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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땅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용산 참사 100일 ⑤] 철거 직전의 아르헨티나 '빈민촌', 비샤31

등록|2009.05.03 19:21 수정|2009.05.03 19:21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29일로 100일이다. 철거민 5명 등 모두 6명이 숨지는 참변이었지만 경찰은 아무런 과잉진압 의 책임도 지지 않았고, 철거민들만 구속됐다. 용산참사 100일에 즈음해 한국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철거촌 비샤31을 취재했다. [편집자말]

▲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중인 주민들. ⓒ bajandolineas.com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마르 델 쁠다타 시. 이곳에서 지난 4월 17일 작은 소요가 발생했다. 무장한 경찰들이 말을 타고 경찰견까지 동원해 빈민촌 강제 철거에 나선 것이다. 철거 강행에 항의하는 주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들이 가스를 분사하고, (비록 고무탄환을 사용하긴 했지만) 주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모습이 현지 언론에 보도됐다.

최근 아르헨티나 정부가 '도시 빈민촌 철거'를 본격화하면서 곳곳에서 마찰이 벌어지고 있다. 빈민촌 주민들이 강제로 쫓겨나고 집이 허물어지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발생하자 "다시 군사 독재 시기로 돌아온 것 같다"며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진행 중인 도시 빈민촌 철거 논쟁의 중심에 있는 곳은 '비샤31'(Villa31) 지역이다. 이곳은 마을이 형성된 이래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철거논쟁이 이어져왔다.

시 정부에 끈질기게 저항하며 버텨온 주민들은 시위대를 결성했고, 지난 해 11월 19일, 고속도로를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빈민촌 철거를 계획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 마우리시오 마크리를 비난하고, "낙후된 마을의 정비" "시설 정비를 위한 지원" 등을 요구하며 8시간 이상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같은 달 23일, 시정부는 일부 주민들만이 합의한 도시화 계획을 발표했다. 시정부는 이를 '도시화(Urbanización)'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주민들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Villa'=빈민촌

스페인어로 '비야'(Villa)는 '작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곳 아르헨티나에서 'Villa'라고 하면 '도시 빈민가'라는 의미가 강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도시외곽에는 빈곤층과 노동자들로 이뤄진 빈민촌이 수십 곳에 달한다. 볼리비아, 페루, 파라과이 등 주변 국가에서 찾아 든 이민자들이 도시 속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도시 빈민촌으로 향하면서 빈민촌의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계속해서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탓에 이 마을 주민들은 불법으로 건물을 증축하고 있다. 제대로 된 설계도 없이 얼기설기 3층, 4층으로 올려 지은 주택들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지난 1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정부는 '비샤31' 지역으로 새로운 (불법건축물을 짓기 위해) 건축자재를 싣고 들어가는 트럭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누더기처럼 건축된 건물들의 위험 속에 주민들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니다.

비샤 31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면 궁금증은 바로 풀린다. 전국에서 가장 큰 버스 터미널과 가장 큰 기차역이 있는 곳,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땅값이 높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도심 한 가운데의 금싸라기 땅에 그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 무너지기 직전의 비샤31 지역 내에 있는 건물. ⓒ 이주영


가장 비싼 땅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빈민촌의 시작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1940년대, 경기 불황으로 타격을 입은 일부 시민들과 유럽에서 이주해온 철도, 항만 노동자들이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빈민촌(Villa)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인구수는 급속하게 늘어났고, 1950년대에는 6만 명으로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군사독재 시기였던 1979년, 정부는 빈민촌을 강제로 철거하기 시작했다. 군용트럭과 무력을 동원한 철거로 주민들은 도시의 경계선까지 쫓겨났고,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추방됐다. 신부들의 노력으로 46가구(180~200명)가 거주할 수 있는 허가를 얻었지만, 철거 전의 인구수가 6만 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거의 대부분의 주민들이 쫓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후 1984년, 아르헨티나에서도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이곳 비샤31 지역으로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인구수는 주변에 새로 형성된 마을을 모두 포함해 7만 명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샤 31 철거 문제는 최근에 갑자기 불거진 일은 아니다. 빈민촌이 생긴 이래 새로운 시장이 들어설 때마다 비샤31 철거 문제는 언제나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주제였다. 현 시장인 마크리도 당선 후부터 도심 빈민촌 철거를 적극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 비샤31 건물 ⓒ 이주영


시 정부는 빈민촌 대부분이 현재 국가 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 부처가 먼저 나서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부는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노동단체와 NGO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군사 정권 시기에 겪었던 상처들을 기억하며 인권 문제를 매우 민감하게 여기기 때문에 인권을 탄압한다는 오명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정부가 택한 보다 '부드러운' 방식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지난 4월 16일 철거가 시작된 '비샤 솔다티'의 경우, 시정부는 500여 가구의 주민들에게 가구당 많게는 2500페소(약 1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샤31의 경우, 7만 명의 주민들에게 보조금을 모두 지급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조직력을 갖춘 주민들이 정치권력과 맞서고 있기 때문에 강제적인 철거 또한 힘든 상황이다.     

