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별 생각 없이 한 장르문학 잡지의 단편소설들을 휘휘 넘겨보다 한국어라 오히려 낯설게 보이던 이름 석 자를 발견했던 그날을. 외국 이름의 외국 인물들이 번역스러운 문체로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 같은 장르 소설들 사이에서 한국 특유의 꿉꿉하고도 까끌거리는 공기를 느꼈던 그 순간을. 이건 장르가 뭐지? 순수문학인가? 하면서 술술 읽다가 어느새 안드로메다로 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황당함을.
SF의 클리셰 오십 개쯤은 앉은 자리에서 줄줄 꿸 수 있는 골수 장르 독자에게도, SF를 '공상과학소설' 로 알고 있는 일반독자에게도 배명훈을 처음 접하는 일은 이렇듯 조금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한국식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건 아니건, 배경이 한반도의 지방 소도시건 우주의 한복판이건, 그의 인물들은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한국식으로 행동하며 한국식으로 말한다. 그렇게 행간에 우리와 멀지 않은 유전자를 품고 있을 인물들이 우주에 나가서 중력의 부재를 고민하고, 떨어져 있는 애인의 변심을 걱정하고, 새로운 세계의 경이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영미권의 SF독자들이 자국 작가의 장르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쾌감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한다.
또한 배명훈은 '과학적 사유를 작품을 끌고가는 동력으로 사용한다'는 SF의 본래 정의에 충실한 자신만의 세계를 곧잘 창조하는 작가다. 말하자면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한 폐해나 외계문명과의 조우, 인간다운 로봇을 그리지 않고도 과학소설을 잘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독특한 학문들이 종종 등장한다. 유령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고고심령학, 우주를 유영하는 거대어류 포획에 관한 우주수산학, 조개껍질에 각인된 언어를 연구하는 패류문헌정보학 등 배명훈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상상해낼 수 없을 것 같은 학문분야를 양산하던 그가 또 새로운 학문을 하나 창시했다. 이름하여, 권력물리학.
이 '권력물리학'은 무난한 선물로 곧잘 애용되는 고급 양주들이 받는 이의 뱃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다시 선물로 포장되어 사람 사이를 떠도는 관습을 통해 구체화된다. 술병에 전자인식 태그를 부착해 그 소재를 추적하면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권력의 형태를 마치 중력장과 같은 하나의 장(場)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장 분석의 용이함을 위해서였는지 인구 50만 명이 상주하는 674층의 마천루가 축조되었고, 그 안에서는 어느새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를 꼭 빼닮은 사람들이 제각기 상승의 욕구를 품은 채 생존을 위해 버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타워'와 배명훈의 가치가 이런 기발함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발상이 되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한 작가의 출발점을 규정한다면, 그 이야기 안의 세계를 얼마나 정교하고 그럴듯하게 그려내느냐는 그의 내공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명훈은 '타워'를 통해 구축한 초고층 건물 생태계의 묘사로 독자를 자기 세계로 빨아들이는 능란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기 위해 몇 번이고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하는 지난한 여정, 땅에서 멀어질수록 말 그대로 상승하고 있는 계급적 구조, 광고수익을 위해 따스함을 포기해야 하는 빈한한 이들의 비애까지.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면 그것은 도시 곳곳에서 모르도르를 닮은 고층빌딩이 쉬임없이 올라가는 우리네의 삭막한 풍경을 떠올리게 해서 그럴 것이다. 동시에 이 이야기가 전에 없이 새롭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배명훈이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사회과학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이야기를 접한 순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빠져든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망의 본질을 에둘러 가지 않는 정공법으로 툭, 툭 건드리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처럼 배명훈은 지금 현재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있을 법한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에서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타워'는 '현실'을 '지금까지 존재했던 현실'로 파악하는 순문학 작가들에게는 강림하기 힘든 발상인 것은 물론, '사이언스 픽션'의 '사이언스'를 자연과학이나 공학에 한정지어 생각하는 보통의 장르문학 작가들에게서도 좀처럼 만들어지기 힘든 이야기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붙을만한 장르를 하나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예언하건데, 배명훈의 첫 연작소설 '타워'는 장르소설의 범주를 뛰어넘는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그 한국적이면서도 쓴웃음 나는 풍자성을 고려해보면 영화화의 가능성을 점쳐봐도 그리 무리한 전망은 아니어 보인다. 그러니 서두르시라.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너 그거 읽어봤어?'라고 호들갑스럽게 떠들 때에, 훗 하고 미소를 날리며 '난 그거 뜰 줄 진작 알아봤어'라고 한 마디 던지기 위해서라도. 아직 늦지 않았다. 하루빨리 연재독자의 대열에 합류하시길.
