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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호르몬야키'에 담긴 슬픈 역사

[책 속으로 떠난 역사 여행 38]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등록|2009.04.24 08:29 수정|2009.04.24 08:29

▲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 동아시아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탄광에서 군수공장에서 강제 노역에 종사하거나, 막노동 아니면 쓰레기더미 뒤져서 사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소나 돼지의 내장을 먹지 않고 버렸다. 그렇게 버려진 내장을 재일 한인들이 모아서 음식으로 만들어 먹고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일본인들은 '호르몬야키'라 불렀다.

내장구이를 의미하는 '호루모노'란 말은 오사카 방언으로 버릴 것이란 뜻이란다. 이제는 '호르몬야키' 전문점이 생길 정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 음식에는 버려진 것에 의존해 살 수밖에 없었던 버림받은 사람들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근처가 청과 시장이어서 상품 가치가 떨어진 야채를 얻어와서 내장과 같이 끓여 손님에 냈다. 가게 위치는 변두리였지만, 근처에 전화국이 있어서 저녁 다섯 시를 넘기면 사원들로 넘쳐났다."(김영동의 증언)

"어느 날 바다에 나가니 뭔가 큰 고기 덩어리 같은 것이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잘 보니 돼지 내장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가게에 가지고 들어와 씻어 작게 잘라 손님 상에 냈다. 돼지 내장은 손님들에게 인기였다. 집에서 만든 탁주도 냈다. 읽고 쓰지는 못하기 때문에 주먹구구였지만 그래도 돈은 벌었다."(유우점의 증언)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버림받은 사람들

재일 한인들은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이라 부른다. 식민지 지배 국가였던 일본의 우월주의에 의해 차별의 대상이 되었고,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고, 귀국했다 다시 밀항 등의 방법으로 일본으로 되돌아갔다는 이유 등으로 한국으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이들은 나라 잃은 시점에서 일본에 건너가 전쟁을 겪었다. 군수공장에서, 탄광에서, 전선에서 중노동과 전쟁을 했다. 황국신민의 대의 앞에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소모품처럼 던져졌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겨우겨우 살아난 사람들 앞에는 패전한 일본 땅에서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방 후 많은 사람들이 귀국했지만, 일본 땅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귀국 후 생활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때까지의 삶의 터전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또한 돌아간 사람들 중 일부는 생활고 등의 이유로 밀항선을 타고 다시 현해탄을 건너기도 했다. 대략 50만 정도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전후 일본 땅에서 잡초보다 더 강인한 생명력으로 억척같은 삶을 꾸려 나갔다.

일본 사회 최하층에서 차별과 빈곤과 무관심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 살아야 했던 이들은 살기 위해 상황과 조건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막노동, 가축 도살, 폐품 수거, 가축 사육, 암거래, 고철수집, 파친코, 분뇨처리, 폐품처리, 밀주 제조 판매 ….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들판의 잡초처럼 일본이나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이들은 일본 사회에서 뿌리내렸다. 현재 약 60만 정도 살고 있고, 재일 3, 4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여전히 일본 내 최대 소수민족 집단인 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를 조선인의 후예가 아닌 '자이니치'라 부르기 시작했다.

'자이니치' 사진작가의 역사 찾기

"재일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다. 1세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 했다."

저자는 5년 동안 간토, 주코쿠, 긴키, 홋카이도, 도호쿠, 시코쿠, 도카이, 규슈, 호쿠리쿠, 고신에쓰 등지를 돌면서 '자이니치' 1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인터뷰를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터뷰는 했어도 면담 내용을 공개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록은 허용하되 사진은 게재하지 말아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91명의 이야기를 모아 책을 펴냈다. 책 후기에 남긴 저자의 글이 뭉클 마음을 울린다.

재일 1세가 여기 일본에서 살아온 인생.
일본인 아내와 이중 결혼.
고향에 대한 애착.
운명인가.
숙명인가.
전쟁의 발자취인가.
전쟁의 희미한 울림인가.
자이니치는 자이니치에 지나지 않는다.(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이붕언 지음 / 윤상인 옮김 / 동아시아 / 2009.3 /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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