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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여는 헌책방은 새로운 책쉼터

[헌책방 나들이 197] 서울 동교동 〈우리 동네 헌책방〉

등록|2009.04.26 15:17 수정|2009.04.26 15:17
(1) 책방과 삶터

늘 다니던 길을 거닐다가 새로 문을 연 헌책방 한 곳을 만나면 기쁨으로 들뜹니다. 이 길에, 이 동네에, 이 터에 새로 책쉼터가 하나 마련되었구나 싶어서.

늘 다니던 길을 다니다가 언제나처럼 열려 있던 헌책방이나 새책방이 조용히 간판을 내리고 사라진 모습을 보면 슬픔으로 가슴이 저립니다. 이 길에, 이 동네에, 이 터에 사람 냄새가 또 하나 가시어 버리면서 마음 쉴 곳을 빼앗겼구나 싶어서.

요즈음이야 워낙 헌책방이고 새책방이고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새롭게 문닫을 만한 책방'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동네새책방은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접어들 무렵 전국 곳곳에서 거의 모두 씨가 마르게 되었고, 동네헌책방 또한 같은 무렵에 꽤 많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헌책방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이라 한다면 청계천일 테지만, 헌책방이 문을 여는 나라안 흐름을 본다면 청계천보다 서울역 둘레에 훨씬 많거나 제법 많이 있어야 맞습니다. 예전에 한창 헌책방이 많이 있던 때에는 버스역이나 기차역에서 5분이나 10분쯤 걸어 나가면 꼭 몇 군데쯤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네새책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역 헌책방은 씨가 말랐습니다. 꼭 하나 <서울북마트>가 남았습니다만, 이곳은 인터넷으로만 사고파는 틀로 바꾼 지 열 해쯤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큰 기차역인 용산역 둘레에도 1975년부터 장사를 하고 있는 <뿌리서점> 한 곳만 남았을 뿐, 이 둘레에서 헌책방은 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크다 할 청량리역 둘레도 다르지 않습니다. 청량리역 둘레에는 아예 한 군데조차 남아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차역에서 기차때를 맞추어 기다리는 동안 마음을 쉴 만한 작은 새책방 또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때때로 '새책 할인 코너' 같은 데가 생기고, 용산역 안이나 노량진역 바깥이나 신도림역 안에 '재고도서 할인 코너'가 마련되기도 합니다만, 전철을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슥 훑어보기에도 바쁩니다. 몇 분이나마 눈을 밝히면 반가운 책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조금 둘러볼라치면 금세 전철이 들어오니, 전철역에 마련된 책꽂이를 살피기는 쉽지 않습니다. 책을 살피고 마음에 새기는 자리는 시간에 매이지 않으면서 느긋할 수 있는 데에 있어야 한달까요.

곰곰이 돌아보면, 오늘날 책장사란 여느 옷가게나 밥가게처럼 큰 돈벌이가 못 되지 않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마음을 채우는 밥보다는 몸을 채우는 밥이 좋고, 속마음을 다스리거나 가꾸는 일보다 겉몸을 꾸미거나 보듬는 일이 한결 좋다고 여기는 세상 흐름이 거세니까요. 이러하다 보니 책읽기는 제자리를 잡기 어려우며, 기차역이건 버스역이건 마음밥 채우는 책이 알차게 꽂히며 우리를 기다리는 자리를 마련하기 또한 어렵게 됩니다. 빨리 돌고 금세 읽어치우는 책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찬찬히 새기면서 받아먹는 책보다 잠깐잠깐 시간 때우기에 그치는 책으로 메꾸어지게 됩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삶보다 더 많은 돈을 노래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들은 아름다운 삶 앞에서 등돌리고 더 많은 돈 뒤에서 줄을 서니까요. 더 많은 돈을 벌어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쓸 생각인지조차 모르는 가운데 그예 돈 뒤에서 줄을 서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제대로 말하자면 '동네새책방이 사라지고 동네헌책방이 문닫는다'고 하기보다는 '동네새책방을 우리 스스로 사라지게 했고, 동네헌책방을 우리 스스로 없어지게 했다'고 해야 옳겠구나 싶습니다.

