발(컷트 3500원)까지 해도 남아."

불황이 아무리 꼬리를 세게 쳐도 눈 한번 깜짝 하지 않는 '낙원'. 딱히 오갈 곳 없는 70~80대 노인들과 아무리 일을 해도 두툼한 지갑 한 번 가져보지 못한 가난한 서민이 돈 걱정 없이 한 끼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낙원'. 그 '낙원'이 종로3가 탑골공원 옆에 서 있는 낙원상가 지하시장과 그 주변에 스티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먹자골목이다.

종로3가 먹자골목은 크게 네 곳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먹자골목은 탑골공원 정문에서 왼쪽 담을 끼고 낙원상가를 따라걸어 올라가면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사이에 끼어 있는 허름한 '돼지골목'(2009년 3월12일자 오마이뉴스 참조)이다. 이 돼지골목에 들어서면 말 그대로 돼지머리, 수육, 순대 등 돼지고기 부속음식은 거의 다 있다. 순대국밥 2500~3500원.
   
두 번째 먹자골목은 낙원상가 지하시장이다. 이 지하시장에 내려가면 파전, 부추전, 감자전, 고구마전 등 여러 가지 부침개를 파는 집과 순대국, 콩나물 해장국, 백반, 칼국수 등 밥을 파는 집 등이 난전에 줄지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이곳에 들어가 막걸리 한 병(2천원)과 부침개(한 접시 5천원)를 먹고 있으면 마치 시골 장터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세 번째 먹자골목은 낙원상가 오른 편, 운현궁으로 가는 비좁은 골목에 안방마님처럼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떡집과 아귀찜, 꼼장어집이다. 특히 이곳 떡집은 20여년 앞만 하더라도 모두 30여개나 있을 정도로 빼곡이 들어차 '떡전골목'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세대 입맛에 밀려 10여개 떡집만이 궁상을 떨고 있다.

네 번째 먹자골목은 탑골공원 정문에서 오른 쪽 담을 끼고 낙원상가 쪽으로 비좁게 나 있는 길 오른 편과 종로3가 5호선 4번 출구 쪽으로 쭈욱 늘어서 있는 황태국, 선지국, 콩나물 해장국, 냉면, 가정식 백반, 칼국수 등을 파는 집들이다. 이곳 밥집들은 2500원짜리 가정식 백반에서부터 아무리 비싸봐야 3천원을 크게 웃돌지 않는다.

종로3가 먹자골목종로3가 먹자골목은 노인들 천국이다 ⓒ 이종찬


  

종로3가 먹자골목이발비도 싸다 컷트 3,500원, 염색 5천원 ⓒ 이종찬


지하철 5호선 타고 종로3가 4번 출구로 나가자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에 내려 4번 출구 쪽으로 나와 낙원오피스텔 가는 길목 쪽으로 20m쯤 걸어가면 길 건너 낙원장 모텔과 세느장 모텔이 있다. 이 낙원장 모텔 골목으로 들어서면 수련집과 찬미식당, 남양식당, 부산집 등 2500원짜리 가정식 백반집들이 오랜 동무처럼 다닥다닥 어깨를 끼고 있다.

이 가정식 백반집들 중 가장 오래 된 집이 부산집이다. 이 집 가정식 백반을 휘어잡는 것은 조기조림과 병어조림이다. 밑반찬으로는 갓김치, 배추김치, 콩나물, 미역무침, 김 등이 푸짐하게 나온다. 가정식 백반 한 상을 받으면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다. 여기에 밥과 밑반찬은 얼마든지 공짜로 더 먹을 수 있다.

이곳에 갔다면 점심 때마다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칼국수 전문점 찬양집도 꼭 들러 볼 만한 집이다. 4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집 해물칼국수(3천원) 특징은 칼국수 양이 엄청나게 많고, 바지락으로 우려낸 시원한 국물맛이 끝내준다는 점이다. 재수 좋으면 낙지 한 마리가 통째 들어 있을 때도 있다.

이 골목에서 나와 탑골공원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탑골공원 앞에 냉면 2천원, 김치국밥 2천원, 갈비탕 3천원 받는 비좁은 선비옥이 있다. 이 집은 식탁이 모두 8개로 점심때가 지나도 손님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손님들 대부분은 60대 이상 할아버지이지만 간혹 30~40대 가난한 샐러리맨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 집 주인 배종수(48)씨는 "자주 오는 단골 손님들은 앉을 자리가 없으면 탑골공원을 한 바퀴 휘이 돌고 올 때도 많다"라며 "저희 집을 찾는 손님들은 다른 손님들이 많이 몰려들 때면 알아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아무리 재료값이 많이 올라도 음식 값을 올릴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손님들 아름다운 마음씨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종로3가 먹자골목불황이 아무리 꼬리를 세게 쳐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낙원'이 종로3가 먹자골목이다 ⓒ 이종찬


종로3가 먹자골목돈 만 원만 있으면 술밥 사 먹고, 이발(컷트 3,500원)까지 해도 남아 ⓒ 이종찬


오갈 데 없는 노인들 천국 탑골공원 먹자골목

탑골공원 먹자골목에 있는 황태식당에서 파는 황태해장국과 우거지탕은 2천원이다. 이 집은 낮은 가격을 '다다익선'으로 맞추기 위해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손님들을 맞이한다. 이 집 주인 김순임(63)씨는 "이 주변 식당들이 모두 밥값을 1천~2천원 대에 맞추고 있기 때문에 값을 500원 정도 더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다"며 넉넉한 미소를 짓는다.

