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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칼 가는 남자, 왜?

"칼이 잘 들어야 김밥이 예쁘게 잘려요"

등록|2009.04.21 14:08 수정|2009.04.21 14:09

▲ 아내가 싱크대 위에 둔 숫돌. ⓒ 임현철


"오늘 뭐해 줄까?"
"김밥요."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내는 아침부터 김밥 싸느라 부산합니다. 재료가 어디에서 뚝딱 나왔나 신기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불만입니다.

있는 대로 차려주면 편할 텐데, 아이들에게 어떤 메뉴를 먹을 것인지 묻기 때문입니다. 있는 대로 먹어야 식성도 까다롭지 않고 뭐든 잘 먹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습관들이다 아들이 결혼하면 아내에게 음식 타박할까, 걱정이기도 하고요.

하여,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은 될 수 있는 한 스스로 만들어 먹게 권하고 있지요. 일례로 계란 프라이나 비빔밥이 먹고 싶다 할 때는 스스로 만들어 먹게 합니다.

잠시 딴 대로 샜습니다. 김밥 재료는 계란, 당근, 참치, 햄, 어묵, 단무지, 오이, 김치 등 8가지입니다. 돌돌돌 말아 김밥을 완성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습니다.

"칼이 사람 잡겠어요"

▲ 김밥 재료. ⓒ 임현철


"여보, 칼이 너무 안 들어요. 칼 좀 갈아줘요."
"김밥 써는데 무슨 칼을 갈아달라고 하는가."
"칼이 사람 잡겠어요. 숫돌은 내놨어요."

아이들이 소풍 가거나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귀찮게 김밥을 만들더니 기어이 내게도 일 할당량이 떨어졌습니다.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아침부터 칼 갈아 달라니…'란 말을 삼키고, 썩은 미소를 띠며 군말 없이 주방으로 갑니다.

한 마디 했다간 '어휴~'로 시작되는 말을 들을까, 겁(?)이 나서지요. 그렇잖아도 몇 번이나 칼 갈아 달라 했는데 깜빡깜빡 잊고 그냥 지나친 전례도 있어서지요.

지난 해 처음으로 칼을 갈았는데 두 번째로 갈게 되었지요. 당시 아내는 "칼날을 계속 갈아 써야 하는데 너무 넓게 갈았다"고 퉁박했지요. 이걸 면하려면 날을 세워 칼 날 부위만 조심스레 갈아야 합니다.

"칼이 잘 들어야 김밥이 예쁘게 잘라져요!"

▲ 칼을 갈긴 갈았는데... ⓒ 임현철


"아빠, 칼이 안 들면 다시 사는 게 아니라 갈아 쓰는 거예요?"
"그럼, 갈아 써야지. 칼이 안 든다고 계속 어떻게 사서 쓰겠어. 어떻게 가는지 잘 봐둬. 너도 각시가 칼 갈아 달라할 때 군말 말고 이렇게 갈아줘라."

알았다든지, 안 할 거라든지 대답이 있을 법한데, 녀석에게서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김밥 자르는데 무슨 칼을 갈아달라고 해?"
"칼이 잘 들어야 김밥이 예쁘게 잘라져요. 안 그러면 김밥이 푹푹 들어가 모양이 안나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듣고 보니 일리 있더군요. 열심히 갈아 건네줬지요. 칼로 김밥을 자르던 아내, '칼이 잘 드네요?' 등 무슨 말이 있을 법 한데 조용합니다. '가만있으면 중이라도 간다'고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았지요. 잘 드는 것 같더군요.

▲ 김밥 만들기. ⓒ 임현철


그보다 아이들이 잘 먹으니까 괜스레 흐뭇하더군요. 내게도 김밥 할당량이 떨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침이라 입맛이 껄끄러운 참치 넣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내 김밥에도 참치가 들어 있더군요. 아이들에게 맞추느라 신랑 입맛을 잊은 거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잠자코 맛있게 냠냠 해야지요.

그래도 아침부터 칼 갈고 나니 기분이 상쾌해지더군요. 늘보 남편이랑 사는 아내의 속 터짐도 많겠지요?

▲ 칼을 갈긴 갈았는데 김밥 예쁘게 잘라졌나요? ⓒ 임현철


덧붙이는 글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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