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을 기억하는가? 아련한 기억 속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는 다락방. 어린 시절의 꿈과 놀이의 공간이었던 다락방. 아파트와 같은 주택에서 다락방을 보기가 어렵지만 예전에 다락방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였다.
다락방은 은밀함이 있는 공간이다. 생각의 장소이고 창조의 장소이다.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뒹굴어도 그저 편안한 공간이다. 또한 엄마 아빠한테 야단을 맞은 뒤 숨을 수 있는 은신처이며 피난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락방을 경함한 세대에게 다락방은 추억의 공간이고 그리움의 공간이다.
오랜만에 그 다락방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글을 읽었다. 조남혁의 <할머니의 다락방>(달과 소)이다. 이 책은 단순한 다락방의 추억이 아니라 다락방과 같은 그리움이 묻어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를 글쓴이의 삶과 현대인의 모습을 버무려 놓은 글모음이다.
예전엔 할머니가 있었다. 힐머니는 손자 손녀들을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옛날이야기를 구수한 입말로 전해주었다. 이야기뿐만 아니다. 때론 엄한 스승이 되기도 하고 다정한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자애로운 손길로 한없이 손자 손녀들을 감싸주고 안아주었다.
<할머니의 다락방>에선 그런 할머니의 모습들이 시렁 위에 놓여 있는 곶감처럼 걸려있다. 글을 읽다 보면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글쓴이의 할머니에 대한 추억 한 토막을 보자.
"하루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시간 어느 집에서 초상이 났습니다. 초상이 나면 돌아가신 분의 상을 차리면서 저승사자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노잣돈도 주곤 하였습니다. 저승사자의 식사대접으로 대문밖에 쟁반을 놓아두었는데, 그 쟁반에는 엽전과 짚신, 반찬 몇 가지 그리고 대접에 밥을 담아 그냥 엎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얼른 그 밥덩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위에 묻은 흙들을 떨어내고 담아 와서 자식들을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글쓴이는 소아마비로 다리를 전다. 그의 할머니도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신을 따스하게 쓰다듬어 주고 힘을 주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에겐 항상 당당했다. 자부심도 강했다. 언제나 당당하고 꼿꼿했던 할머닌 때론 자식들을 위해 사잣밥을 가져와서 자식들을 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나에게 할머닌 양지바른 곳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모습만이 떠오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할머니인 외할머니는 싸낙배기였다. 항상 꼬장꼬장 했고 당당했다. 그리고 아들만을 위했다. 잘 사는 아들이 옆에서 살았지만 쓸쓸하게 세상의 눈을 감았다. 하지만 속정은 깊어 어쩌다 할머니댁에 방문하면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던 기억이 어슴프레하게나마 난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은 사라져갔다. 현실에 매달리다 보면 과거의 기억은 그저 흘러간 물과 같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되면 사라졌던 것들이 떠오른다. <할머니의 다락방>이 그랬다. 글 중간중간에 놓여있는 보리밭이며, 호박, 천장 시렁에 걸려있는 노오란 옥수수들, 가마솥에 불을 때는 아궁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아련했던 기억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글을 읽으면서 아쉬운 마음이 든 것도 있다. 글속에 할머니의 체취가 덜 묻어났기 때문이다. 글의 의도가 할머니의 생각과 말을 통해 현대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마음들을 들려주는 쪽으로 흘러가 글쓴이의 생각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까. 물론 글쓴이에게 할머닌 어떤 존재이며 할머니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나를 행간 마디마디에서 느낄 수 있음은 다행이지만 말이다.
어머니 못지않게 할머니도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더욱이 세상에 없는 할머니는 그 그리움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글쓴이는 그 그리움을 단순히 그리움에 머물지 않고 삶의 지혜로 연결하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은 아니지만 독자들은 <할머니의 다락방>을 읽으며 올바름을 일깨워주고 따스한 마음을 전해주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다락방은 은밀함이 있는 공간이다. 생각의 장소이고 창조의 장소이다.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뒹굴어도 그저 편안한 공간이다. 또한 엄마 아빠한테 야단을 맞은 뒤 숨을 수 있는 은신처이며 피난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락방을 경함한 세대에게 다락방은 추억의 공간이고 그리움의 공간이다.
▲ <할머니의 다락방> / 조남혁 지음 ⓒ 달과 소
오랜만에 그 다락방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글을 읽었다. 조남혁의 <할머니의 다락방>(달과 소)이다. 이 책은 단순한 다락방의 추억이 아니라 다락방과 같은 그리움이 묻어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를 글쓴이의 삶과 현대인의 모습을 버무려 놓은 글모음이다.
예전엔 할머니가 있었다. 힐머니는 손자 손녀들을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옛날이야기를 구수한 입말로 전해주었다. 이야기뿐만 아니다. 때론 엄한 스승이 되기도 하고 다정한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자애로운 손길로 한없이 손자 손녀들을 감싸주고 안아주었다.
<할머니의 다락방>에선 그런 할머니의 모습들이 시렁 위에 놓여 있는 곶감처럼 걸려있다. 글을 읽다 보면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글쓴이의 할머니에 대한 추억 한 토막을 보자.
"하루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시간 어느 집에서 초상이 났습니다. 초상이 나면 돌아가신 분의 상을 차리면서 저승사자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노잣돈도 주곤 하였습니다. 저승사자의 식사대접으로 대문밖에 쟁반을 놓아두었는데, 그 쟁반에는 엽전과 짚신, 반찬 몇 가지 그리고 대접에 밥을 담아 그냥 엎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얼른 그 밥덩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위에 묻은 흙들을 떨어내고 담아 와서 자식들을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글쓴이는 소아마비로 다리를 전다. 그의 할머니도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신을 따스하게 쓰다듬어 주고 힘을 주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에겐 항상 당당했다. 자부심도 강했다. 언제나 당당하고 꼿꼿했던 할머닌 때론 자식들을 위해 사잣밥을 가져와서 자식들을 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나에게 할머닌 양지바른 곳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모습만이 떠오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할머니인 외할머니는 싸낙배기였다. 항상 꼬장꼬장 했고 당당했다. 그리고 아들만을 위했다. 잘 사는 아들이 옆에서 살았지만 쓸쓸하게 세상의 눈을 감았다. 하지만 속정은 깊어 어쩌다 할머니댁에 방문하면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던 기억이 어슴프레하게나마 난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은 사라져갔다. 현실에 매달리다 보면 과거의 기억은 그저 흘러간 물과 같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되면 사라졌던 것들이 떠오른다. <할머니의 다락방>이 그랬다. 글 중간중간에 놓여있는 보리밭이며, 호박, 천장 시렁에 걸려있는 노오란 옥수수들, 가마솥에 불을 때는 아궁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아련했던 기억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글을 읽으면서 아쉬운 마음이 든 것도 있다. 글속에 할머니의 체취가 덜 묻어났기 때문이다. 글의 의도가 할머니의 생각과 말을 통해 현대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마음들을 들려주는 쪽으로 흘러가 글쓴이의 생각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까. 물론 글쓴이에게 할머닌 어떤 존재이며 할머니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나를 행간 마디마디에서 느낄 수 있음은 다행이지만 말이다.
어머니 못지않게 할머니도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더욱이 세상에 없는 할머니는 그 그리움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글쓴이는 그 그리움을 단순히 그리움에 머물지 않고 삶의 지혜로 연결하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은 아니지만 독자들은 <할머니의 다락방>을 읽으며 올바름을 일깨워주고 따스한 마음을 전해주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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