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계는 로비도, 스폰서도 없다"
[탁현민의 이매진- 개그맨 박준형] "시사코미디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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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준은 29일 오후 <오마이TV>로 약 1시간 동안 생중계된 '탁현민의 이매진'에 출연해 개그맨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까지 총 6차례 진행된 '탁현민의 이매진' 출연진 중 개그맨은 그가 처음이다. ⓒ 박정호
▲ 29일 오후 오마이TV를 통해 생방송 된 '탁현민의 이매진'에 출연한 개그맨 박준형. ⓒ 권우성
'갈갈이' 개그맨 박준형이 알려준 개그의 한 비법이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한 이야기다. 욕을 해서라도 웃기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괜히 남들 한 번 웃겨보겠다고 바지라도 벗는 날엔 성추행 범으로 잡혀 경찰서로 직행하기 쉽다. 그가 만들어낸 유행어대로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면 곤란한" 이야기다.
한 시절 KBS <개그콘서트>를 주름잡으며 많은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줬고, 지금은 현역으로 뛰는 동시에 후배 양성에 공을 들이는 '투 잡' 개그맨 박준형. 그의 저 말에는 한국에서 개그맨으로 살아가는 이의 고민이 담겨 있다.
박준형은 29일 오후 <오마이TV>로 약 1시간 동안 생중계된 '탁현민의 이매진'에 출연해 개그맨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까지 총 6차례 진행된 '탁현민의 이매진' 출연진 중 개그맨은 그가 처음이다.
"다른 분야보다 개그계가 많은 제약 받는다... 종교, 절대로 건드릴 수 없다""
어느덧 13년 차에 접어든 개그맨 박준형에게 대한민국은 적어도 코미디와 웃음이 매우 발달된 나라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웃음도 많고 여러 문화 속에 해학도 많이 녹아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활동하는 개그맨은 마냥 행복할까? 물론 박준형은 "아주 행복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
"조금 가슴이 아픈 건, 음악 등 다른 분야보다 개그계가 많은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다. 우린 (개그 소재로) 종교를 절대로 건드릴 수 없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일 난다. 뿐만 아니라, 성과 욕설 등에 대해서도 제약이 엄청 강하다. 또 우리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뭘 그렇게 선정적으로 하려 하느냐'고 한다. 웃기려고 그러는 건데, 그냥 봐 줄 수는 없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사실 수긍 가는 점이 적지 않다. 영화, 음악, 드라마, 개그 중에서 가장 구설수에 많이 오르는 건 사실 개그 분야다. 외모를 개그 소재로 사용하면 "외모를 비하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철가방'을 소재로 다루면 "특정 직업을 희화화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다.
확실한 그림(?)dl 그려지는 성적인 은유의 가사와 초등학교 자녀와 함께 보기엔 다소 민망한 야한 춤이 등장해도 별다른 논란이 없는 음악계와 비교하면 박준형의 말이 괜한 푸념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개그계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 걸까. 혹시 사람을 웃기는 개그맨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는 아닐까?
박준형은 점잖게 "개그계가 다른 분야에 비해 위상이 낮을 결과일 수도 있고, 워낙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개그계의 폭력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개그계의 확고한 위계질서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 혹은 '입방아'에 올랐다. 다른 분야에 비해 개그계의 위계질서가 강한 이유에 대해 박준형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개그맨들은 한 곳에 모여 있는 시간이 많다. 가수들은 모여 있을 필요가 없지 않나. 하지만 개그맨은 희극인실로 다 모인다. 그렇게 한곳에 모여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이와 경력 순으로 위계질서가 선다. 그리고 다른 분야에 비해 개그계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아이디어를 주는 등 이런저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웃기는 것보다 웃기는 일을 만드는 것"
▲ 29일 오후 오마이TV를 통해 생방송 된 '탁현민의 이매진'에 출연한 개그맨 박준형. ⓒ 권우성
박준형은 2003년 KBS 연예대상 대상을 차지했다. 코미디 대상도 아니고, 전체에서 '짱'을 먹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사람을 웃기는 천부적인 능력과 자질 있다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 보면 박준형이 제일 잘하는 건 사람을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웬걸. 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웃기는 것보다 웃기는 일을 만드는 것이다. 프로듀싱 역할이 내게 맡는 것 같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분양하고, 함께 내용을 짜고. 그런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껴진다."
정말? 의문이 든다. 개그맨들은 5분도 안 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1주일 내내 머리를 싸맨다는 이야기가 일반들에게는 '정설'로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준형은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겠어요?' 하는데, 사실 그런 것들에 대한 부담감은 거의 없다, 아이디어 부담감이 있으면 개그맨을 할 수 없다"며 "우리들은 프로그램을 짜는 일에 단련이 된 사람이다, 물론 그걸 못해서 일찍 개그맨 생활을 정리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말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까? 어쨌든 우리는 잘 믿기지 않지만 박준형은 웃기는 것보다 웃기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에 더 즐거움을 느끼는 개그맨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는 권력을 풍자하는 제대로 된 시사코미디 프로그램은 없는 것일까. 박준형은 솔직하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가령 해머를 동원해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실 문을 부순 걸 풍자한다고 치자. 그러면 한쪽에서 '너희들이 문을 부숴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아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대로 회의실 안에서 소화기 쏜 사람을 풍자하면 또 반대의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결국 탁현민 한양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교수가 정리했다. 개그맨들이 못 하거나, 혹은 하고 싶지 않아서 시사코미디가 없는 게 아니라,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가 시사코미디의 설자리를 없게 하는 것 같다고.
'고 장자연 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연예계의 부조리와 어두운 한 단면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본의 아니게 "연예계는 원래 그래"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박준형은 당당하게 개그계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 탁 교수의 말대로 "실력으로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는 곳"이 바로 개그계라는 것이다.
"개그계에는 로비가 없다. 내가 이제 13년차 들어가는데 절대 없다. 왜냐면 로비를 해서 무대에 오른다고 해도 못 웃기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평가받는 곳이 바로 개그계다. 누군가 나보다 더 인기가 많으면 그 사람이 더 웃기기 때문이다. 조작도 없고, 스폰서도 필요 없는 곳이다. 너무 좋다."
박준형의 꿈? "개그 전용 5층 건물에서 표 팔고, 주차관리 하고 싶다"
▲ ⓒ 권우성
박준형의 꿈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 '펀(Fun)'한 건물 하나를 마련하는 것이다. 부동산 임대업 하려는 게 아니다.
"한 5층쯤 하는 건물을 마련해 1층에는 코미디 전용극장, 2층은 희극용 극장, 3층은 마임이나 마술 등을 위한 극장을 만들고 싶다. 그곳에서 개그맨들이 편안하게 개그쇼를 하고, 나는 매표소에서 표나 팔고 주차관리 등을 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내 노년은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탁 교수의 말대로 어느 돈 많은 독지가가 박준형에게 투자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코미디 전용극장에서 갈고닦은 개그맨들은 TV 등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을 웃겨줄 테니까. 개그맨은 웃겨서 좋고, 사람들은 웃어서 좋고.
웃을 일이 자꾸만 적어지는 세상살이, 이거야말로 흔히 말하는 확실한 '일타쌍피' 아니겠나. 돈 좀 갖고 계신 분들, 한번 고민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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