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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악의적 무시'와 김정일의 '벼랑끝 전술'이 만날 때

[서평] 정욱식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

등록|2009.04.20 16:38 수정|2009.04.20 16:48

▲ ⓒ 레디앙


남북관계가 엉망이다. 더 정확하게는 '매우 심각'하다.

북의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서울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불과 50km 안팎에 있다는 것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위협하는 상황까지 왔다. 1차 북핵위기 때인 1994년 3월 북측 인사가 남북회담 중에 "여기서 서울은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 것"이라고 했던 것의 재판이다. 이런 와중에도 이명박 정부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가입발표를 3차례나 연기한 것에서 보이는 것처럼, 대북정책에서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될까, 아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최근 펴낸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레디앙)는 이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담고 있다. 10년간 한 눈 팔지 않고 '평화운동'을 하면서 쌓아온 고민의 결과물이다.

왜 '2012년 체제'인가

그는 '2012년 체제'론이라는 틀로 한반도와 동북아정세를 분석한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출생 100돌이 되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겠다"면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남한에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권력재편기이며, 전시작전통제권도 이해 4월 한국으로 넘어온다.

미국·러시아·대만도 대선을 치르고 중국에서는 후진타오를 잇는 시진핑(현 국가부주석) 체제 등장이 예정돼 있다. 미국과 러시아 간 '제2 냉전'도 분수령을 맞는 해다. 미국이 체코·폴란드와 협정을 맺어 MD 시스템을 배치하기로 한 것도 2012년이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북의 '2012년 강성대국론'을 강조한다. 이를 빼놓고는 북의 행동에 대한 의도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고 합리적인 해법을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2012년 체제'의 주역이 되라고 권고한다.

"발상을 전환하면, 이명박 정부는 '2012년 체제'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20년을 끌어온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정전체제가 환갑이 되기 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이는 6·15선언과 10·4선언을 훨씬 능가하는 업적이 될 수 있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주역이 될 수도 있다." (382쪽)

그러면서 2012년으로 향하는 다양한 각각의 흐름을 '전 지구적 상호 연관성'과 '거대한 그물망'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낸다.

"'북한 위협론'을 최대 구실로 삼아 추진된 부시의 MD는 중동의 이런 위협을 근거로 유럽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냉전의 망령을 불러온 핵심적인 요인이다. 이는 반대로 한반도 비핵 평화 프로세스가 급진전되어 MD 추진 근거가 약해지면, 유럽의 신냉전 분위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가 유럽의 냉전 부활을 차단하는 '환상의 나비' 효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9쪽)

남북관계의 현재상황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악의적 무시와 김정일 정권의 '벼랑끝 전술'이 충돌한 것으로 정리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단순한 '무시'가 아니라 '악의적 무시'(malign neglect)라고 규정하면서 이것의 구체적인 목표는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일 것이라는 의심을 제기한다.

"북이 벼랑끝 전술로 목적을 달성해 왔다는 것은 오해"

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벼랑끝 전술'을 보는 일반적인 시각에는 '세 가지 중대한 오해가 있다'는, 그의 분석은 특히 눈길을 끈다. ▲벼랑끝 전술은 미국과 한국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것이고 ▲북이 별다른 원인 없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 게 아니라 실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주로 나온 것이며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해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 번째와 관련해 그는 "결과적으로 이런 경향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인과관계로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한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국면에서 북의 벼랑끝 전술에 놀란 미국이 카터를 북한에 보낸 게 아니라, 오히려 클린턴 대통령은 카터의 방북을 반대해 '협상대표'가 아닌 '개인자격'을 부여했고, 1998년의 '페리보고서'도 북의 벼랑끝 전술 때문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가 적극 개입해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부시 2기에서의 대북정책 변화도 북한의 핵실험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전쟁의 실패로 네오콘이 몰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이 벼랑 끝 전술로 재미를 봤다'는 식의 보도와 분석은 오히려 북한의 벼랑끝 전술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그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대안을 제시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에 대해서도, 두 정책을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에도 두 정책 사이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경제와 평화의 교환전략'이다. '비핵·개방·3000은 물론이고 햇볕정책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을 도와 군사적인 위협을 줄이고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킨다'는 전략적 목표를 바탕에 깔고 있다. 다른 하나는 '양면전략'이다. 비군사분야에서는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을 추구하면서, 군사분야에서는 강력한 국방력 건설과 한미동맹을 통해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위협을 억제·분쇄하겠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런 접근법은 이미 전략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405쪽)

"햇볕정책도 진보적 개선해야"

남북의 화해국면에서도 남과 북이 왜 계속 군비확장에 매달려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그러면서 이렇게 '햇볕정책의 진보적 개선'방향을 제시한다.

"햇볕정책이 반세기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남북관계의 문을 열어젖힌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좀 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경제와 평화의 교환전략'을 넘어 한반도 경제공동체와 평화군축이 선순환 할 수 있는 포괄적 접근이 요구된다. 양면전략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대북정책과 한미동맹, 국방정책 사이의 상호모순성을 극복하고 상호 보완적인 형태로 통합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407쪽)

남북관계와 국제정치 등 딱딱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쉽게 읽힌다. 가상대화 형식 등을 통해 지은이의 '상상력'을 접목시킨 효과가 크다. 지은이는 이 책의 끝도 남·북·미·중·러·일 6개국 정상들이 2012년 11월 21일 만나 6자 정상회담을 가진 뒤 '동북아 평화를 위한 6자 정상회담 성명'을 채택한다는 희망적인 가상으로 마무리지었다.

"6자가 한반도 비핵화를 동북아 비핵지대로 확대·발전시키고, 핵보유국은 핵무기 감축과 궁극적인 폐기를 위한 협상에 적극 나선다", "6자는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적인 통일이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이를 위한 남북한의 노력에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을 약속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꿈같은 상황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주체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여기에는 정욱식 같은 이의 더 큰 활동이 필요한 것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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