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나는 말 안하는 게 돕는 것"
초빙교수로 중앙대 첫 강의... 정치 현안 언급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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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오 "친박갈등은 복귀해서 생각하겠다" ⓒ 박정호
"어려울 때 말을 많이 해서 도우는 방법이 있고, 말을 많이 해야 할 사람이 말을 안하는 방법으로 도우는 방법이 있다. 나는 말을 안함으로써 (정부와 당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7일 초빙교수로 모교인 중앙대 국제대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정치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당내 문제는 당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나는 중앙대 교수로서 강의를 열심히 하면 된다"며 언급을 피했다.
▲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7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동북아 평화 번영과 한국의 미래'에 대해 강의하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 남소연
이날 강연 주제와 관련,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인데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 전 최고위원은 "지금은 중앙대 교수이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얘기할 수 없지 않겠느냐"며 "현 정부가 잘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게 되면 '당신이 대북특사로 갈 용의가 있느냐' 또 이렇게 나올 것 아니겠느냐"고 답을 피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정치인"이라며 언젠가는 정치 일선으로 복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금은 이 과제(동북아 평화번영 공동체 구상)를 연구하고 토론하고 하는 중요한 시기"라면서도 "이 주제가 공론화돼서 내 임무가 끝나면 본업인 정치를 다시 해야할 시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언제일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재오의 정치'는 한 단계가 끝났다"며 "젊었을 때는 민주화운동을 했고, 국회의원이 돼서는 부정부패와 싸웠고, 야당이 돼선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고, 옳은 것이라면 내가 주장해야 한다고 봐왔지만 그런 정치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이재오의 한 시대 역할은 끝났다"며 "앞으로는 국가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미래를 제시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의가 완벽해도, 강의가 안좋아도 질문이 없다는데…"
▲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7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동북아 평화 번영과 한국의 미래'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이날 '이재오 초빙교수'는 강의 시작 30여분 전 다소 들뜨고 즐거운 표정으로 강의동에 나타났다. 청바지와 줄무늬 남방에 면재킷을 걸치고 손에 가방을 든 가벼운 차림으로 엘리베이터에서 기자들과 마주친 그는 "기자들이 올 줄은 알았는데, 이러면 학생보다 기자가 더 많은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날 강의실에 나타난 취재진은 약 50여명으로,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수가 엇비슷했다. 러시아·중국·미국 등 다수의 외국인 학생과 한국 학생들이 섞여서 강의를 들었고, 이들을 위해 영어·중국어·러시아어 동시 통역이 제공됐다.
이날 강의는 6월말까지 앞으로 7회를 더 강의할 '동북아 평화번영 공동체' 구상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이었다. 한국이 50~100년 뒤에도 세계 속에서 당당한 위상을 차지하려면 국경을 초월한 경제·문화 영토를 넓혀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아프리카에까지 이르는 철도망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반도-시베리아-유럽-런던' 노선의 TSR(Trans-Siberian Railway), '한반도-중국-중앙아시아-남유럽' 노선의 TCR(Trans-China Railway), '한반도-중국-동남아시아-남아시아-서남아시아-북아프리카' 노선의 TSAR(Trans-South Asia Railway) 이 3개의 대륙간 철도를 통해 경제·문화적 교류를 늘리면 동북아 3국이 평화번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날 강의를 마친 이 전 최고위원에게 학생들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는 "강의가 완벽하면 질문이 없고, 너무 안좋아도 질문이 없다는 데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 것이냐"며 웃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강의내용에 대해 한 중국인 학생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다"며 "그러나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중국, 인도, 이슬람 국가, 서방 국가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연구와 대책도 필요할 것 같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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