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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정, 당신은 가슴에 칼 맞고 죽을 겁니다

[리뷰] 다카노 가즈아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등록|2009.04.21 14:00 수정|2009.04.21 14:00

<6시간 후 너는 죽는다>겉표지 ⓒ 황금가지

"여섯 시간 뒤에, 당신은 죽어."

생전 처음보는 젊은이가 다가와서 이런 얘기를 늘어 놓는다. 그러면 아마 십중 팔구는 이런 말을 하는 젊은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하기에는 이 젊은이가 외모도 멀쩡하고 너무나 진지한 태도를 하고 있다면? 그래도 쉽게 이런 말을 믿지는 않을 것이다.

6시간 후에 로또복권에 당첨된다고 해도 헛소리로 들릴 판인데 자신이 죽는다니, 누가 이런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까.

이 젊은이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알고있는 것과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살고있는 사람에게 나타나서 불길한 예언을 한다면,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비일상적인 미래를 예언하는 남자

다카노 가즈아키의 2007년 작품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에 바로 이런 말을 떠벌이고 다니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20대 초반의 야마하 케이시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케이시는 특정인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케이시가 모든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케이시에게 미래의 영상이 떠오르는 것은 그의 의지와 무관하다. 누군가를 봤을 때 저절로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영상은 대부분 비일상적인 일들이다. 즉 누군가가 칼에 찔려죽거나, 끔찍한 교통사고를 목격하거나, 거대한 폭발사고에 휩쓸린다거나 하는 일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한 그런 일들만이 케이시의 예언의 범주에 속한다. 당연히 이런 예언은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하지만 불쾌하기는 케이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는 것을 결코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케이시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어린시절 고열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예지의 능력이 생겨났다. 어릴 때에는 미래의 일이 아무거나 다 보였다. 그랬던 것이 성인이 되면서는 비일상적인 영역으로 범위가 좁아졌다.

이런 추세로 보건대 그의 힘은 언제가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케이시가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위험한 미래의 영상 때문에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몇 시간후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그것을 당사자에게 말해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도 그렇게 시작된다. 길을 걷던 케이시는 처음보는 젊은 여성의 얼굴에서 그녀의 미래를 본다. 그녀는 오늘 자정 가슴에 칼을 맞고 죽을 운명이다. 케이시는 용기를 내서 이 말을 건네지만, 여인은 케이시가 자신에게 '작업'을 건다고 생각할 뿐이다. 케이시는 그녀 앞에 놓인 죽음의 운명이 빗나가도록 할 수 있을까?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사람들

케이시가 심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자신의 기이한 능력 때문이다. 물론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하더라도 예지력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는 없다. 앞일을 예언하는 초현실적인 힘은 결코 심리학에서 다루는 영역에 포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케이시가 가장 고뇌하는 부분은, 자신의 이런 예지가 그동안 백발백중이었다는 점이다.

사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 예언이 적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미래가 이미 정해져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자유의지나 행동보다는, 그것을 뛰어넘는 정체불명의 힘이 그 사람들에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힘에 지배당하며 그 굴레를 따라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의 추론이 과연 옳은 것일까. 사람의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예지라는 능력은 존재할 수 없다. 미래가 가변적이고 선택가능하다면, 모든 예언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바꿀 수 없는 운명과 예언의 존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좀더 나아가자면, 행복한 인간과 불행한 인간은 그 운명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결론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13계단>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던 다카노 가즈아키는 이번 작품에서 초능력과 미스터리를 뒤섞은 독특한 영역을 선보이고 있다. 앞날을 내다보는 것은 극소수에게 주어진 혜택(?)이지만,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끔찍한 죽음이라면 더더욱.

"운명을 바꿀 수 있다니, 그런 잔혹한 말은 하지 말게."

작품에 등장하는 한 대학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인명을 잃어버릴 정도의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했을 때, 남겨진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그렇더라도 케이시는 포기하지 않는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조차 자신의 정해진 운명이더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하는 법이다. 살아있는 한,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하니까.
덧붙이는 글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김수영 옮김. 황금가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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