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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200미터 '바이킹'에 빵 터진 웃음소리 "으아-하하하"

[사심취재 1편] 초경량비행기 체험비행에 나서다

등록|2009.04.22 09:32 수정|2009.04.22 09:32
미치도록 '자유'가 그리운 날이면

ⓒ 김진석


'벌받는구나' 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것은 '종이비행기' 아닌가.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떠올랐다. 허접한 내구력을 자랑하는, 그래서 '종이 비행기'라 불리는 테란 종족의 '레이스' 말이다. 아무리 초경량비행기라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또 바람은 왜 그렇게도 불어대는지… .

'아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지난 주 금요일(17일)이었다.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아니, '시화호'라 하는 것이 훨씬 빠르겠다. 시화호 어섬에 있는 초경량 비행장을 찾아갔다. 우리나라 초경량 비행의 메카라 불리는 곳이다.

그 곳을 찾은 이유는 이랬다. WBC도 끝나고, '김연아'도 당분간 볼 수 없고, '(장기하 버전이다)이건 뭐', 살 맛 나는 뉴스가 전무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아니, 애꿎은 PD들만 잡혀갔다는 소식에도 멀쩡한 스스로를 돌아보니, 가슴이 굳는가 했다. 잠깐이라도 '뻥' 뚫어버리고 싶었다.

여객기보다 안전하다는데도... 바람아 제발 불어다오

이렇듯 '사심' 가득한 취재였으니, 벌받는다는 생각이 든 것도 당연했다. 허나 돌이킬 수 없는 노릇, 초경량항공기 클럽 '스카이넷포츠' 강경환(40) 수석교관을 만나야 했다. 바람의 힘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너무 세서 비행기 못 떴어요. 그래서 인터뷰만…(긁적긁적)'하면 어떻게 안 되려나?

"하하, 처음 오는 분들은 다 그래요. 이거 뭐야, 비행기야? 탑승하기 전에는 거의 다 무서워해요. 안 뜰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작은 비행기가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선입관에 불과해요. 오히려 여객기보다도 안전해요. 속도가 훨씬 느리니까요."

그래도 딱딱한 얼굴이 풀리지 않았나 보다. 강 교관은 재차 안전하다고, "엔진이 꺼져도 글라이더처럼 바람을 타고 자연스럽게 활강할 수 있기 때문에, 날개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50미터 정도의 공간만 있어도 안전한 착륙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영 믿기지 않는 말이다.

바람도 '배신'을 탔다. 눈에 띄게 힘이 꺾이고 '말았다'. 강 교관이 이제 가잔다. 그 때 되물은 말, 나중에 생각하니 참 어처구니없었다. "지금 타요?" 그럼 지금 타지, 내일 타나. 당연하다는 듯 "네"란 답만 남기고 저만치 앞서 가는 강 교관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 교관만 믿을 수밖에.

▲ 강경환 교관의 '애기(愛機)' X-air ⓒ 김진석


엄지뉴스 쐈다. 그리고 '잠깐' 후회했다

우와아아앙! 마침내 시동이 걸렸다. 강 교관과 조종석에 나란히 앉았다. 요란하게 돌아가는 프로펠러만큼이나 가슴도 '방망이질'로 들썩였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활주로로 서서히 이동하는 X-air! 그 때 무전기 헤드셋을 통해 강 교관이 "잘 들리냐"고 물었다. 참 반가웠다. 그래, 지금 난 혼자가 아니지.

활주거리 약 150미터.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를 시작했다. 굉음이 최고조에 달한다. 이어 들리는 "올라갈게요"란 목소리. 나는 침묵이다. "보통 말이 없어진다"는 강 교관의 앞서 설명이 실감나는 순간, 마침내 비행기가 말 그대로 '붕' 떴다. 하늘로, 하늘로, 거침없이 고도를 높인다.

"이제 100미터 상공입니다"란 말과 함께 자동차들이 성냥갑 크기가 됐다. 200미터 상공에서는 송도 신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250미터 상공에서는 '저기 어디죠'란 질문을 던질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생각보다 흔들림이 없다. 여객기를 탔을 때와는 영 다른 기분이다. 하늘이 '코앞'이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엄지뉴스'를 쏴야겠다, 휴대폰을 꺼냈다. 왜 그랬을까. 잠깐 후회하고 말았다. "그렇게 찍으면 비행기 안에서 찍는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요. 날개 걸쳐서 찍어봐요"란 강 교관의 말에 '네?"라고 되묻기도 전이었다.

