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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찻길을 달리니 메마른 사람이 되나?

[자전거와 함께 살기 1] 일산에서 파주로, 일산에서 구로로

등록|2009.05.01 17:27 수정|2009.05.01 17:27
(지난 몇 해에 걸쳐 자전거를 타고다닌 이야기를 곧 《자전거와 함께 살기》라는 책으로 내놓습니다. 아마 다음주에 책이 나올 텐데요, 책에 담을 글을 묶고 난 뒤부터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퍽 오랫동안 자전거를 못 타고 사느라 '자전거와 함께 살기'도 못하고, 이런 이야기도 못 썼습니다. 이제 아이가 아홉 달쯤 자라면서 조금은 느긋해졌고, 더욱이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자전거 손질' 공부를 하게 되어, 다시금 '자전거와 함께 살기' 이야기를 써 보자는 생각으로, 자전거로 우리 터전을 누비는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과 느끼는 생각을 나누면서, 자전거를 탈 때뿐 아니라 자전거를 타지 않을 때에도 우리 삶터와 사람을 좀더 깊이 돌아볼 수 있으면 좋으리라 꿈을 꿉니다. - 글쓴이 말)

▲ 자전거를 전철에 실을 때에는 '바퀴걸상' 그림이 그려진 자리에 싣습니다. 첫역이나 끝역에서 실을 때에는 자리가 널널하지만, 가운데쯤 있는 역에서 태우다 보면 꽉 차 있어서 좀 힘들곤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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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5월 18일 즈음부터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자전거 손질'을 함께하기로 했다. 내가 아이들한테 가르칠 자전거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는 나부터 잘 모른다. 모두 스무 번 즈음 함께하게 되는데, 스무 번에 걸쳐 나눌 자전거 이야기가 얼마나 될는지 또한 모르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전거 이야기라서 할 말이 없거나 함께할 이야기가 없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나 스스로 여태까지 즐겨 온 자전거가 무엇인지를 거리낌없이 보여주면 넉넉하지 않으랴 싶다. 서두르지 말고, 재촉하지 말며, 들뜨지 않는 가운데 차분하게 자리를 이어나가면 꼭 스무 차례에 걸맞는 이야기를 짤 수 있으리라 느낀다.

다만, 인천에서 파주를 오가는 길이란 만만하지 않다. 전철로 대화역까지 오간다 하여도 전철 시간만 해도 꽤 길다. 이럴 바에는 나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인천과 파주를 오가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어떤 길로 달릴 수 있을까? 길에 익숙해져야 하는 만큼, 어쨌든 달려 보면 될 테지. 먼저, 옆지기 식구들이 사는 일산 덕이동 집에서 달려 보자.

- 덕이동 로데오거리에서 길을 나선다. 킨텍스로 접어드는 길이 아닌 덕이초등학교 앞으로 지나는 길로 간다. 그러나 곧바로 오른돌이를 해야 하는 줄 잊고 그만 지나치는 바람에 신호를 기다리게 된다. 저 앞 신호등에서 건널까 하는 생각으로 우레탄 비슷하게 생긴 돌을 깔아 놓은 거님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이 길은 울퉁불퉁하다. 아마, 한 번 깔아 놓고서 손질해 준 적이 없을 테지. 깨진 자리, 튀는 자리, ……. 자동차가 사이사이 지나가도록 끊어진 자리는 턱이 높다. 이런 데에서는 자칫 미끄러지면서 크게 다칠 수 있다. 자전거길을 닦는 공사장 일꾼뿐 아니라 자전거길 설계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도심지 거님길을 달려 볼 노릇이다. 자전거길을 찻길에 함께 마련하지 않고 사람들 거님길에 마련하는 우리 정책이라 할 때에는, 거님길에 턱이 있을 때 자전거가 얼마나 움찔하게 되는가를 몸소 느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느낄 때 바퀴걸상이나 아기수레를 밀 때 얼마나 안 좋은가도 알게 될 테지.

