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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안식을 기도하며

등록|2009.05.11 09:45 수정|2009.05.11 09:45
서강대에서 강의를 하는 친구에게 장영희 교수를 아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의 책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고 난 직후의 일이었다. 나는 그가 쓴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독파하면서 유려한 문장과 서양시의 진수를 맛본 행운을 안았지만, 그것보다도 글 속에서 저자 장영희 교수의 시린 아픔을 느낄 수 있어서 더 마음이 갔다.

그는 중증 장애인으로 인생을 힘겹게 그러나 당당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녀가 주어진 악 조건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낸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그 책을 읽고 난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의 다른 책에 자연스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내 생애 단 한 번>은 그의 자전 에세이집으로 진솔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전개되고 있다.

나는 평소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한 차원 더 복잡한(아니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생각하고 있다. 비장애인이 3차원의 삶을 영위한다면 장애인은 4차원의 세계를 헤쳐나가고 있다고나 할까? 직간접적으로 주시하는 시선들, 장애로 인해 넘기 힘든 물리적 벽들, 육체적 장애를 정신까지 연결시켜 생각하려는 사람들... . 장영희 교수는 이런 문제를 그의 책에서 아주 서스럼없이 고백하고 있다. 나도 역시 선입견의 소유자에 예외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장애인도 이렇게 영롱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한동안 감탄했었으니까.

그의 영미시 산책 시리즈 <생일>과 <축복>도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영미시에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 책을 읽음으로 시를 좋아하게 되고 또 문학을 사랑하게 되는 특별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 장 교수의 글은 이론적이 못 된다. 더욱이 계산되지 않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의 책을 읽고 처세의 기술을 배운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지식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밝게 보고 사람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할 수 있는 것이 그의 책이다. 이것은 그의 글이 세속적 이익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사상과 이데올로기도 초월해 있으며, 문학의 지향점인 유파에서도 딱히 어디라고 말할 수 없는 특별한 영역에 그의 글은 위치해 있다.

장 교수가 별세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남달리 어려운 역정을 극복해 온 사람이기에 슬픔의 도가 더하다. 그녀는 내가 가까운 시일 내에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음에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장 교수의 별세로 기십년 지기를 잃은 듯한 마음에 휩싸이는 것은 글로 교감하고 공감한 이유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나의 서재 책장 한 칸에는 장 교수의 같은 책이 몇 권씩 꽂혀있다. 언제부턴가 책을 선물할 일이 있을 때, 난 별 고민하지 않고 그의 책을 보내곤 한다. 장 교수의 때묻지 않는 마음과 순수한 열정을 전해주고 싶어서이다. 길지 않은 삶을 열정적으로 살다간 그에게 경의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 나라에서의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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