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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0만원 백수... 삼성에서 연락왔어요"

[2030세대의 특별한 데뷔전 ③] 미술 콘텐츠 제작·유통 1인 기업 봄봄

등록|2009.04.27 09:37 수정|2009.04.27 13:25
소셜 벤처란 사회적 기업(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중에서도 청년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설립된 곳을 나타낸다. 다수의 청년들이 소수의 안정적인 직장에 몰리며 청년실업이 구조화되는 상황에서 소셜 벤처는 청년실업 문제 해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4차례에 걸쳐 2030세대 소셜 벤처 기업가들을 만날 예정이다. [편집자말]

▲ 지난 15일 박보미(32)씨가 서울 상수동 사무실에서 싸이월드 스킨(미니홈피 배경화면)을 제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미술관 큐레이터 인턴 모집. 근무기간 6개월. 근무보수 없음.

이 정도면, 말 많고 탈 많은 행정 인턴도 명함을 못 내민다. 정규직 전환은커녕 6개월 동안 돈을 받을 수 없다니. 정규직이 돼도 보통 월급이 70만~80만원. 그나마 이런 자리라도 있으면 다행이라고 미대 출신 청년들은 말한다.

이들 중 작가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술학원 입시강사가 될 수도 있지만, '알바'일 뿐이다. 아무리 예술가의 길은 배고프다지만, 밥 벌어 먹고 살 수 없다면 예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예술의 대중화는 까마득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젊은 예술가이자 '봄봄'이라는 1인 소셜 벤처를 운영하는 박보미(32)씨를 만나기 전까지다. 싸이월드 스킨(미니홈피 배경화면)을 통해 예술작품을 감상했던 이라면, 보미씨에게 고마워해야 할 터다. 앞으로 벽걸이TV가 아름다운 그림을 담기 위한 액자일 수 있다면, 이 또한 보미씨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한 때 백수였다가 이젠 예술과 대중의 소통 장벽을 없애는 일을 하면서 대기업으로부터 사업 제의를 받고 있는 보미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인 기업 운영하는 젊은 예술가가 사업하는 방식

▲ 지난 15일 박보미(32)씨가 서울 역삼동 지마켓 본사에서 지마켓 상품기획자와 시제품을 앞에 두고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요즘 보미씨는 바쁘다. 27일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새겨 넣은 티셔츠와 가방이 국내 최대 오픈마켓인 지마켓(G마켓)을 통해 출시되기 때문이다. 보미씨도 지마켓도 이번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어 시장의 반응이 기대된다.

지난 15일 보미씨가 서울 역삼동 지마켓 본사를 찾았을 때, 지마켓 상품기획자(MD)는 시제품을 두고 "내부에서 다들 예쁘다고 한다, 반응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봄봄 전시 페이지 팝업을 띄워 홍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보미씨에겐 걱정도 많다. 혼자 하는 사업이니 챙길 게 많다. 그는 지마켓 쪽에 "채도를 더 높게 해야 한다", "티셔츠에 프린트하는 과정에서 그림이 조금 뭉개지는 것 같다", "직접 공장을 방문하고 싶다" 등의 다양한 의견을 전했다.

사업하는 데는 역시 가격 맞추기가 가장 어렵다. 보미는 "요새 티셔츠를 3000원에 팔면서도 무료 배송하는 데가 있는데 너무 싸구려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너무 비싸도 경쟁력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판매액의 일부가 보미씨의 몫이라, 수익을 작가들과 나누기도 빠듯하다. 보미씨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가격에 연연해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5월 새로운 작가들이 참여하면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봄날 오기 전, 길었던 겨울... 백수 생활도

▲ 젊은 예술가인 박보미(32)씨는 한 때 백수였다가 이젠 예술과 대중의 소통 장벽을 없애는 일을 하면서도 대기업으로부터 사업 제의를 받는 있는 1인 소셜 벤처 기업가가 됐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보미씨에게 이러한 봄날이 오기까지 겨울은 길었다. 3수까지 해가며 1998년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했지만, 그가 느낀 건 무기력감이었다. 보미씨는 "홍대 가면 막연히 잘 풀릴 줄 알았다, 선후배들 보면 어디서 뭘 하고 먹고 사는지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학교 다니면서 미술학원 강사를 하던 그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2003년 졸업 후 한 디자인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림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싶다는 꿈은 마음 한편에 남겨놓았다.