길그림을 보았을 때에는 길 따라 곧게 가면서 길알림판에 따라 두 번쯤 왼돌이를 하면 파주에 닿는다고 되어 있다. 몇 번 지방도로인지 잘 모르겠으나, 일산을 벗어나 파주로 접어들 때부터 시골길은 울퉁불퉁하고, 차 흐름은 거의 없다. 이곳 논밭을 갈아엎고 아파트로 바꾸는 공사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길이 엉망이 된 듯. 더구나 공사터를 오가는 큰차가 흙먼지를 많이 낸다 하여 틈틈이 길바닥에 물을 뿌려 놓고 있다. 자동차한테는 아무 걱정이 없을 터이나, 자전거한테는 길바닥 물뿌림은 아주 끔찍하다.

▲ 다른 차나 빌딩이 아닌 나무와 논밭을 바라보는 시골길은 언제나 즐거운 길입니다. 길섶이 거의 없어 아슬아슬하지만, 오가는 차가 적으니 그리 힘든 길은 아닙니다. ⓒ 최종규


- 일산 시내에서 빠져나온 지 몇 분 되지 않았으나, 논밭과 야산을 바라보며 시골길을 달리는 느낌은 아주 시원하다. 이 좋은 길은 자전거로도 좋지만, 두 다리로 걸어 움직인다면 더 좋으리라.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가용으로만 움직인다.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그곳 교사들 또한 거의 모두 자가용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파주출판문화도시에 가까워지자 길은 넓어지고 곧게 뻗는다. 아주 재미없는 길이다. 우리 나라를 자전거로 돌 때에도 느꼈는데, 이렇게 곧게 뻗은 길처럼 지루하며 고단한 길도 없다. 곧게 뻗은 길보다 구불구불한 길이 즐겁고 호젓하며 재미가 있다. 오르내리막이 이어지는 길은 몸은 고단하나 마음은 흐뭇하다. 굽은길을 곧은길로 편다고 하여, 오르내리막을 없애고 산을 깎는다 하여, 우리가 줄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뿐더러, 그만큼 시간을 아낀다고 해 보아야 알뜰살뜰 쓰는 일은 못 보았다.

▲ 곧게 쭉 뻗어 시원하다 말할는지 모르나, 이런 곧은 길일수록 지루한 길이기도 합니다. ⓒ 최종규


- 길벗어린이 출판사를 찾으면 바로 옆에 있다고 하는데, 길벗어린이 출판사를 찾기 너무 어렵다. 이 커다란 파주출판문화도시 어디에도 마땅한 길알림판은 서 있지 않다. 관광안내소 같은 곳도 없다. 길가에 사람이라도 있어야 물어 보기라도 하지. 이채쇼핑몰이라는 데 앞에 길알림판이 서 있으나 길벗어린이 자리는 나와 있지 않다. 보아 하니 처음 세워 놓은 다음에 새로 고쳐 놓지 않은 듯하다.

파주출판문화도시를 두 바퀴 반을 빙 돌고 대안학교 사무실에 두 번 전화를 한 끝에 겨우 찾다. 찾아내고 보니 아까 지나치기도 한 길인데 그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나 스스로 어이가 없다. 그러나 내가 '출판사에서 세워 놓은 간판'을 못 알아보았다 하여도, 이곳 출판문화도시 들머리 곳곳에 '출판사 안내 그림판'을 세워 놓았다면 삼십 분 넘게 헤매는 일은 없었으리라.

- 대안학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마친 다음 아까 오던 길을 거슬러 달린다. 새 길을 달려 볼까 했으나, 아까 오던 길이라 하여도 건너편에서 달릴 때에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먼저 이 길을 몸에 새겨 놓아야 한다. 시골길을 벗어나 도심지 길에 가까워질수록 시끄러워지고 냄새가 나고 차들도 늘어난다. 차가 늘어나는 만큼 자전거는 아슬아슬하다.