▲ 저때였을까? 으아하하하 ⓒ 김진석


고도 200미터에서 '바이킹'... 하지 마요, 괜찮아요

순간 비행기가 45도 정도 기울었다. 내 몸과 대지도 같은 각을 이뤘다. 그 즉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 마요, 괜찮아요. "비행기 조종의 특성을 알기 위한 필수 체험"이란 대답에 할 말이 없다. 다시 돌아온 수평자세에 '한숨'을 채 갈무리하기도 전이었다.

이번에는 비행기 앞머리가 들린다. 아니, 들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아래 방향을 향한다. 내 몸까지 아래로 '뚝' 떨어진다. 가슴은 몇 미터 위에 두고 왔나 보다. 그야말로 배가 철렁했다. 바이킹이란 놀이기구와는 생판 다른 경험이다. 고도 200미터 '바이킹'이다. 저절로 이런 웃음이 나왔다.

으아하하하하! 묘한 웃음소리다. 괜찮다는 '허세'와 안도감 그리고 쾌감이 동시에 박혀 있다. 방금 비행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고도를 높였다가 자동차처럼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란 설명과 함께 다시 돌아온 '바이킹'. 똑같은 웃음이 나왔다. 으아하하하!

머리 속이 백지상태가 됐다. 당혹감 때문도, '바보'가 돼서도 아니었다. 청명한 백지 상태라고 할까? 세상 만사가 머리 속에서 싹 지워졌다. 시화호의 '아픔'까지 잊을 정도였다. '포맷'을 하고 나니,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진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저기가 배용준씨가 태왕사신기를 찍었던 곳이라고 일본 아주머니에게 이야기해줬더니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말에도 괜히 웃음이 '마구마구' 터져 나왔다.

▲ 강경환 스카이넷포츠 수석교관과 함께 ⓒ 김진석


미치도록 '자유'가 그리운 날이 또 온다면

불과 15분만에 나타난 변화다. 땅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래서 아쉬웠다. '착륙이 제일 어렵죠?'란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조마조마해지는 '새가슴'. 그런데 비행기가 땅에 닿는 순간이 여객기 착륙보다 훨씬 부드럽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거의 충격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비행기에서 내려섰다. 발을 '꽝꽝' 굴러봤다. 땅이다. 온갖 '잡다한' 뉴스를 털어 버리고 나니 기분이 영 색달랐다. 괜히 마음이 바빠졌다. 이것저것 할 일이 유쾌하게 다가왔다. 하늘이 잠깐 선사한 선물치고는 꽤 컸다.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 곳에는 강 교관의 말 그대로 "차들이 쫙 밀려 있는 거리 상공을 지날 때의 쾌감"이 있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황혼이 너무 아름다워, 그 안으로 빠져들고 싶은 날도 있다"고 했다. 여객기의 '무거움'으로는 느낄 수 없는 쾌감, 가벼움이 주는 기쁨, 혹시 그게 자유이던가. 다시 와야겠다. 미치도록 '자유'가 그리운 날에.

▲ 강경환 수석교관 ⓒ 김진석

지금까지 강 교관이 배출한 제자 중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도 2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초경량항공기 조종은 "결코 위험한 레포츠가 아니"라고, "레저용 자가용 운전"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일정 기간 배우면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와 같다"는 것이다. "요즘 대천에 X-air 타고 가서 점심 먹고 돌아오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일화를 소개한 것도 그래서다.

다만 목에 걸리는 말이 '비용'이었다. 체험비행은 10분∼15분에 4만원, 관숙비행(비행기 조종 체험 비행)의 경우는 20분∼25분에 6만원이다. 직접 조종을 배우고 싶은 경우는 1시간의 비행실기교육에 13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아무래도 서민에게는 부담스런 레포츠 같다는 말에 그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이렇게 대답했다.

"1분도 안 되는 놀이기구 몇천 원씩 하는데요? 그리고 술 먹을 돈 몇 달이면 조종 배울 수 있어요. 가족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꽃남'에 보면 헬기 타고 사랑 고백하는 장면 나오잖아요. 몇 백 만 원짜리죠. 여기서는 10만원으로 가능해요. 각자 1대씩 타고 체험비행 하다, 남자친구가 무전을 하는 거죠. 이쪽 한 번 봐, 그 때 플래카드가 펼쳐집니다. 결혼해 달라고. 평생 잊을 수 없는 프러포즈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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