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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가고 또 진강산에 가?"

강화 진강산에서 봄을 맞이하고, 봄을 안고 오다

등록|2009.04.29 15:34 수정|2009.04.30 10:15

▲ 해발 433m의 강화도 진강산 정상. 봄에 오르면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 전갑남


강화도에 있는 산들은 400m 남짓 나지막하다. 민족의 명산이라는 강화도 최고봉 마니산을 비롯하여 고려산, 진강산, 혈구산, 봉천산, 별립산 등 고만고만한 산들이 많다. 두세 시간 가볍게 산행을 즐길 수 있어 사철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두 주째 찾아가는 진강산

나는 주말이면 산에 오른다. 우리 이웃들과 함께 주로 내가 사는 강화도 산을 더듬는다. 간단히 배낭을 꾸려 운동 삼아 오를 수 있는 산들이 가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요번 주는 이 산, 다음 주는 저산!

아내가 일찍부터 간식을 준비한다. 뭘 준비하려고 부산을 떠나? 텃밭에 나가 부추와 머위 잎을 베다 부침개에다 나물을 무쳐낸다. 막걸리 안주로 안성맞춤일 것 같다. 오렌지 몇 개와 음료수로는 배즙을 챙겨 배낭을 꾸린다.

"당신, 막걸리는 한 병만! 산에서 어르신들 약주 많이 드시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았어. 정상에서 한 병, 내려와서 한 병! 그러면 되지?"

아내는 웃음으로 대신한다. 자기도 따라가고 싶지만, 바쁜 일 때문에 따라가지 못한 게 아쉬운 모양이다. 행선지를 묻는다.

"당신, 오늘은 어디 산이야?"
"진강산에 가려고."
"지난 주에 가지 않았어요? 같은 산을 무슨 재미로 또 올라?"
"산은 코스를 달리하면 맛이 다르지. 저번엔 봄을 맞이했고, 이번엔 봄을 안고!"
"무슨 말이 그렇게 어려워요!"
"갔다 와서 말해줄게!"

아내는 산에 갔다 와서 풀어 놓을 이야기보따리를 기대한다. 간식을 챙겨 배낭을 꾸려주는 아내가 고맙다.

호젓한 산행 길, 즐거움이 많다!

옆집아저씨, 새집할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지난 주 진강산을 찾은 일행들이다. 칠순, 팔순을 넘기신 어르신들이지만 산에 오르는 일에는 열일 제쳐놓는다.

이번 진강산 산행에서는 봄을 담아오자! 우리는 차에 오르자마자 푸짐한 말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지난번 삼흥리에서 오르는 코스는 힘들었어! 똑같은 코스는 아니겠지?"
"요번은 가릉쪽으로 가보자구! 그곳엔 보물이 있잖아?"
"가릉은 보물이 아니라 사적지인데요."
"내참, 문화재 말구 산나물의 보배, 엄나무 군락지가 있잖아!"
"그렇지요. 지금쯤 새순이 올라왔겠죠?"
"글쎄, 사람 손이 안탔어야 하는데!"

요번에는 엄나무순을 딸 수 있으려나? 흔히 개두릅이라 불리는 엄나무순은 산나물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약간 쓴맛이 나지만, 그 쓴맛이 별미다. 데쳐놓으면 야들야들한 맛이 좋다.

사실, 지난 주는 엄나무순을 찾아 나서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산에 있는 개두릅을 따려면 두 가지가 맞아떨어져야한다. 하나는 새순이 나오는 시기를 맞춰야하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야한다. 부지런한 사람이 새순을 노려 먼저 지나가면 허탕을 치게 되는 것이다.

▲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 있는 가릉(사적 제370호)이다. 진강산 들머리에 위치한다. ⓒ 전갑남


진강산 들머리인 가릉(사적 제370호)에 도착했다. 가릉은 고려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능이다. 가릉 위쪽에 새로 복원된 석실분도 눈에 띈다. 석실분의 주인공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규모나 출토 유물로 보아 왕실과 관련된 인물로 추정된다고 한다.

흙길을 밟고 오르는 산행길이 호젓해서 좋다. 가끔 들리는 장끼와 산비둘기 울어대는 소리가 적막한 분위기를 깬다. 발길을 바쁘게 옮기신 옆집아저씨가 엄나무 군락지를 발견하고 미소를 띤다.

▲ 산나물 중 으뜸이라는 엄나무순. 개두릅이라고도 하는데 그 맛이 참 좋다. ⓒ 전갑남


"야! 지금이 딱이네! 사람이 거쳐 가기는 했어도 우리 차지는 남겼구먼! 우리도 보물을 따봅시다. 가시 조심하고!"

작년 이맘 때에는 시기를 놓쳐 순이 쇠어버렸다. 막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엄나무 새순을 보니 너무 반갑다.