▲ 파주출판문화도시에서는 마땅한 길알림판이란 없고, 길바닥에 좌판을 죽 벌여놓고 행사 치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최종규


 (5/1)

 (10:43)
- 도서관을 열어야 하는 금요일을 맞아, 아침에 신나게 아기 기저귀를 빨아 놓는다. 일산에서 인천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아기 똥기저귀도 빨고 밑도 씻긴다. 밥 한 술을 뜨고 나서 길을 나선다. 바람이 조금 불지만 날이 환하고 따뜻하다.

킨덱스에 조금 못 미칠 즈음 뒤에서 따라붙는 자전거 한 대 보인다. 언제부터 따라붙고 있었을까. 비켜 줄까 그냥 달릴까 하다가, 뒤에 붙은 사람이 어떤 생각인지 모르니 섣불리 비켜 주는 일도 잘하는 일이 아닐 듯. 그냥 내 빠르기를 지키며 달린다. 앞지를 사람이라면 알아서 앞지를 테지. 그렇게 조금 달리자니 뒤에서 두 대가 옆으로 나온다. 이제는 페달질을 멈추고 먼저 지나가라고 한다. 앞질러 가는 자전거 두 대는 경주용. (페달질을 멈추며 기다려 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해 준다. 저분들은 어디부터 달려오고 있었을까. 먼 데서? 가까운 데서?

정발산역 조금 못 미쳐 뒤에서 빵빵거리는 자가용 한 대. 한갓진 때라 넓은 찻길에 다른 차가 거의 없는데 뭐 하러 내 자전거에 대고 빵빵질인가. 알쏭달쏭한 녀석이군. 네가 나한테 빵빵질을 해야 한다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 다른 차도 모두 빵빵질을 했어야 하지 않니? 나보고 즐겁게 달리라고 하는 인사로 받아들여 주고 싶으나, 네가 자동차 달리는 매무새를 보니, 아무래도 넌 인사가 아니야. 너희는 우리가 모르는 듯 생각하나 본데, 자전거꾼은 누구나 안다고. 나한테 메롱을 하는 놈인지, 나한테 손을 흔드는 분인지 알아챌 수 있다고.

 (11:12)
- 대곡역 지날 무렵, 미친 택시 하나가 갑자기 자전거 앞으로 쑥 끼어들어 손님을 잡는 척을 하더니, 다시 부웅 하면서 빨리 앞으로 달려나간다. 나보고 저 택시 뒤꽁무니를 들이받으라는 소리인가? 아니면 급발진을 하며 내뿜는 시커먼 차방귀를 옴팡 뒤집어쓰라는 소리인가? 길에 택시 탈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저 택시기사는 손님도 없는 터에 자전거꾼을 갖고 놀자며 저 짓인가 보다. 조금 뒤, 신호에 걸려 이 택시는 내 옆에 서게 되었고, 나는 한동안 택시기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속으로 피식 웃으며 생각한다. '아저씨, 도심지에서는 차나 자전거나 똑같아요. 메롱질을 하고 내빼 보았자 멀리 못 가거든요. 스스로 불쌍한 줄 아셔요.'

어느덧 일산 시내는 다 빠져나온 듯. 어수선할 때가 아니라 잘 모르겠으나, 서울 시내와 견주어 보면, 서울 시내는 높고 낮은 건물이 어지럽게 들어서 있고 일산 시내는 거의 똑같이 생긴 건물이 거의 똑같은 자리에 바둑판처럼 들어서 있다. 언뜻 보기에 일산 시내가 깨끗한 듯 느낄 수 있으나, 이 길도 썩 달릴 만하지는 않다. 어느 도심지가 되든 자전거로 달리는 맛이란 없다. 그저 차막힘이 없고, 밀리는 전철과 버스에서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고달픔이 없을 뿐이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이렇게 따분한 도심지를 자가용으로 달리다 보니까, 자가용 모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 마음을 따분하게 갉아먹게 되지는 않을까. 고속도로를 타고 시골길을 가로지른다 하여도 그저 빨리 내달리기만 할 뿐, 창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구경하기라도 할 겨를이 있는가. 모두들 앞만 본다. 아니, 앞차 꽁무니만 보면서 내가 먼저 가야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자동차꾼들한테 '자전거와 걷는이를 생각해 주셔요' 하고 바랄 수 없는 노릇 아니랴 싶다. 우리 스스로 자가용을 모는 동안에는 아무리 착하고 얌전하게 몬다 하여도, 차가움과 메마름과 따분함을 몸에 길들여 놓는 셈이 아니랴 싶다.