반복된 '철거' 논쟁 ... 더 열악해지는 빈민촌

정치인들과 여러 기관들이 논쟁하고 있는 사이, 주민들은 물도 전기도 부족한 마을에서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지척에 강을 두고 있는 그들이지만 이 곳 빈민촌에서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다. 낮 동안 물탱크를 실은 차가 마을로 들어오면, 주민들은 물통과 세숫대야를 들고 길게 줄을 선다. 하지만 그나마도 모두에게 돌아갈 정도도 안 된다. 앞 사람이 물을 많이 받아 가면 뒷사람은 더 이상 받을 물이 없다. 이웃 간에 살인까지 날 정도로 싸움이 일어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은 오래돼 누렇게 변한 물을 마시고 배탈이 나기도 한다.

비샤31에서 8년 째 살고 있는 호르헤 씨는 자신의 두 딸이 모두 마약중독자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약을 끊게 하기 위해 부엌칼로 딸들을 위협해 본 적도 있다. 빈민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아이들 교육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시위 때 마다 수도, 전기 등의 최소한의 기반시설과 병원,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과 운동장을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줄 것을 시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요구가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지난 8년간 거의 두 배 가까이 인구가 늘어났고, 문제를 해결할 틈도 없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시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선뜻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도 부분적인 강제철거로 주민들에게 고통만 더해주고 있을 뿐이다.

▲ 정부가 대학 건축과를 통해 설계한 도시화 프로젝트.(Fuente, H.Camara de Diputados de la Nacion 제공) ⓒ .


화려한 네온사인 꿈꾸는 시정부의 '도시화'

그렇다면 시정부는 이 지역을 어떻게 바꾸려는 것일까.

시 정부는 그동안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이 지역의 도시화를 구체적으로 그려왔다. 200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건축과에서 도시화 계획을 맡아 도로와 시설 설비, 이를 위한 법 정비 등을 하나둘씩 진행 중이다.

정부기관이 만장일치 했다는 이번 도시화 계획은 현재 불법 건축물로 겹겹이 들어찬 이 지역이 넓은 도로와 녹지, 공원, 체육시설 등으로 말끔하게 변모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7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이렇게 정리 된 마을 안에서 살아가게 될 지는 의문이다. 현재 철거가 완료된 다른 빈민촌의 주민들처럼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비샤31에 앞서 '재개발' 된 푸에르토 마데로의 사례에 비춰보면, 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다. 낡은 컨테이너 창고들과 항만시설들이 가득했던 푸에르토 마데로는 90년대 초반부터 재개발을 시작해 고급 오피스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화려한 동네로 탈바꿈했다. 이 곳의 오피스텔들은 현재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역이 되었다. 강에서 퍼 올린 모래로 메워 만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땅이 지금은 도시 전체에서 가장 땅 값이 비싼 지역으로 변모한 것이다.

▲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푸에르토 마데로의 현재 모습. ⓒ 이주영


이곳에 위치한 별 5개짜리 호텔들과 외국계 회사 건물들의 13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는 빈민촌의 풍경은 쾌적하고 말끔한 도시미관을 꿈꾸는 이들에게 눈엣가시와도 같을 것이다. 또한 푸에르토 마데로를 최신식 개발지역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외국자본들과 부동산업자들은 이 작지 않은 빈민촌 땅을 보면서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린 단지 좀 더 나은 환경을 원할 뿐인데"

시정부는 도시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로 지난 3월, 500명의 조사관을 파견해 이 지역의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 빈민촌 동네 벽에 붙은 프로젝트 홍보문. 시정부와 합의한 주민대표들의 집 앞에만 붙어 있다. ⓒ 이주영

이 과정에서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물밑작업도 함께 진행됐다. '얼마의 보상금을 받으면 이사를 할 것인지'. 현지 언론사 <클라린>은 "현찰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이사를 가겠다"는 주민들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빈민촌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인 '빠라다 데 라 디뿌따다'의 미카엘라는 "비샤31의 주민들 중에서도 사업자, 주민 대표 등 정치권과 연결되어 힘이 있고 재력이 있는 사람들과 세입자들처럼 경제적, 정치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다"며 "모든 주민들이 도시화를 원하는 건 아니다, 단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오늘도 비샤31 철거 반대 시위는 계속 되고 있다. 그 반대편에서는 시 정부가 원하는 도시화가 꾸준히 진행 중이다. 도시화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을 외면하며 화려하고 말끔한 도시의 풍경을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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