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장애 가진 자식 수발, 애틋한 '모정'

'연골무형성증' 난치성 희귀병 앓아, 컴퓨터실 이동 불편 호소

등록|2009.04.30 16:02 수정|2009.04.30 16:02

자식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한국천씨수술을 한 희귀성난치질환을 가진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현대판 신사임당 한국천씨. ⓒ 정상선




광주 광산구 소촌동 한국천씨, 하루에도 수차례 학교 방문 자식 돌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린자식을 학교까지 등하교시키고 학교 수업이 끝나는 쉬는 시간 틈틈이 학교를 찾아가는 열성적인 엄마가 있다. 왜 그래야만 할까? 궁금증이 몰려와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보았다.

집안에 들어서자 생활형편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 첫 인상에서 그간의 심적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왜 그렇게 학교를 가는지 이유를 물어보자, 처음에는 한사코 사양하다가 조심스레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녀가 말하는 사연인즉, 아들이 7살 때 종아리 수술을 두 번 하고 작년에 허벅지와 팔 부분에 수술을 한 뒤로 휠체어와 보조기구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움직이기도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대소변도 제대로 해결을 하지 못하는 아들을 돕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학교를 찾는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았다.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열일 제쳐두고라도 나선다는 남다른 애틋한 모정을 보이고 있는 한국천 주부(44세). 그녀는 현재 광산구 소촌동에서 어머니 앞으로 되어 있는 25평 서라아파트에 거주하는 1남2녀의 엄마다.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들 강산(10)이는 신체구조가 유난히 남달랐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유난히 크고 다리가 짧으며 손가락도 짧아 안타까워하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키가 자리지 않고 머리만 유난히 커지는 등 희귀성 난치질환인 '연골무형성증'이라는 병이었다는 것이다. 흔히 성장판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키가 크지 않은 난장이병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수술 전에 키가 110Cm미터도 채 안 되는 아이를 조금이나마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만들어 보려고 서울 고려대 병원에서 3번에 걸친 수술을 하게 되었단다. 앞으로도 2번의 수술이 남아 있어 걱정이지만 현재 110Cm 정도 되는 아이의 키가 150Cm까지도 자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단다.

"막상 수술을 하려고 하니 걱정도 되고 한 번 수술하는 데 없는 형편에 1000만원이라는 수술비가 문제가 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난치질환에 대한 복지지원이 잘되어 있어서 그나마 수술비에 대한 부담이 다소 줄어 수술을 할 수가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안도감이 느껴진다. 수술 당시 우체국 직원이었던 남편의 수입으로는 수술비가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본인 부담금이 20%밖에 안 되는 데다가 전에는 개인이 구입해야 했던 보조기구 등도 지원이 되어 수술비는 부담이 없다보니 다른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혜택들이 있어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 다행이라지만 예전에는 이러한 혜택들이 없어서 같은 병에 걸려 통증을 느끼고 활동에 불편을 느끼는 성인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수술을 하고 나니 다른 고민이 생기더라는 것. 바로 학교 등하교 문제와 학교에서 대소변을 해결하는 일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그래서 직접 발로 뛰기로 한 것.

그녀는 "막상 수술하고 나니 보조기구에 의지하고 휠체어를 타야 해 움직임이 자유스럽지 못하고 대소변을 가리는 데 많은 불편이 따라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고 해서 직접 학교에 데려다 주고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틈틈이 학교에 가서 아이를 돌보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몸이 불편한 아이는 급식도 하지 못하고 인근 재활원에서 물리치료를 하고 나면 집에 곧바로 데리고 온다. 그렇다 보니 하루에도 수차례에 걸쳐 학교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들이 컴퓨터를 하고 싶어 해서 2층에 있는 교실에서 3층 끝에 있는 컴퓨터실에 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휠체어로는 갈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데려다 주는데 애로사항이 많다" 고 토로한다.

그럼에도 아이는 항상 밝다. 그게 그녀에겐 위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술했던 병원에서 갈 때마다 신경써주고 잘 대해주는 게 위안이 되고 감사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굳이 학교에 갈 필요도 없이 학교 선생님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녀는 "학교 선생님이 대신 해주신다고도 했지만 내 자식으로 인해 굳이 선생님들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가 않아 나 혼자 고생하면 된다는 생각에 학교를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또다른 고민이 있단다. 우체국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을 한 뒤, 살고 있는 아파트도 건설업체 부도로 어려움에 처한 것이다. 남편은 최근 택시영업을 시작했는데, 역시나 수입이 좋지는 않다고 한다.

취재가 끝날 무렵, 아이가 학교에서 끝날 시간이 되어 학교에 가봐야 한다며 일어서서 나가는 한 아이 엄마의 뒷모습에서 자식을 향한 아름답고 애틋한 모정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취재하는 내내 강산이 엄마에게서 진정한 자식사랑을 진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식 생각에 눈물을 보이는 그녀에게 건강한 아들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