자전거꾼도 자동차꾼하고 똑같아질 수 있다. 나부터 막몰이(마구잡이로 몰아대며 달리기)를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페달질을 재게 하면서 더 빨리 달리자고 꿈꾸지 말자. 늘 알맞게, 오래오래 즐겁게 달리도록 맞추자. 내가 이 길을 달리는 동안 길 옆으로 어떤 집이 있고 어떤 자연이 있고 어떤 사람이 있는지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자.

▲ 가깝더라도 자전거로 통학하는 버릇을 들이면, 나중에 회사에 들어가서도 자전거 출퇴근을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 최종규


 (11:21)
- 행신동이라는 곳을 지난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보인다. 이맘때 무슨 학생들? 중간시험이라도 치르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남학생 하나 보이고, 나머지는 걷는다. 자전거를 타 보았자 집과 학교는 그리 안 멀 테지. 모두들 아파트에서 살 테지. 아이들은 아파트가 고향일 테지.

1999년 여름날, 출판사 선배들하고 이곳에 왔던 일이 떠오른다. 골목골목 자리한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기는 했어도 서울길은 낯설어 하던 무렵이라, 전철역에서 멀리 떨어진 데에 가게 될 때에는 '집으로 어찌 돌아가나' 하고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그때에는 내가 다니던 출판사에 그림을 그려 주는 어느 그림쟁이 집을 찾아가던 날이었는데, 행신동 이 둘레에 사는 그림쟁이 집에서 술을 마신 다음 너무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다들 술에 절어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탓에, 그만 나도 밤새 술을 먹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 일어났으나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설거지며 치우기며 다 끝냈어도 도무지 일어날 생각들을 않는다. 겨우 한 사람 일으켜세워 사무실로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몇 번 타야 하는가를 물어 물어 정류장도 겨우 찾고 찾아 해롱거리면서 일을 나갔다. 그때 아마도 서울에서 버스를 두어 번째로 타 보았던가 했을 텐데, 서울에서 버스를 타면 길을 잃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얼마나 컸든지. 나도 인천 촌놈이라서.

그때는 조마조마 '뭐 이런 동네가 다 있어?' 하며 투덜거렸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전거로 이 동네를 가로지른다. 열 해라는 세월은 나를 좀더 튼튼하게 가꾸었는가? 아니면 무디게 바꾸었는가?

▲ 행신동 께였나? 구름다리 밑에 자전거 대는 곳을 마련했습니다. 좀더 안쪽으로 잘 자리잡았으면, 비가 와도 웬만큼 들이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아쉽지만, 이렇게 비를 덜 맞을 만한 데에 자전거 대는 곳에 마련해 준 마음씀이 고맙습니다. ⓒ 최종규


 (11:35)
- 서울 은평구. 원당이나 삼송이나 연신내 쪽으로는 안 가고 수색 쪽으로 접어드는 길. 다른 데로 꺾지 않고 그저 '서울'이라는 알림판만 보고 달렸는데 이리로 나온다. 연신내 쪽 헌책방 한 곳을 들러 보려 했는데 웬걸. 그렇지만 이 길로 달리니 시간을 퍽 줄일 수 있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면 길그림을 다시 살펴야겠다. 잘하면, 도심지 길이 아닌 샛길로 달리는 한결 나은 길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11:52)
- 서울 동교동세거리. 금세 서울 시내로 접어들다. 느긋하게 달려 한 시간 십 분쯤? 파주부터 치자면 한 시간 반이면 넉넉하겠구나 싶다. 인천에서 신촌까지는 한 시간 남짓 잡으면 되니, 인천부터 이 길로 달리면 파주까지 세 시간 안짝으로 닿을 수 있을는지도.

