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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람] 다시 대한민국 세상, 달라진 사람들

[김갑수 한국전쟁 역사팩션 46회] 대한민국

등록|2009.05.09 09:29 수정|2009.05.09 09:29
심사 받는 세 학자, 이희승과 이병기와 박종홍

김성식은 문 앞에서 학교 임시 책임자 방종현과 마주쳤다.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방금 교수들의 대화 속에 있었던 그는 그 기억을 떨어내기나 한다는 듯이 일부러 방종현을 호기롭게 불러 건물 옆으로 끌고 갔다. 그는 마음속에 품었던 말을 꺼냈다. 그것은 동료 교수이자 선배인 국문학자 이희승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희승 선생이 적색분자나 좌경한 분이 아님은 방 선생이 나보다 더 잘 아실 터이니 하는 말입니다. 그는 알량한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인공국의 심사에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선생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방 선생은 남하했기 때문에 그 시절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실지도 모릅니다.

당시의 형편으로 보아 그들이 심사에 붙여주는데도, 마다하고 물러서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당장 가족이 굶어 죽는 판에, 배급을 준다, 혹은 봉급을 준다는 것도 좋은 미끼였지만, 만일 거부하면 반동으로 몰려서 목숨까지 위급해질 상황에 어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는 사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마음에 물어보아야 할 일입니다. 더욱이 이 선생은 아시다시피 집이 모두 불타버리는 참혹한 전화를 입었는데, 만약 학교에서 밀려나신다면 일조일석에 절망적인 나락으로 빠지실 겁니다. 학계로 본다 해도 높은 수준의 학자요, 정치적으로 본다 해도 대한민국이 이희승 선생 하나를 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마이너스입니다.

더욱이 한 과에서 이희승 선생을 가장 가깝게 모시던 방 선생이 책임자로 있으면서 그 분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훗날에 뭐라 변명하시겠습니까? 같은 국문학자지만 가람 이병기 선생은 문맹(文盟) 관계로 괜한 소문이 돌고 있으니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고, 박종홍 선생은 나는 잘 알지만 방 선생이 잘 아시는지 몰라 일부러 말씀을 피하는 겁니다.

다만 이희승 선생은 방 선생이 누구보다도 잘 아시니 아무쪼록 방 선생이 책임지시고 좋게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방 선생도 이 문제에 관하여 나와 같은, 혹은 나 이상의 걱정을 하고 계신 줄로 압니다. 교원 중에 방 선생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방종현은 김성식의 손을 잡았다.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이 일을 맡은 후 오늘 김 선생께서 처음으로 동료 교원을 두둔하시는 발언을 해 주셨습니다."

이두오와 조수현과 박미애

집에 돌아온 김성식은 툇마루에 앉아 이두오와 조수현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두오는 험한 길을 걸어 고향 집에 제대로 닿았는지, 고향 집에 가서도 여전히 연구에만 몰두하는지, 혹시 조수현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연구에 지장은 없는지, 그리고 조수현은 북상하다가 미군의 폭격에 당하지나 않았는지, 살아 있다면 지금은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는지, 그녀는 여전히 이두오를 보고 싶어 하는지?

다음으로 그는 오현자를 떠올렸다. 끝까지 인민공화국을 신뢰했던 그녀는 미군이 들이닥치는 날 밤에 실종되었다. 그녀는 북으로 몸을 피한 것인지, 아니면 미군의 총에 맞아 죽은 것인지, 아무 소문도 들리지 않았다. 일찌감치 북으로 간 아버지 박광태와 달리 박미애는 마을에 남아 있었다. 박미애는 빨갱이의 딸이라고 하여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지만 그녀의 선한 마음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잘 돌보아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은혜병원에서 간호를 받은 의용군 청년들은 다시 붕대를 감은 몸으로 또는 절룩거리며 북으로 도망쳐야 했다. 박미애를 좋아했던 부상병 청년이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가려 했으나 그녀는 완강히 버텼다고 했다. 박미애는 이따금씩 움막 근처에 모습을 나타냈다. 애틋하게도 그녀는 이두오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모르오. 우리 군인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웬 구지레한 늙은이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처음 김성식은 늙은이가 먹을 거라도 얻으러 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늙은이는 신발도 벗지 않고 마루로 올라가더니 백묵을 꺼내 벽에다 무슨 글씨를 휘갈겨 쓰는 것이 아닌가?

- 陸軍情報局 鄭漢泳 (육군정보국 정한영)

정숙에게 들은 바가 있는 늙은이였다. 며칠 전에 불쑥 집에 들어와서, 뜯어 말린 콩잎을 제 것인 양 가져갔다고 했다.

김성식은 아무 말 없이 늙은이가 하는 양을 지켜보기로 했다. 늙은이는 광에 가서 나무를 한 짐 꺼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나가려고 했다. 순간 김성식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여보시오, 노인장!"

늙은이가 나뭇짐을 든 채 뒤를 돌아보았다.

"남의 물건을 그렇게 말도 없이 집어가는 법이 어디 있소?"
"우리 군에서 쓰려고 하오."
"우리 군이라니요?"
"나는 모르오. 우리 군인이…."

"게다가 남의 집에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드는 건 또 뭐요?"
"나는 모르오. 우리 군인이…."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우리 군인은 903부대원이오. 이 집은 이제 군에서 쓰게 될 것이오. 그때까지 우리 군인이 이 집을 나에게 쓰라고 했소."

김성식은 어안이 벙벙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명색이 국립대학 교수인 자기에게도 이렇게 득세하는 군인이라면 일반 백성에게는 오죽하랴 싶었다.

"그 우리 군인을 당장 데려오시오. 우리 군인이 와서 경위를 말하게 하란 말이오. 알아듣겠소?"

늙은이는 더 이상 김성식의 집에 얼씬하지 않았다.

보수우익 의사 고정술

은혜병원 의사 고정술이 돌아왔다고 했다. 김성식은 일부러 그를 찾아가 보았다. 세브란스 출신 의사인 그는 혼자 남하하여 남은 가족이 온갖 고생을 겪어야 했다. 그 사이 그의 부인은 낙태를 하는 등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가 돌아온 후 아내와 냉랭해진 양으로 보아 그는 가족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도망쳤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시부터 이승만을 존경하는 우익이었던 그는 남하했다 돌아온 후 더욱 사상이 강경해진 것 같았다.

"당분간 우리는 데모크라시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적색분자들을 가열하게 색출해 무자비하게 숙청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이 나라가 살 길입니다."

고정술의 준엄한 기세에 김성식은 한풀 꺾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정술은 계속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국군의 용감함은 이미 전란을 통하여 내외에 알려졌습니다. 나는 의사로서 부상병들의 기상에 놀랐습니다. 마취 없이 팔 다리를 잘라내면서도, 그들은 입을 다물고 참을 뿐 울부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술하는 우리 의사의 손이 떨렸습니다."

김성식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다 온 그가 대단한 애국자가 되어 기세등등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고정술은 자기가 옳은 일을 했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남하한 자기만이 정당하다는 독선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가족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해답을 낼 수 없었다.
덧붙이는 글 사학자 김성칠 선생의 일기 <역사 앞에서>를 참조한 부분입니다. 이 소설은 6월 25일까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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