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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전봇대'를 아시는 분 있습니까?

[인천 골목길 이야기 38] 뒤떨어진 판자촌? 또는 사람내음 간직한 곳

등록|2009.04.28 09:35 수정|2009.05.01 01:36
나무전봇대를 아시나요? 나무전봇대를 껴안아 본 적 있으신가요? 나무전봇대에 박힌 디딤대를 밟고 올라가 본 적 있나요? 나무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하나, 두울, 세엣, 네엣, ……' 하고 열까지 세면서 술래잡기를 해 보거나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해 보셨습니까? 나무전봇대에서 구슬을 떨어뜨려 구슬치기를 해 보셨는가요?

이제 우리 나라 어디를 가든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나무전봇대입니다. 그러나 오래된 도심지를 간직한 몇 군데 도심지 한켠에는 나무전봇대가 꿋꿋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나무전봇대를 쓰다듬으면서 옛생각에 잠긴다기보다 오늘생각에 푹 빠지면서, 우리가 이루어 가려는 개발과 발전을 돌아봅니다.

▲ 인천 동구 송림4동은 인천에서도 이름난 ‘달동네’입니다. 그러나 이 달동네는 거의 모두 헐리고 ‘아파트 재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재개발을 앞두고는 있어도 아직까지 꿋꿋이 살아가는 분들이 있어, 동네에 새숨을 불어넣습니다. ⓒ 최종규


▲ 자전거를 타고 골목마실을 하면서 가슴은 끝없이 부풉니다. 제 눈에는 그지없이 곱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헐려 사라진 집자리를 일구어 텃밭으로 바꾸어 놓는 골목사람들 손길이 사랑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 이제 이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진 나무전봇대를, 곧 사라질 달동네에서 만납니다. 그러나 나무전봇대는, 인천 옛도심지에서는 재개발 대상지인 달동네에서만 남아 있지는 않아요. ⓒ 최종규


▲ 요즈음 아이들한테 나무전봇대는 꿈도 꾸어 보지 못한 시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나무전봇대 앞에서 술래가 되어 온몸을 기대고 하나 둘 셋 하고 세면서 술래가 되었던 일을 떠올리지만. ⓒ 최종규


▲ 인천은 모든 달동네를 없애고 아파트로 바꾸는 재개발을 2014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이루어내려고 합니다. 그래, 이 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무전봇대를 모두 없애는 일도 ‘좋은 개발’이 될까요? ⓒ 최종규


▲ 예배당 벽을 따라 담쟁이가 자라고, 골목집 몇 곳에 통신줄을 대는 나무전봇대가 무척 오랜 세월을 지켜 주고 있는 가운데 골목동네 텃밭이 알뜰히 일구어집니다. ⓒ 최종규


▲ 나무전봇대는 얕은 산기슭 달동네에 옹기종기 모인 집들마다 통신을 이어 주는 고마운 벗님이었습니다. ⓒ 최종규


▲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다 할 만한 곳, 그러니까 골목집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만 오가는 자리에는 나무전봇대가 남아 있습니다. ⓒ 최종규


▲ 고즈넉하게 꾸려 나가는 오랜 살림집 깃든 골목 안쪽에는 어김없이 나무전봇대가 하나쯤 남아 있습니다. 이 나무전봇대를 올려다보고 두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이만한 ‘살아 있는 문화재’가 우리 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 최종규


▲ 자동차 들어서지 못하고, 오로지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야 하는 데에 몇 군데 살짝 남게 된 나무전봇대입니다. 보기에 못마땅하고, 세계화시대요 최첨단시대에 무슨 ‘나무전봇대’이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무로 짠 책꽂이가 한결 좋고, 나무로 만든 책상이 더욱 보드라우며, 나무로 깎은 수저가 더욱 구수하고, 나무로 마련한 옷장이며 걸상이며 훨씬 살갑다고 느끼다 보니, 몸통이 뎅겅 잘려 동그랗게 자국만 남은 나무전봇대 조 조그마한 모습을 보면서도 애틋해서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게 됩니다. ⓒ 최종규


▲ 목아지 잘린 나무전봇대 자국을 보면서 슬프지는 않습니다. 그저 반갑고 고맙고 미안할 뿐입니다. 나무전봇대가 그동안 베풀어 준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이제는 나무전봇대 뎅겅 잘린 자취뿐 아니라 이제까지 가까스로 남아 있던 모든 골목집 자취가 사라질 터이기 때문에, 눈물이 나올 겨를이란 없습니다. ⓒ 최종규


▲ 우리 나라 감리교회 역사를 쓰고 있는 '내리교회'가 올려다보이는 내동 골목길 한켠에도 나무 전봇대 하나가 수많은 골목집들한테 통신줄을 나누어 주면서 튼튼하고 씩씩하게 제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알아보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을지라도. ⓒ 최종규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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