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명박 대통령, 악어의 눈물 흘렸다"

[현장] '인권' 외친 장애인 연행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등록|2009.04.21 10:13 수정|2009.04.21 10:23
#장면1. 2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 '장애인의 날' 기념식.

▲ 2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식. 스크린에 이명박 대통령의 영상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 권박효원


600여명의 장애인 관련단체 회원들과 정부 인사가 모인 이날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축사를 보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장애인 전용택시를 만들고 지하철 역사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 많은 정책을 폈다"며 "일자리나누기와 추경예산 편성으로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본격 확대시행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직접 기념식에 참석해 격려사를 한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역시 "지난해 일어난 획기적인 일"이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강조했다. 이어 "장애아동 통합교육과 재활서비스를 확대하고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를 실시하겠다, 장애인차별실태와 편의증진시설 실태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장면2. 같은날 오후 3시 40분, 서울 동대문 앞. '장애차별철폐의 날' 집회

▲ 제29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대문 앞 사거리에서 장애인들이 휠체어에 쇠사슬과 사다리를 묶고 도로 점거 기습시위를 벌이자 경찰들이 강제로 인도로 끌어내고 있다. ⓒ 유성호


휠체어를 탄 장애인 5명이 도로에 뛰어들어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차도 한가운데 사다리를 놓은 뒤 여기에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었다. 그리고는 "장애인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 10분 만에 경찰이 휠체어 채로 이들을 들어서 인도로 옮겼다.

경찰은 "일단 오늘은 돌려보내고 이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 장애인들에게 인적사항을 말하라고 요구했다. 장애인들은 이를 거부하면서 비에 젖은 채로 약 3시간을 길에서 버텼다. 끝까지 인적사항을 말하지 않은 장애인 2명은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시위를 벌인 박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자립생활위원회 부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앞에서 24일간 노숙농성을 벌였지만 정부는 우리 목소리를 안 듣는다, 시민들에게 상황을 전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 보셨습니까? 그건 악어의 눈물이었습니다!"

20일 오후 2시 30분,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장애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의 첫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됐다. 이날 무대 위에 올라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전날(19일) 이 대통령의 장애시설 방문에 대해 "먹이를 잡아먹고 불쌍해서 우는 악어와 같다"고 비난했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주택과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을 (사실상) 가둬놓고서는 이 대통령은 그 곳에 가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이날 집회에는 600여명의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참석했는다. 사회를 맡은 김도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어제는 MB가 울더니 오늘은 하늘이 운다, 지금 내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눈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애인 가둬놓고 위로 하다니... 악어의 눈물"

▲ 제29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에서 장애인들이 장애인생존권 9대 요구안을 제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장애인단체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이번 방문이 '정치적인 쇼'라고 보기때문만은 아니다. '탈시설'을 요구하는 장애인단체들의 주장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420공동투쟁단'은 장애인생존권 9대 요구안을 내걸고 있는데, 이 중 첫번째가 바로 '탈시설-주거권 전면 보장'이다. 가정형을 제외한 생활시설 확충계획을 즉각 폐기하고, 중증장애인에게 자립주택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마침 이날 오전 복지부가 주최한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발표된 장애인인권헌장에서도 "장애인은 가족과 함께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이 눈에 띄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9일 홀트 요양원 방문은 이같은 장애인들의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날 기습시위를 벌인 박현 부위원장은 "장애시설 중에서는 장애인으로 장사하는 곳이 많다, 시설에서 꾸준히 장애인 인권 유린과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장로인데, 많은 장애시설들이 종교와 결합되어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박 부위원장은 "시설을 강화하는 것이 최근 장애인정책의 기조다, 이번 정권이 만든 정책은 아니지만 이명박정부 들어서 더 확대시행되고 있다"면서 "이번 방문은 한 마디로 MB의 '생쇼'"라고 일축했다.

이날 저녁 7시30분 보건복지부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도 주요 이슈는 이 대통령의 장애시설 방문행사였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박현수(뇌성마비)씨는 "이 대통령의 눈물은 가식적이다, 정부 지원을 늘려 장애인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혜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이사는 "자식을 시설에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는 없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함께 살게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장애인도 이명박도 한 목소리로 '장애차별금지법' 강조했지만...

▲ 제29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에서 장애인들이 장애인생존권 9대 요구안을 제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 제29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대문 앞 사거리에서 장애인들이 휠체어에 쇠사슬과 사다리를 묶고 장애인 차별철폐와 장애인생존권 9대 요구안을 요구하며 도로 점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장애인들의 요구와 정부 정책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앞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이 대통령과 전재희 장관은 입을 모아 장애차별금지법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정작 장애인들의 몸자보에는 '장애차별금지법 무력화 시도 중단하라'는 구호가 적혀있었다. 이 역시 9대 요구안 중 하나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만들어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장애인단체들의 주장이다. 법 제정 이후 차별시정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인력 확대가 추진됐지만, 정권이 바뀌자 행안부는 관련 인력을 동결했고 최근에는 아예 21%를 감축했다. 게다가 주무 부처인 복지부에서도 장애인권익증진과 폐지 계획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 대통령은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면서 "올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무고용률을 2%에서 3%로 늘렸고, 앞으로 공기업과 민간기업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단체들의 요구안에는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개악안을 철회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들은 "의무고용률을 공공부문 6%, 민간기업 3% 이상으로 법률상에 명시하고 장애인 고용에 대한 국고지원을 강제조항으로 개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이외에도 ▲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실질적 정책수립 ▲ 장애인연금제도 즉각 도입 ▲ 활동보조권리 보장 ▲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 ▲장애인교육법 실효성 제고 정책 시행 ▲ 장애인 의료보험 및 의료정책제도 개선 등을 요구안으로 내걸고 있다.

장애인들은 이미 지난 3월 26일부터 25일째 복지부 건물 앞에서 25일째 '생존권 확보를 위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날 오전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전재희 장관은 '장애인의 날' 기념사에서 "장애인들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