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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사이좋게 어울리는 묵향과 사람향기들

등록|2009.05.04 14:46 수정|2009.05.04 14:46
살면서 나누어야 하는 일들이 참 많다. 어려움도 나누지만 잘하는 것도 나누어서 더 기쁘기도 하다. 그리고 더러는 생일이나 수상소식 같은 곳에 축하를 하지만, 생각하지도 않은 우연한 일들로 축하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 어제 퇴근하면서 야학교 교장 선생님에게서 갑자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 방송에 다큐로 나가는데 일주일 내내 찍어야 한다네요. 저희 장애인야학교에서 하는 묵향교육에 관한 것도 내보내고 싶은데 시간이 어찌 되시나요?"
"축하해요! 축하해!"
나는 대뜸 축하한다는 말부터 했다. 그리고 시간을 서로 조절해서 다음 주 화요일 오후로 잡았다.

장애인은 육신이 좀 불편하다고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많은 차별을 받는다. 그리고 장애인의 가족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오랜 관습으로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혼인할 때 땅을 비롯해 집과 바리바리 평생 먹고 살 것을 떼어주던 관습이 있고 그런 관습들은 더러 무용이나 소설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 소재로 쓴 소설이나 장애의 특별한 몸짓을 무용으로 표현한 예술도 당사자들에게는 아픔이 되어 항의를 받기도 한다.

장애인들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 결혼을 안 한 비혼율도 일반사람보다 높고, 결혼을 했다고 해도 이혼율도 일반여성보다 월등히 높다. 그리고 장애부부가 아니라도 한쪽이 사고가 나서 장애를 입으면 인연의 끈이 끝나는 경우도 많다. 한 쪽이 장애인인데 한쪽이 좋은 반려자가 되어 오손도손 살아가는 풍경이 언론에 나와 감동이 되는 것은 그것이 그렇게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려자가 없는 독신 장애인이들이라도 민들레 향기같은 소박하고 좋은 일들을 일상에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두 팔을 쓰지 못하는 여성장애인은 꽃같은 소박한 시들을 자주 세상에 내보내는 재야시인이기도 하다. 비오는 날에는 발가락으로 뒤집개를 잡고 부침개를 붙여서 혼자 사는 장애인들의 집이나 병원에 입원한 장애 야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는 들꽃같은 화사한 웃음을 웃고 따스한 정들을 나눠주지만, 정작 그녀는 아주 더운 한 여름에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다. 아이들이 갑자기 일이 생겨 늦게 올 때는, 냉장고 문 같은 것은 열지 못하기에 그냥 쓸쓸한 시간을 먹으면서 인간의 진솔한 외로움을 시로 쓴다.

이러한 장애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은 구두수선소 문도 닫고 야학교에 모여 묵향공부를 한다. 굵고 가는 줄 긋기부터 시작에 봄날에 피는 춘란도 배워본다. 묵향 시간에는 쓰지 못하는 두 다리, 들리지 않는 청력,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이라도 그냥 함께 좋은 것을 나눌 수 있음으로 행복하다.

말을 듣지 않는 왼손으로 희망이란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함께 오손도손 전시장을 찾아 현장체험을 하기도 하면서 봄날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에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그녀는 다음에 태어나면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며, 아픈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운전도 하고 자유롭게 다니는 나를 부러워 한다. 그러나 나는 매일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는 그녀가 부럽다.

그 부러움은 선망의 부러움이 아닌,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상대에 대한 존경과 우정이 깃들인 진정한 축하의 마음이란 것을, 같은 장애인 뿐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의 마음을 나누는 따스함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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