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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40) 정규직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615] ‘놀림감’과 ‘희화화’

등록|2009.04.21 15:46 수정|2009.04.21 15:46

ㄱ. 희화화되다

.. 그 신문 기사를 읽었을 때 후지모토는 왠지 자신이 놀림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 후지모토는 그 침팬지 덕분에 자신의 사랑마저 희화화된 것이 너무도 분했다 ..  《엔도 슈사쿠/김석중 옮김-유모아 극장》(서커스,2006) 144쪽

 '자신(自信)'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스스로가'로 손보아도 됩니다. '기분(氣分)'은 '느낌'으로 손보며, "자신의 사랑마저"는 "자기 사랑마저"나 '내 사랑마저'로 손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덕분(德分)에'보다는 '탓에'나 '때문에'를 넣어야 알맞지 않으랴 싶고, '침팬지(chimpanzee)'는 원숭이 갈래 가운데 한 가지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이 보기글에서는 '원숭이'라고만 해도 괜찮으리라 봅니다.

 ┌ 자신이 놀림감이 된 듯한 (o)
 └ 자신의 사랑마저 희화화된 것이 (x)

 보기글을 곰곰이 살피면, 앞줄에서는 '놀림감'이라 하고, 뒷줄에서는 '희화화'라고 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보기글을 우리 말로 옮긴 분은 앞과 뒤에서 똑같은 말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사뭇 다른 낱말을 넣으면서 글읽는 재미를 베풀고 싶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낱말을 바꾸어 준다고 해서 글읽는 재미가 남달라지지 않습니다. 같은 낱말을 넣는다 한들 얄궂거나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 내 사랑마저 우스꽝스럽게 되었기에
 ├ 내 사랑마저 바보스런 짓이 되었기에
 ├ 내 사랑마저 우스갯거리가 되었기에
 └ …

 앞과 뒤를 다르게 맞추고 싶다면, 뒤쪽은 아예 다르게 적어 주면 됩니다. '놀림감'으로 삼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곱씹으면서 느낌과 뜻을 살리거나 북돋울 만한 낱말과 말투를 찾아 주면 됩니다. 어떻게 놀리려 했는가를 밝혀도 되고, 놀림감이 된 내 마음이 얼마나 서글펐는가를 나타내어도 됩니다.

ㄴ. 정규직화

.. 그런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야기가 커지다 보니, 정규직들은 '왜 저 사람들 싸움에 우리가 동원돼야 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더라고요 ..  《권성현,김순천,진재연 엮음-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후마니타스,2008) 112쪽

 '동원(動員)돼야'는 '끌려나와야'나 '함께 나서야'로 다듬어 봅니다. 또는, '힘을 써야'나 '힘을 모아야'로 다듬습니다.

 ┌ 정규직화 : x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야기
 │→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려야 한다는 이야기
 │→ 비정규직도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 비정규직을 없애고 정규직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
 │→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똑같이 해야 한다는 이야기
 └ …

 날이 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이라는 자리가 줄어듭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지난날에도 '정규직 아닌 일꾼'은 늘 있었고 이들이 받는 푸대접을 '정규직'이 살갗으로 느끼면서 보듬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예 정규직인 정규직일 뿐이고, 괜히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나서면서 제 목아지가 잘릴까 걱정하다 보니까, 자꾸자꾸 밥그릇 지키기가 되는 가운데, 자기 스스로도 어느 결에 비정규직이 되면서 '진작 비정규직 권리 지키기를 하지 못한 잘못'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회사 얼거리이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과 가난하지 않은 사람으로도 나뉘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게으르거나 못나거나 어리숙하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조금 게으르다면 조금 부지런한 사람이 도우면 되고, 조금 못났으면 조금 잘난 사람이 거들면 됩니다. 조금 어리숙한 사람한테는 조금 빠릿빠릿한 사람이 손을 내밀면 되고요.

 조금 더 잘할 줄 아는 사람이 도와야 하는 삶이거든요. 조금 더 똑똑한 사람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풀어내 주어야 할 삶이거든요. 조금 더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여린 사람을 감싸고 사랑해 주어야 할 삶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어른들이 돌보듯,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 오빠가 누이를 걱정하고 언니가 동생을 아끼듯, 앞서 있는 사람이 뒤에 있는 사람을 애틋하게 껴안아야 할 삶입니다.

 ┌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
 ├ 비정규직 푸대접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
 ├ 모두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 누구나 정규직으로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
 └ …

 100원 한 푼 없는 사람한테 100원 한 푼 똑같이 없는 사람이 돕기란 힘듭니다. 1000원 있는 사람이 100원을 모두 나누어 줄 수 있으나 다문 10원이나 1원이라도 나누어 주어야 100원 한 푼 없는 사람이 기운을 차립니다. 그리고 1000원 있는 사람한테는 10원이나 1원을 덜면서 허리띠를 살짝 조이면 그리 어려움이 없어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가르는 사회 얼거리란, 권력자가 우리를 송두리째 휘감으면서 우리끼리 흐트러지게 하려는 셈속일 텐데, 우리가 사랑을 배우지 않거나 나누지 않는다면, 또 우리가 아름다움을 찾지 않거나 멀리한다면, 자꾸자꾸 이 틈이 벌어지고 맙니다. 그러면서 이웃만 괴로운 삶이 아니라 이웃을 모르쇠하는 우리 스스로도 괴로운 삶이 되어 버립니다.

 좀더 사랑스럽고 슬기로우며 빛나는 말글을 가누지 못하는 자리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뿐 아니라 한결 손쉽고 부드러운 말 한 마디로도 마음을 뻗칠 수 있어야 즐겁습니다. 딱딱하거나 메마른 말 한 마디가 아닌 둥글둥글하면서 싱그러운 말 한 마디로 뻗어나갈 수 있으면 고맙습니다. 지식을 한껏 뽐내는 말 한 마디가 아닌, 지식나눔으로 거듭나는 말 한 마디로 달라진다면 더없이 반갑습니다. 나누려는 마음과 함께하려는 마음과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일자리 실타래와 말글 실타래 모두 엉키지 않고 풀려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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