엄나무 앙상한 가지에 나있는 뾰족한 가시가 무섭다. 나무는 험상궂게 생겼지만 새순은 정말 보드랍다. 나무 끝가지에 달린 순이 통통하다. 엄나무순은 사람에게 허용하는 기간이 짧다. 순이 자라 이파리를 널찍하게 펼치면 쓴 맛을 만들어 먹을 수 없게 한다.

새집할아버지께서 산길로 빠져나오시며 길을 재촉한다.

"먹을 만큼 땄지? 너무 욕심 부릴 것 없다구! 두릅도 가지를 치고, 그래야 내년에도 딸 수 있을 거 아냐!"

셋이서 딴 것을 합쳐놓으니 꽤 많은 양이다. 자연이 준 선물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물 보자기를 배낭에 쑤셔 넣고 우리는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할아버지가 추억을 더듬으며 엄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엄나무는 두껍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악귀를 쫒아낸다고 믿었다. 그래서 집안에 심기도 하고, 가지를 베다 들보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어린애들이 피부병이 생기면 가지를 삶아서 씻기곤 했다. 그러고 보면 생긴 것은 무섭게 생겼어도 친근감이 드는 나무다.

닭백숙을 할 때 마른 엄나무 가지를 넣어 끓이면 잡 냄새도 없어지고 육질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쓸모가 참 많은 엄나무이다.

진강산엔 야생화도 많고…

▲ 진강산에 오르는 호젓한 산길이다. 흙길을 밟고 산행을 즐기는 재미가 참 좋다. ⓒ 전갑남


조금 오르니 산길이 가팔라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야생화를 찾는 옆집아저씨가 말을 꺼내신다.

"저번엔 야생화를 많이 보았는데, 흔한 제비꽃도 보이지 않네!"

지난 주 삼흥리에서 오른 능선을 따라 오를 때 그 코스에선 많은 야생화가 눈에 띄었다. 수수하면서 살짝 숨어 피는 야생화를 만나 산행이 심심하지 않았다.

제비꽃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제비꽃은 산 아래서부터 산꼭대기까지 고르게 분포되었다. 보라색, 흰색, 노랑색 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여러 제비꽃은 꽃 모양은 비슷하지만 꽃 색깔도 다르고 잎도 달랐다.

군데군데 핀 보라색의 각시붓꽃 자태도 멋졌다. 왜 각시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아마 낙엽을 뚫고 살포시 고개를 내민 모습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각시를 연상하지 않았나 싶다.

따뜻한 분위기의 양지꽃, 그리고 밤하늘에 반짝 반짝 빛이 날 것 같은 개별꽃을 만나 반가웠다. 그리고 흐드러지게 핀 산벚과 조팝나무의 흰 꽃이 봄 산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 진강산에 막 피어나는 신록이 꽃보다 아름답다. ⓒ 전갑남


이번 코스에서 야생화는 많이 볼 수 없지만, 신록의 푸름이 지난 주와 확연히 다르다. 새롭게 피어난 신록이 꽃처럼 아름답다. 떡깔나무는 이제 새 눈을 뜨고, 신갈나무는 널찍한 잎을 펼쳤다. 신록에서 뿜어 나오는 신선한 공기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준다.

우리는 산에 오르며 도마뱀도 보고, 개울에서 가재도 찾았다. 예전 많이 보던 동물이지만 반갑기 그지없다.

정상엔 산, 바다, 들판이 한눈이다!

▲ 진강산에서 바라본 산하. 산, 마을, 들판, 바다가 한눈이다. ⓒ 전갑남


▲ 진강산에는 산나물이 많다. 마을 주민들이 산나물을 채취하고 있다. ⓒ 전갑남


산 정상에 다다르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앞치마를 두르고 나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산행에서 사람은 처음 만난다.

"어떤 나물을 땄지요?"
"여러 가지에요. 혼잎나무순, 오이나무순, 취나물, 곱새, 고사리…."
"우린 개두릅밖에 못 땄는데."
"우리야 산 밑 동네에 사니까 나물 있는 데를 잘 찾지, 아무나 찾나요?"

아주머니가 앞치마를 펼쳐 보이며 나물을 하나하나 가르쳐준다. 오이나무순을 건네주며 맛을 보란다. 이름처럼 오이 맛이 난다.

가져온 음식을 서로 나눠먹으니 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정겹다.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443m의 진강산 표지석이 보인다. 산 아래 펼쳐진 신록이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산, 바다, 들판이 모두 한눈이다.

할아버지는 산허리에 펼쳐진 신록을 한참을 내려다 보다 발길을 돌리신다.

"두 주 연속으로 진강산을 찾을 만했어! 이제 내려가자구! 두릅나물 무쳐 막걸리 한 잔 더해야지?"

진강산의 자연

ⓒ 전갑남

덧붙이는 글 지난 19일(토)과 25일(일)에 두 번에 걸쳐 진강산 산행을 즐겼습니다.

- 진강산 오르는 길

1. 양도면 삼흥리 달빛동화마을을 들머리로 하여 오르는 코스(2.6km)
2. 양도면 능내리 가릉을 거쳐 오르는 코스(1.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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