이 골목에 있는 '고향집'도 선지해장국과 순두부가 2천원이다. 이 집 또한 낮은 가격을 맞추기 위해 겨울과 여름에 스팀과 에어컨을 틀지 않는 등 안간힘을 다한다. 주인 박제환(40)씨는 "낮은 음식값을 맞추기 위해 여러 군데 시장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싸고 싱싱한 재료를 구입한다"며 "음식 맛은 만드는 사람의 정성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평양냉면(4천원)으로 이름 높은 유진식당은 설렁탕과 돼지머리 국밥을 2500원에 판다. 이 집 주인 문용춘(83) 할아버지는 "한 곳에서 현금으로만 오래 거래하다 보니 거래처에서 여러 가지 재료를 옛날 가격 그대로 준다"며 "경기침체로 다들 어려운 때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탑골공원 주변에 있는 부잣집 왕뼈 감자탕집과 선비옥은 냉면 한 그릇에 2천원이다. 그 곁에 있는 초원식당도 냉면 한 그릇에 2천원인데, 이 가격을 맞추기 위해 달걀을 넣지 않는다. 초원식당 콩국수 한 그릇은 1천원. 이 집 주인 이기복씨는 "1천~2천원으로 한 끼 떼우는 손님들을 바라보면 재료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가격은 올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낙원상가를 끼고 있는 소문난추어탕(2008년 7월8일자 <오마이뉴스> 참조)은 가격이 맞지 않아 추어탕 대신 우거지얼큰탕(1500원)을 낸다. 소문난추어탕집을 지나 낙원상가를 끼고 탑골공원 쪽으로 들어가면 비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허름한 식당들이 이른바 돼지머리 부속고기를 파는 '돼지골목'이다.

종로3가 먹자골목지하철 5호선 타고 종로3가 4번 출구로 나가자 ⓒ 이종찬


탑골공원 먹자골목손님들 대부분은 60대 이상 할아버지이지만 간혹 3~40대 가난한 셀러리맨들도 자주 눈에 띈다 ⓒ 이종찬


"서민들과 우리 같은 노인들은 어디로 가라고..."

"요즈음 '재정비' '철거'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피맛골 철거에 들어간 서울시에서 곧 이곳 낙원상가를 철거하고, 탑골공원 주변 먹자골목 등도 재정비한다는 소문이 마구 떠돌아다니고 있어. 정말 큰일이야. 만약 이곳 탑골공원 먹자골목까지 철거되고 나면 서민들과 우리 같은 노인들은 어디로 가란 말이야."

탑골공원 왼 편 담을 따라 쭈욱 늘어선 먹자골목에서 막걸리내기 장기를 두고 있는 김아무개(73) 할아버지의 말이다. 김 할아버지는 "매일 이곳에 나와 2천~3천원짜리 점심을 사먹고 노인들과 어울리며 막걸리나 소주 한 잔 나눠먹는 게 낙"이라며 "추억과 역사가 서린 옛것을 보존하려 해야지 무조건 부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오후 4시께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도심재정비 1담당관실에 전화를 걸어 '낙원상가 및 주변일대 정비에 관한 사항'에 대해 물었다. 도심재정비 1담당관실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낙원상가 및 주변일대 정비 계획은 없다"며 "타당성 조사 용역을 했는데 주변에 탑골공원 등 문화유산이 너무 많아 규모를 늘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처음에는 낙원상가와 그 주변 일대 정비만 할 계획이었는데, 그곳에 탑골공원이 있어 탑골공원까지 정비를 한다고 보면 3천억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이는 국가가 나서지 않는 한 뾰쪽한 수가 없다. 시에서는 시기가 너무 이른 것으로 보고 보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이러한 답변에도 불구하고 지금 탑골공원을 중심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낙원상가와 그 일대가 곧 재정비된다고 어림짐작하고 있다. 이러한 소문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는 다름 아닌 서울시가 내놓은 도심재정비 계획에 '낙원상가 및 그 주변 일대 정비에 관한 사항'이 버젓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과 서민들이 주머니 걱정 없이 밥과 술을 느긋하게 먹을 수 있는 곳, 종로3가 '먹자골목'. 지금도 이 먹자골목에는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노인들과 가난한 서민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60년대 오일장에서 보았던 정이 철철 흐르던 풍경, 그 가난한 사람들이 흑백필름처럼 오가고 있다. 그래. 이 살가운 풍경을 오래 간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종로3가 먹자골목고향집에서 먹은 콩나물 해장국 ⓒ 이종찬


종로3가 먹자골목소문난 추어탕집은 가격이 맞지 않아 추어탕 대신 우거지얼큰탕(1천5백원)을 낸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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