그나저나 서울 시내로 접어드니 바람맛이 다르다. 같은 도심지라 하여도 일산 시내와 서울 시내 바람맛은 퍽 다르다. 서울 시내 바람맛은 매캐하고 까끌까끌하다. 저절로 이맛살을 찌푸리게 된다.

홍대 앞은 버스전용찻길을 놓는 공사가 한창. 이리하여 길은 엉망진창. 자전거를 달리니 엉덩이가 깨지겠다. 서서 달려도 무릎이 다 나가겠다. 이 공사가 부질없는 공사는 아닐 테지만, 앞으로는 '자전거길 마련하는 공사'라도 좀 해 주어야 하지 않을는지.

▲ 언덕길을 숨차게 오르는 아저씨는, 요즈음 사람들이 '자출족'이 되기 앞서부터 오랫동안 '자출'을 해 오신 튼튼하고 씩씩한 어르신입니다. ⓒ 최종규


 (11:59)
- 양화대교 앞에 다다른다. 또 한 번 빵빵질 차. 나보고 너무 느긋하게 달리지 말라는 뜻은 아닌가 궁금하다. 자기들처럼 성질머리 사나운 차들이 자전거를 들이받을지 모르니 잘 살피라는 뜻이 아닌지 궁금하다.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동안, 서울 시내 공사투성이 길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일산은 새로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도 그럴 테지만, 길이 그렇게까지 엉망은 아니다. 서울은 어느 시내를 달려도 자전거가 지나는 자리는 울퉁불퉁하고 파인 데 많다. 지금은 지하철 9호선 공사가 한창이지만, 이 공사가 끝난 다음에는 10호선이나 11호선 공사를 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서울시는 한결같은 공사판 도시로 이어가지 않을까? 지하철 공사가 아니더라도 재개발 공사로 어느 길이든 어수선하다. 이런 어수선함은 길을 달리는 자전거뿐 아니라 자동차한테도 그리 좋게 느껴지지는 않으리라 본다. 운전대 잡은 사람들은 날마다 짜증과 한숨이 늘지 않을까 싶다. 저절로 '내가 먼저!'라는 생각을 품게 되지 않을까 싶다. 힘여린 자전거나 걷는이한테 마음쓰지 못하고, 미움과 짜증만 거듭 키우지 않을까 싶다.

▲ 버스전용차선을 마련한다며 길을 파헤치고 다시 뜯고 하는데, 자동차야 덜컹거림이 덜할 테지만, 자전거한테는 거의 죽음입니다. 사진도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 최종규


 (12:05)
- 문래동. 신호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멈추다. 그냥 지나가도 갈 수야 있으나 그예 멈추어 버린다. 글쎄, 살그머니 지나갔으면 1∼2분쯤 아꼈을 텐데, 그냥 신호에 걸려 1∼2분쯤 다리쉼을 해도 괜찮다고 느낀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옆과 앞에 있는 자동차를 가만히 바라본다. 운전대 잡은 분들치고 웃는 얼굴이나 밝은 얼굴은 없지 않은가 싶다. 허허 웃으며 차를 몰 순 없겠지만, 뭔가 좀 섬뜩하다. 서울 한강에 난 자전거길을 가끔 지나칠 때에도 '씽씽이질'을 하는 자전거꾼 얼굴도 이들 자동차꾼 얼굴마냥 굳어 있기 일쑤이다. 찌푸리거나 일그러져 있거나 차갑기 일쑤이다.