'타워' 연재 블로그 http://blog.aladdin.co.kr/tower
SF의 클리셰 오십 개쯤은 앉은 자리에서 줄줄 꿸 수 있는 골수 장르 독자에게도, SF를 '공상과학소설' 로 알고 있는 일반독자에게도 배명훈을 처음 접하는 일은 이렇듯 조금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한국식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건 아니건, 배경이 한반도의 지방 소도시건 우주의 한복판이건, 그의 인물들은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한국식으로 행동하며 한국식으로 말한다. 그렇게 행간에 우리와 멀지 않은 유전자를 품고 있을 인물들이 우주에 나가서 중력의 부재를 고민하고, 떨어져 있는 애인의 변심을 걱정하고, 새로운 세계의 경이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영미권의 SF독자들이 자국 작가의 장르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쾌감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 '권력물리학'은 무난한 선물로 곧잘 애용되는 고급 양주들이 받는 이의 뱃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다시 선물로 포장되어 사람 사이를 떠도는 관습을 통해 구체화된다. 술병에 전자인식 태그를 부착해 그 소재를 추적하면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권력의 형태를 마치 중력장과 같은 하나의 장(場)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장 분석의 용이함을 위해서였는지 인구 50만 명이 상주하는 674층의 마천루가 축조되었고, 그 안에서는 어느새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를 꼭 빼닮은 사람들이 제각기 상승의 욕구를 품은 채 생존을 위해 버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타워'와 배명훈의 가치가 이런 기발함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발상이 되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한 작가의 출발점을 규정한다면, 그 이야기 안의 세계를 얼마나 정교하고 그럴듯하게 그려내느냐는 그의 내공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명훈은 '타워'를 통해 구축한 초고층 건물 생태계의 묘사로 독자를 자기 세계로 빨아들이는 능란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기 위해 몇 번이고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하는 지난한 여정, 땅에서 멀어질수록 말 그대로 상승하고 있는 계급적 구조, 광고수익을 위해 따스함을 포기해야 하는 빈한한 이들의 비애까지.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면 그것은 도시 곳곳에서 모르도르를 닮은 고층빌딩이 쉬임없이 올라가는 우리네의 삭막한 풍경을 떠올리게 해서 그럴 것이다. 동시에 이 이야기가 전에 없이 새롭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배명훈이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사회과학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이야기를 접한 순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빠져든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망의 본질을 에둘러 가지 않는 정공법으로 툭, 툭 건드리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처럼 배명훈은 지금 현재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있을 법한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에서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타워'는 '현실'을 '지금까지 존재했던 현실'로 파악하는 순문학 작가들에게는 강림하기 힘든 발상인 것은 물론, '사이언스 픽션'의 '사이언스'를 자연과학이나 공학에 한정지어 생각하는 보통의 장르문학 작가들에게서도 좀처럼 만들어지기 힘든 이야기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붙을만한 장르를 하나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예언하건데, 배명훈의 첫 연작소설 '타워'는 장르소설의 범주를 뛰어넘는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그 한국적이면서도 쓴웃음 나는 풍자성을 고려해보면 영화화의 가능성을 점쳐봐도 그리 무리한 전망은 아니어 보인다. 그러니 서두르시라.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너 그거 읽어봤어?'라고 호들갑스럽게 떠들 때에, 훗 하고 미소를 날리며 '난 그거 뜰 줄 진작 알아봤어'라고 한 마디 던지기 위해서라도. 아직 늦지 않았다. 하루빨리 연재독자의 대열에 합류하시길.
'타워' 연재 블로그 http://blog.aladdin.co.kr/tower
덧붙이는 글
환상문학웹진 거울(http://mirror.pe.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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