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같았으면 곤장감이다!
[해운대, 진산 '장산' 다시 오르기 [1]] 5개 왕릉 자리 찾아나서다
▲ 장산에 올라 ⓒ 김찬순
누군가의 '너무 긴 휴식은 고통이다'는 말처럼 지난 5월 1일(노동절)부터 5월 3일까지 의무적으로 놀아야 하고 그리고 다시 하루 일하고 5월 5일날 쉬어야 하는 휴식이 사실 나에게는 고통스럽다.
나의 20-30대 시절은 거의 휴일이 없이 근무했다. 철야 근무는 당연한 것으로 일해 온 나에게 시대가 바뀔수록 토요일도 휴일이 된 요즘 난 산에 가지 않으면 뭘 해야할지 막막해서 내 자신이 보내온 시절이란 것이 이제와서 차라리 행복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장산은 봉산이라는데...옛날같았으면 곤장감이다
장산은 '동하면 고문서'를 살펴보면 '봉산(封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봉산이란 나무를 조달하기 위하여 산림을 보호·관리하던 산. 봉산을 관리하는 자를 산임이라 한다. 봉산 관리는 아주 엄격해서 도벌을 당하거나 관리가 부실할 경우 좌수영과 동래부에 불려가 벌을 받았다. 그에 따른 소요경비는 면민들이 부담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봉산에 관한 그 옛날의 사례를 찾아보면, 당시 그 면책이 얼마나 엄중하였는가 알 수 있겠다.
▲ 지난 화마에 탄 소나무 숲 ⓒ 김찬순
▲ 산꾼의 마음을 흉흉하게 만드는 봉산의 산불 흔적 ⓒ 김찬순
이런 막중한 임무를 가졌던 봉산인 장산은 해운대의 진산이다. 그러나 이제 장산은 해운대 8경의 하나. 이곳에 오르면 부산의 속살이 환하게 만져질 듯 보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장산은 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이 많고 겨레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되었다. 아직 더 많은 유적들이 땅 깊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많은 장산을 다시 오른다.
▲ 메마른 바위에 파릇파릇 뿌리 내린 생명력 ⓒ 김찬순
지난 겨울 어느 몹쓸 산꾼의 담뱃불에 의해 전소된 소나무 숲이 흉흉하게 방치되어 있어 마음이 불편하다. 장산에는 그 옛날 장산국이 존재하였다. 장산국은 신라와 가야의 경계 지역에 있었는데 이 장산국에 5개의 왕릉이 존재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와 가야의 침략을 피하기 위하여 궁궐과 왕릉은 장산 안에 있었다. 6. 25 때 미군이 탄약창을 설치하기 전 좌동 일대 어느 작은 절(약수암으로 측정) 옆에 5개의 큰 무덤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없다. 나는 작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왕릉의 흔적을 찾아 산을 더 높이 오른다.
▲ 부산의 속살이 내 눈안에 들어오다. ⓒ 김찬순
예나라 황량해진 지 그 언제든가
여기에 나라 세운 것만 일러주는데
남겨진 자료들은 그 어디에도 없고
지난해 까마귀 울음만 있을 뿐이네.
'장산국' - 동래부사 '윤훤'
▲ 마른 목을 축어주는 호박샘 ⓒ 김찬순
장산은 억새밭(장자벌)으로 유명하지만, 해마다 5월이면 찔레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10만평 벌판에 군데 군데 피어난 찔레꽃은 그 진한 향기와 함께 지나다니는 산꾼과 산사를 올라가는 불자들의 시선을 끈다. 바위 틈 깊이 뿌리 내린 나무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어려움이나 불평 불만들을 감내하라는 침묵의 언어처럼 다가온다. 장산은 바위가 많은 산이다. 그 옛날 화산으로 인해 기암괴석이 많다. 바위 이름도 다 외울 수 없을 정도다.
▲ 장산 바위 ⓒ 김찬순
장산 영감할매 바위, 장산 선바위, 장산 영험 바위, 장산 범바위, 장산 알 바위 등 많은 바위마다 영험이 깃들어 있다고 해 많은 무속인들의 기도처가 되고 있다.
장산에는 돌멩이로 쌓은 돌탑이 많다. 언제 누가 세웠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돌탑들은 산꾼들의 안녕을 비는 탑이 되고 있다.
장산은 그 옛날 장산국이 있던 성지. 장산국은 '내산국'이라고도 불리웠다. 이곳 장산은 대마도를 보기에 적합한 곳이다. '내산'이라 함은 봉산과 같이 봉래산에서 유래한 말로 봉래산은 선가의 삼신산의 하나. 장산은 동해 중의 '봉래'를 이르는 산이름이기도 하다.
▲ 장산국 왕릉을 찾아서 ⓒ 김찬순
장산은 깊고 깊은 골짜기에 마치 거대한 요새처럼 크고 작은 바위들이 성을 이루고 있다. 댕댕댕 울리는 암자의 풍경 소리에 이끌려 나는 심한 허기를 느끼며 터벅터벅 알록달록한 사월 초파일 연등을 따라 걷는다. 찾겠다는 5개의 왕릉의 자리는 대체 어디쯤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나는 내가 대단한 역사학자라도 된 듯 길을 나서면서 각오를 다진 일에 약간의 실망감을 느낀다.
시간은 벌써 오후 3시인데, 산사 암자 마당에는 많은 불자들이 알록달록한 연등 아래서 점심 공양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오랜만에 절밥을 맛보기 위해 연등 아래 섰다.
문득 내려다 본 장산의 중턱에 흉흉한 산불의 흔적이 있다. '개미 구멍으로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속담처럼 무심코 버린 담뱃불이 산 하나를 태우고 만 것이다. 결코 믿어지지 않는 작은 실수다. 산을 사랑하는 산꾼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될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그 옛날 같으면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일인데 말이다. 그러나 장산의 하늘은 너무 무심하게 맑은 옥빛이다.
▲ 장산국의 흔적은 없고 산불의 흔적만 눈에 띈다. ⓒ 김찬순
▲ 사람들 이름이 적힌 등불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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