▲ <우리 동네 헌책방> 간판은 그리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거님길이 좁고 오가는 차가 어수선해서 쉬 놓치거나 지나칠 수 있습니다. 또, 이 앞길은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자리가 아니기도 합니다. ⓒ 최종규


(2) 홍대 둘레 새 헌책방

서울 홍대입구역 둘레에 헌책방 한 곳이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지난 2008년 6월에). 헌책방 일을 처음으로 하신 분은 아니고, 다른 자리에서 하다가 이리로 옮겨 오셨습니다. '동교동세거리', 흔히 '린나이 앞 세거리'라고 하는 곳 모퉁이에 자그맣게 열었습니다. 헌책방 간판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꼭 하나만 붙었습니다. 못 알아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홍대-신촌 둘레에 있는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신 분이라면, 다른 헌책방마다 "거기 모퉁이에 새로 헌책방 연 데 아시나요?" 하고 소개를 해 주기 때문에, 소개말을 듣고 어렵잖이 찾아갈 수 있습니다. 새롭게 문을 연 곳이 좀더 힘을 내고 오래도록 튼튼히 뿌리를 내리면서 이곳 홍대-신촌 둘레에 '띄엄띄엄 헌책방골목'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느 곳에서나 스스럼없이 소개해 주니, 즐겁게 소개말을 듣고 신나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 둘레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은 〈온고당〉입니다. 홍익대 앞문에서 오른쪽으로 30미터쯤 건너편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오래된 곳은 〈정은서점〉입니다. 연세대학교 앞문에서 오른편으로 80미터쯤 가면 건너편에 있고, 서대문우체국 못 미쳐서 있습니다. 그리고 〈공씨책방〉이 있습니다. 신촌현대백화점 앞길에서 동교동 넘어가는 고갯마루로 가다 보면 만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다 보면, 〈공씨책방〉 조금 못 미친 골목길 오른쪽 2층에 〈신촌헌책방〉이 있으며, 〈신촌헌책방〉에서 안쪽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15미터쯤 왼편으로 지하에 〈동국서점〉이 있습니다. 신촌역 8번 나들목으로 나와 큰길을 따라 죽 걷다가 건널목을 그대로 지난 다음 이 앞에 보이는 빠리바게트에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세 번째 골목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숨어있는 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숨어있는 책〉은 2009년 11월에 꼭 열 해 역사를 채우게 됩니다. 동교동세거리(린나이세거리)에서 〈공씨책방〉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글벗서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린나이세거리 모퉁이에 새로 문을 연 이곳, 〈우리 동네 헌책방〉은 여덟째 헌책방이 되는 셈일 테지요.

그동안 제가 떠올리는 이 둘레에서 자취를 감추거나 다른 곳으로 옮긴 헌책방을 꼽아 보자면, 〈원천서점〉(닫음), 〈오거서〉(옮김), 〈영광서점〉(옮김), 〈모아북〉(옮김), 〈서연서점〉(닫음), 〈문화책방〉(닫음) 들이 있습니다. 〈신촌헌책방〉은 예전에 북아현동에서 〈책방 책사랑〉을 하시던 분이 열었고, 요즈음은 아현동에서 〈대성서점〉을 하시던 분이 이어서 꾸리고 있습니다. 연남동 안쪽 골목에는 헌책까페 〈캘커타〉가 꼭 이태를 지키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 앞에도 헌책방이 있지 않았을까 싶으나, 제가 서울 헌책방을 다니던 1994년부터 보자면 한 군데도 살아 있지 않았고, 서강대 앞에도 이무렵에 한 군데도 없었다가 2005년에 한 번 새로 열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1980년대까지는 있지 않았겠느냐 생각해 봅니다). 나라안에 몇 손가락 꼽는다는 대학교 앞이라고 하여 반드시 헌책방이 한두 군데쯤 있어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헌책방을 비롯해 인문학 책방조차 없는 대학교이니, 아예 책 문화가 없는 셈이라 할까요.