▲ 앞머리 삐죽 내민 자동차. 이렇게 삐죽 내민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한다고 더 빨리 갈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없는 사람들 때문에 자전거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 최종규


 (12:17)
- 구로구에 접어들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달릴까? 내처 인천까지 접어들까? 이렁저렁 생각을 하는데, 하얀 차 하나가 자전거가 못 지나가게끔 앞머리를 거님길에 붙여놓고 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하는 생각으로 그 앞에 다다를 즈음, 이 녀석은 더 바싹 거님길로 차머리를 들이민다. 아까부터 보았기에 자전거 빠르기를 줄이기는 했지만 살짝 급제동. 조금 뒤 신호에 걸려 이 차가 꼼짝 못하고 있을 때 한 마디 해 주려고 다가가는데 열린 창문으로 담배꽁초 하나 밖으로 튀어나온다. 아주 버릇없는 놈이군. 꼭 한 마디 해야겠어. 자전거를 잠깐 세우고 "운전 좀 똑바로 해요!" 하고 한 마디 쏘아 준다.

구로역 가까이 달리다가 건널목 앞에 멈추어 생각한다. 저 자동차꾼한테 아까 같은 말은 씨알도 안 먹히지 않았으랴 싶다. 좀더 센 말을 해 주어야 했을까. 아니면, "아저씨, 운전 참 잘 하시네요!" 하고 웃어 주어야 했을까. 아무 말 없이 지나쳐야 했나. 틀림없이 저런 어설픈 자동차꾼한테는 누군가 한소리를 해 주며 '막몰이'를 다스려 주어야 할 텐데, 어떤 한 마디가 피가 되고 살이 될까.

-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달려야겠다 싶어, 구로역이 보일 때 자전거에서 내린다. 뒷간에 들어가 낯과 손을 씻는다. 입가에서 깨름한 까만 먼지들이 묻어난다. 도심지를 달리면 코안이며 입안이며 시커매진다.

▲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 아이가 외발자전거를 탑니다. 학교에서만 타는 외발자전거를 넘어, 집과 학교를 자전거로 오갈 수 있도록 슬기롭게 이끌 길을 헤아려 보고 있습니다. ⓒ 최종규


앞바퀴를 뗀다. 동인천 가는 전철을 기다린다. 자전거 실을 자리에 해병대 아이 둘이 버티고 있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문가에 자전거를 붙여 놓는다. 가방을 내려 자전거에 기대고, 오른발로 왼페달을 밟는다. 가방 등판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1분쯤 땀을 말린 다음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는다. 시모무라 고진이라는 일본사람이 쓴 《지로 이야기》(양철북,2009) 2권. 어느덧 500쪽이 넘어갔다. 거의 끝이군.

.. "입 닥쳐, 건방진 놈!" "저는 학생으로서 제 양심을 말한 것뿐입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위협해도 제 양심을 막지는 못합니다!" 지로와 소네 소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놈은 도대체 질서라는 걸 모르는구나!" "알고 있습니다!" "질서를 아는 놈이 어떻게 선생 앞에서 이런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는 거냐?" "양심을 따르는 것이 질서입니다. 불법적인 권력에 복종한다면 질서는 지켜질 수 없습니다." "뭐야? 그럼 네 눈엔 내가 불법적인 권력이라도 휘두르고 있는 걸로 보인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사쿠라 선생님은 옳은 일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불법적인 권력이 선생님을 괴롭힌 겁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권력을 잘못됐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억압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불법적인 권력입니다!" ..  (511∼512쪽)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던 무렵 중학 5년인 지로라는 아이는, 학교에 교련 선생으로 배속된 군인 소네 소좌 앞에서 따진다. 옳은 소리를 외친 교사를 자른 군국주의 헌병은 '질서 지키기'가 아니라 '법을 어긴 짓'을 저질렀다고 외친다.

급행전철은 어느덧 동인천역에 닿는다. 책을 좀 펼친다 싶더니 벌써 닿는구나. 책은 가방에 넣고 앞바퀴를 붙인다. 전철삯 1300원. 대화역부터 전철을 탔다면 2000원이다. 700원 아꼈나? 풋. 골목길을 살짝 돌고 집으로 들어간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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