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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을 죽인 자, 용서받지 못하리라!

[일본 간사이 지역을 찾아서 21] 나라공원 나라사슴

등록|2009.05.07 09:46 수정|2009.05.07 09:49

▲ 나라사슴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 박현국


일본 나라켄(奈良県) 나라시(奈良市)에 있는 나라공원에 가면 언제든지 사슴이 뛰어 노는 것을 볼 수 있고, 그 자리에서 사슴 먹이를 사서 줄 수도 있습니다. 과연 이 사슴은 어떻게 사람이 기르는가? 아니면 야생 사슴인가? 언제부터 이곳에 사슴이 살기 시작했는가? 등등 여러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슴하면 우리는 노천명의 시 '사슴'이 생각나고 그 시의 이미지대로 사슴을 생각하곤 합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본다.<산호림 1938년>

▲ 나라사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아이들 ⓒ 박현국


과거 이 나라 공원에 있는 사슴을 신록(神鹿)이라고 하여 성스럽게 여겨 사슴을 죽인 사람은 목이 잘리거나 뜨거운 솥에 넣어 삶아서 죽인 적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인간 이외 모든 것을 먹어치웁니다. 쇠고기도 먹고, 닭고기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습니다. 그러나 오랜 옛날 원시인들은 수렵 생활을 하면서 동물을 사냥하여 잡아먹었지만 그냥 잡아먹지 않고 신에게 허락을 받아서 잡아먹었습니다.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는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로 시작됩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담배의 역사가 그다지 오래지 않으니 이것은 거짓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원시인들의 사고 방식이나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로 이야기의 기원을 말하는 인간의 사고 방식 속에는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만물이 모두 동일한 인격을 가지고 서로 공존했다는 사실이나 그러한 희망이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요즈음 사람들이 과학을 이야기하고 경제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세계 최대의 흥행 사업 디즈니랜드에 흠뻑 빠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디즈니랜드는 생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생쥐 왕국입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기쁨과 희망과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어쩌면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만물이 공존하고 동일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는 물활론적 사고방식은 원시인뿐만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요?

▲ 나라사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아이들 ⓒ 박현국


일본 사람들은 특별히 동물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패션 상품 가운데 헬로키티는 고양이를 모티브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사람들은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기츠네 우동, 기츠네 소바, 다누키 소바, 다누키 우동 등 음식이름에도 동물 이름을 붙입니다. 기츠네는 여우라는 말이고 다누키는 너구리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유부라고 하는 얇게 만들어 말린 두부를 여우나 너구리가 좋아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인 듯합니다.

  처음 나라 공원의 사슴을 보면서 누군가가 관리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 사슴은 비록 나라 공원에서 살면서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야생사슴입니다.

나라 사슴이 역사적인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천 2백년 전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라 공원 동쪽에 있는 산(春日山)은 원시림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숲 속에 살던 야생 사슴이 지금의 나라 공원 부근으로 나와 사람과 만나면서 사람과 친해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나라 공원 안에는 가스가다이샤(春日大社), 도다이지(東大寺) 등이 있습니다. 이 신사나 절에서 거행하는 종교 행사에 사슴뿔이 제물로 받쳐지기도 하고, 이 사슴이 종교 행사에 기웃거리는 모습이 사람 눈에 성스럽게 보여 신성시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신록(神鹿)사상에 의해 사슴을 신의 사자, 즉 심부름꾼으로 여기게 됩니다(1006년). 그리고 사슴을 죽인 사람은 목을 자르거나 뜨거운 물에 삶아서 죽이기도 하였습니다(1309년).

이렇게 신성시되던 나라 사슴은 메이지유신 이후 사슴을 돌보던 고우후쿠지(興福寺)가 문을 닫으면서 소홀히 여겨 38마리까지 줄었습니다. 그러다 1891년 가스가신록보호회(春日神鹿保護会)가 만들어져 나무 울타리를 쳐서 들개로부터 사슴을 보호하고 밤에는 나라 사슴을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차 세계 대전 전후 물자부족으로 사슴이 80 마리로 줄어들었습니다. 다시 1947 년 나라사슴 보호회를 만들어 사슴을 보호하고 나라사슴의 생태학적 특성을 조사, 연구해 오다가 1957년 나라 사슴의 가치를 인정해 일본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습니다.

보통 사슴과 같이 나라사슴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교미를 하여 6개월 정도 임신 기간을 가진 뒤 다음해 5월 중순부터 8월 무렵까지 출산을 합니다. 암놈이 출산을 하여 10분에서 1시간 정도 새끼를 핥아주면 서서 어미젖을 찾아 빨기 시작합니다. 대략 출생 뒤 20일이 지나면 풀을 뜯어먹기 시작하며 어미젖은 3개월 정도 먹습니다. 사슴이 출산을 하는 5월에서 8월 사이, 그리고 교미를 하는 10월에서 12월 사이 발정기에는 가능한 한 사슴을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때는 예민한 때이므로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사슴은 태어날 때 평균 몸무게는 3킬로그램 정도이고 3년 정도가 지나면 70킬로그램 정도가 됩니다. 사슴의 수명은 사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12년에서 20년 정도입니다.

수사슴은 태어난 지 1년이 지나면 뿔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보통 뿔은 이른 봄 이미 있던 뿔이 각질화 하여 떨어지고 매년 뿔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로 자랍니다. 다만 사슴 보호를 위해서 뿔이 각질화하면 매년 8 월 중순에서 다음 해 3월 사이에 사슴뿔을 잘라서 인터넷에 공개하여 판매합니다. 판매 가격은 크기에 따라서 다르지만 한 개 1600엔에서 두 개 8 만엔 정도까지입니다. 이 돈은 사슴 보호 기금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 먹이를 받아 먹고 있는 아기사슴 ⓒ 박현국


나라공원에서는 사슴 먹이를 판매합니다. 이 먹이는 쌀겨와 곡물류로 만든 것으로 사슴 보호를 위하여 천연 재료로 만든 것입니다. 사슴에게 먹이를 주고자 할 때에는 이 먹이를 사서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곳 나라사슴은 관광객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있습니다. 먹이를 다 주고 나면 손을 털면서 들어 올리면 더 이상을 먹이를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슴먹이를 주머니나 가방 등에 감추어두면 냄새로 알고 끝까지 달라고 따라다니며 엉덩이로 사람을 치기도 합니다.

  나라 사슴을 보호하기 위해서 보호 단체에서는 부상당한 사슴을 위한 우리(鹿苑)와 사슴뿔 자르는 곳이 있습니다. 보통 사슴은 나라 공원 부근이나 인근 산에서 야생생활을 합니다. 

천년 이상 인간과 공존해 온 나라 사슴, 지금은 나라공원의 상징물로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노천명의 시처럼 높은 족속으로 신록(神鹿)이 되기도 했기에 인간의 사육을 거부하고 야성을 간직한 채 인간과 공존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참고자료,
사단법인 나라사슴 애호회, http://naradeer.com/index.htm
김달수 지음, 배석주 옮김, 일본 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 대원사, 1995.
서정록 지음, 백제금동대향로, 학고재, 2001.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글을 읽다. 2008.5
덧붙이는 글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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