앞으로 2010년이 되고 또 2020년이 되면 이 둘레 책방그림이 어떻게 달라질까를 잠깐 생각해 보다가 안으로 들어섭니다. 가방은 문간에 내려놓고 책을 구경합니다. 먼저, 《라이너 침닉/유혜자 옮김-크레인》(큰나무,2002)이라는 이야기책이 눈에 뜨입니다.

▲ 책방 앞 모습. ⓒ 최종규


.. 당시(2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긴긴 겨울밤에 단골 술집을 찾을 만한 여유도 없을 만큼 모두들 가난했었다. 그래서 나도 생활비를 벌어 보자는 생각에서 '크레인에서 일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 언젠가 글이 마무리되면 그에 맞는 삽화도 직접 그리고 싶은 생각에 무척 설레어 했었다. 기억해 보면 아주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  (머리말)


처음 만나는 헌책방에서 처음 만나는 책 하나입니다. 오늘 이 길을 거닐었기에 만나는 헌책방과 오늘 이 헌책방에 들어왔기 때문에 손에 쥐게 되는 책 하나입니다. 그냥 좋아서 책을 쥐고 웃다가 다른 책을 더 둘러봅니다.

《藤澤秀行/권희철 옮김-괴물 슈우꼬오》(현현각,1981)라는 낡은 책을 집어듭니다. 바둑 두는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글쓴이가 당신 아이한테도 바둑을 가르쳐야 하느냐 하고 생각하면서 쓴 글이 보입니다.

.. 공부만 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하고 딴 짓을 하면 더욱 낭패다. 정말 고생스럽다. 하지만 이것을 참느냐 못 참느냐가 하나의 승부이다 … 그러나 현재 일본 사회는 아직도 학력 편중이어서,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고등학교, 그 아래의 중학교, 국민학교, 유치원까지 경쟁이 심한 모양이다. 가령 자식이 아무리 바둑에 취미를 가졌고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부모들은 바둑이 다 뭐냐, 공부를 하라고 성화를 바칠 게 틀림없다 ..  (209∼213쪽)

1970년대 일본 이야기이지만, 2000년대 일본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2020년대가 되고 2040년대가 되어도 거의 똑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대로 이대로 또 이대로 이대로 흐르면서 석유가 마르고 지구자원이 사라지고 나서야 달라질 수 있을까요. 파란빛 하늘이 죄 사라지며 잿빛 하늘이 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무언가 달라지게 될까요. 자동차 굴릴 기름이 바닥이 나고 나서야 자동차공장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자동차 다니라고 닦은 수많은 길을 어찌해야 할는지를 비로소 돌아보게 될까요.

《윌리엄 골딩/유종호 옮김-파리대왕》(민음사,1983)을 집어듭니다. 책이름은 숱하게 들었으나 아직 읽지 않은 소설입니다. 오늘 이렇게 만난 김에 장만해 놓는데, 앞으로 언제쯤 느긋하게 펼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저는 못 읽는다 하여도 우리 아이가 나중에 커서 "아빠, 《파리대왕》이라는 책 우리 집에 있어요?" 하고 물어 보게 될는지 모르기 때문에 갖추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책을 다 갖출 수는 없으나 《파리대왕》쯤이라면 책꽂이 한켠에 얌전히 꽂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버트란드 러셀/안정효 옮김-권력》(열린책들,1988)이라는 책을 들춥니다. 고등학교 때 곧잘 이름을 듣던 철학가였으나 이이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칸트라든지 헤겔이라든지 마르크스라든지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가르쳐 주지 못한 학교입니다. 종이돈에 아로새겨지는 퇴계와 율곡이 어떤 사람이었던가 또한 가르쳐 주지 않는 학교입니다. 종이돈에 세종 임금을 새긴들, 김구 어른을 새긴들, 이런 분들 발자취를 있는 그대로 가르쳐 주는 학교가 될까요. 그리고, 종이돈에 새겨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삶자락을 꾸밈없이 일러 주는 학교가 될까요.