보미씨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2004년 봄, 그의 작품 전시 때다. 한 인터넷 쇼핑몰 상품기획자가 그에게 찾아와 "그림이 예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팔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미씨는 인터넷이 예술-대중의 소통 창구임을 직감했고, 잃을 게 없으니 '올인'하자고 결심했다. 그해 6월 '봄봄'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작품은 좋은데, 유명하지 않아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이지 못하는 작가가 많다. 이들 작가 30여명의 작품 100여점을 모아 2005년 7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2년간 작품 10개를 파는 데 그쳤다. 그 뒤에는 인터넷 쇼핑몰의 미술품 카테고리가 아예 사라졌다. 보미씨는 "비싼 작품은 300만원 정도였다, 가격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며 "그림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들이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기 위해 2006년 8월 미술 커뮤니티 사이트를 열었고, 같은 해 12월 카페를 빌려 관객 50명 앞에서 '다정한 그림 이야기'라는 이름의 퓨전 미술 공연도 진행했다. 보미씨는 "주제에 걸맞은 그림을 고른 다음, 음악과 함께 소개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꼈고, 미술과 가까워졌다"고 전했다.

행사는 뜻 깊었지만, 돈을 벌 수 없으니 궁핍한 생활이 이어졌다. 2007년 7월 함께 일하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돈은 없으니, 자연스레 백수가 됐다. 한 달 10만원으로 생활했다. 그는 "매일 집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꾀죄죄하게 생활했다, 세상을 등지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노력하는 사이 기회는 온다... 벽걸이TV 디자인 제안받다

당시 보미씨는 작가들의 그림을 싸이월드 스킨이라는 디지털 콘텐츠로 판매한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중들에게는 예술작품을 쉽게 접하게 하고, 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익은 쉽게 창출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2007년 10월 서울 압구정동의 한 상업 화랑에 큐레이터로 들어갔다. 당시 미술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보미씨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보미씨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그림을 사는지 알게 됐다, 감을 익혔다"고 전했다. 또한 투자 위주의 미술 시장에서 순수 미술 감상을 추구하는 보미씨의 미술 공연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자신감을 얻게 된 그는 2008년 6월 화랑을 나와 다시 1인 기업가의 길을 걸었다. 싸이월드 스킨이 인기를 끌게 돼 한 달 매출이 3000만원을 넘기도 했다. 또한 작가들의 작품을 캔버스에 프린팅해 적절한 가격에 팔자 반응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삼성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벽걸이TV에 디지털 아트 콘텐츠를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TV를 액자화해서 TV가 휴면일 때 화면에 그림이 나오도록 한다는 기획이었다. 사실 나도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프로젝트가 연기됐지만, 정말 삼성에서 연락이 와 깜짝 놀랐다. 꿈이 실현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보미씨의 꿈은 크다. 그는 "10년 후에는 재능 있는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미술 치료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보미씨에게 마지막으로 무기력한 20대를 벗어나게 된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래는 그의 답이다.

"사회가 바뀐다고 해도, 뚫고 나가야 하는 건 결국 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짱이 있어야 하고 잘 될 거라고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래야 잘 안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사이 기회가 온다."
덧붙이는 글 봄봄 홈페이지(http://www.vomvom.net)나 봄봄에서 운영하는 미술 커뮤니티(http://Art-vomvom.cyworld.com)를 방문하면, 봄봄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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