.. 복종하는 태도를 밑사람들에게 강제로 요구하는 태도는 지성으로부터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분명히 부조리한 어떤 이념을 적어도 겉으로나마 사람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회에서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바보가 되거나 정부에 대해서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어진다. 그 결과로 지성적인 수준은 저절로 낮아지고, 그러면 머지않아 기술적인 발전이 방해를 받는다. 이것은 정부의 이념을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정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나찌는 가장 유능한 독일인들을 대부분 몰아냈고, 이것은 머지않아 틀림없이 그들의 군사적인 기술 발전에 불리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학문이 없이 기술이 오랫동안 발전 상태를 지속한다거나, 사상의 자유가 없는 여건에서 학문이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전쟁과 상당히 떨어진 문제들에 있어서까지 이념적인 획일화를 고집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과학의 시대에서는 군사적인 효율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  (138쪽)

《알렉스 콤포트/김종규 옮김-성의 재발견》(열린책들,1986)이라는 책을 구경합니다. 눈에 뜨이는 꼭지를 먼저 읽어 보는데, 이런 이야기를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어릴 적부터 제대로 듣거나 배우거나 알기 힘들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한국사람이 아닌 서양사람이 썼으니, 서양에서도 우리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일까요. 서양에서도 우리 나라와 매한가지로, 남자는 남자대로 치우치게 배우며 자라고 여자는 여자대로 기울어지게 배우며 자라고 있을까요.

.. 즉, (음악가) 바하 같은 남자들은 아이들을 돌볼 필요는 없으며, 그의 부인과 여성들이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기 남편뿐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차이의 거의 대부분은 소위 (아마 후천적으로 습득된) 그런 종류의 것이다. 사실, 우리는 올바르지 못한 성교육을 받아 온 어린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호르몬이 남성 및 여성적으로 행동하도록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또 주고 있지만, 성적인 역할 그리고 공격적이거나 비공격적인 놀이를 선택하여 행동하는 생물학적으로도 관찰 가능한 것들의 거의 80퍼센트가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  (111쪽)

제 긴머리를 보면서 '남자가 왜 머리를 기르느냐?'고 따지는 꼬맹이를 볼 때면, '아저씨는 왜 수염을 안 깎아요?' 하고 캐묻는 꼬마를 만날 때면, 내 차림새를 보며 '여행하는 사람'이냐고 묻거나 '외국사람인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우리들은 누구나 '고정관념'에 잔뜩 얽매여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알렉스 콤포트 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남자로 길들고 여자로 길드는' 삶굴레에 매여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릴 적부터 외곬로 길들기 때문에 학문이나 정치로 남녀평등이 외쳐지고 정책이 나오고 제도가 마련되어도, 좀처럼 뿌리내리거나 퍼지기 어렵구나 싶습니다.

▲ 책꽂이 한켠. 마음에 와닿는 책을 느긋하게 헤아려 봅니다. ⓒ 최종규


(3) 책과 어깨

불문과 교수라고 하는 분이 쓴 수필을 그러모은 《이순희-나는 섬이고 싶다》(범우사,1987)라는 책이 보입니다. 저한테는 낯선 글쓴이요, 책이름이 그리 끌리지는 않습니다. 그저 범우사에서 펴낸 수필책이라는 대목에 눈길이 갑니다. 어떤 이야기를 펼쳤을까 헤아리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 몇 년 전 어느 문과 교수의 발표 중에 아주 공감한 부분을 우선 소개해 보겠다. 70년대 초반, 대학 입시 출제 방법이 순 객관식이던 때다. "학생들에게 나는 간혹 200∼300페이지 정도의 소설을 읽히고 독후감을 써 오라고 합니다. 말로 발표도 시켜 봅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의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특히 지적할 만한 것은 말을 할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데에 놀라게 되었읍니다. 대학 3,4학년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식인이고,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지도층이 되는데, 기껏 책 한 권을 읽고 난 소감이 '젊은 병사와 여대생의 애정소설입니다', '스페인 내란의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라는 몇 줄의 표현으로 끝나 버리는 현상입니다. 결국 지금 대학생들은 언어를 싫어하는 기피증이 있든지, 아니면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언어 구사 능력이 부족함을 지적할 수 있읍니다." ..  (195쪽)

198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사람이라면 이제는 마흔 줄 넘긴 어른입니다. 이분들은 이제 회사에서도 과장 자리쯤 차고 있을까요. 아니면 좀 낮은? 좀 높은?

1980년대 이순희 님한테 프랑스문학을 배우던 그 대학생들이 시집장가를 갔다면 저마다 아이를 낳았을 테고, 이제는 초등학생쯤 되지 않았으랴 싶은데, 이분들은 당신 아이들한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살며시 궁금해집니다. 당신들은 대학생 때 기껏 몇 줄짜리 줄거리로 느낌글을 쓴 주제인데, 당신 아이들은 논술학원에 집어넣고 아주 잘 짜여진 독후감을 쓰라며 닦달하지는 않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1980년대 대학생이었을 분뿐 아니라 1970년대에 대학생이었을 분들이라고 하여 딱히 달랐으리라 느끼지 않습니다. 1960년대 대학생은? 1950년대 대학생은? 일제강점기 때 지식인은? 예전에는 얼마나 뛰어났을까요? 지난날에는 얼마나 대학생다웠고 지식인다웠으며 학문하는 사람다웠을까요?

낯선 책 하나 이천 원에 사들어 좋은 이야기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면서, '서울 흑석동 국민은행 맞은편에 있었다는 인문사회과학책방 〈청맥〉'에서 쓰던 종이책싸개 하나 싸인 책을 마지막으로 구경합니다. 책싸개에 싸인 책은 《김태준-식민지 혁명운동의 교훈》(대동,1988)입니다. 속에 든 책에는 그다지 눈길은 안 가는데, 책싸개에 눈길이 갑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입니다. 책싸개만 벗겨 가도 되는지 여쭐는지, 그냥 책을 살는지 망설입니다. 그러다가 그냥 책을 사기로 합니다. 책싸개만 따로 벗겨 간수해도 괜찮지만, 책싸개란 책을 싸고 있으라고 따로 만든 종이이며, 책을 싸고 있을 때 값을 합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책방 자취에다가, 그 책방에서 팔았던 책 자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만큼, 책값을 치러 책싸개가 말끔히 남아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책방 앞 그리 넓지 않은 거님길 한켠에 책을 내놓고 있으니, 이 책꾸러미를 보면서 헌책방을 알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너무 빨리 걷지 않는다면, 옆도 느긋하게 둘러보면서 걷는다면. ⓒ 최종규




이제 다 골랐으니 고른 책을 한 아름 안고 셈대에 올려놓습니다. 책값을 셈하고 가방에 넣습니다. 어깨로 느껴지는 책무게가 흐뭇합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거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읽을 책 한 권만 꺼냅니다. 가방을 멨던 어깨가 없는 듯합니다. 가방을 메고 있는 동안에도 꾸욱 눌러지지만, 가방을 내려놓고 있어도 이 느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되다면 고된 눌림인데, 이 고된 눌림을 벌써 스무 해 가까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사이는 가방 없이 맨몸으로 사진기 하나만 들고 골목마실을 할 때에도 허리가 조금 결리고 어깨가 쑤십니다. 방바닥에 드러누우면 온몸 구석구석 어느 뼈 하나라도 안 아픈 데가 없는 듯합니다. 끙끙 앓다가 어느새 잠이 들고, 잠이 들었다가도 화들짝 놀라서 깨어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길에서는 한손에 책을 쥐고 한손으로는 등짝과 팔다리 어깨를 쉴 새 없이 주무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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