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선생님 해직 막으려 교장한테 '뻥' 쳤어요

[나의 '스승의 날' ②] 20여 년 전 내 이상형 '국어선생님'을 기억하다

등록|2009.05.15 08:56 수정|2009.05.15 09:00
5월은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마술 같은 달입니다. 아련하게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게 하는 그런 마술. 저는 늘 5월이면 20여 년 전,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딱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과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사진. ⓒ 권영숙


저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어떤 친구들과 만날까도 궁금했지만, 담임 선생님이 누가 될까 하는 걸 더 궁금해 했습니다. 1986년 고1 사춘기 여학생이었던 저는 국어 과목의 총각 남자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사춘기 여학생의 꿈 '총각 남자 담임'

이런 제가 새 학기 담임 선생님을 본 순간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뿔테 안경에, 약간은 멍한 눈빛이지만 크고 맑은, 더군다나 어리숙함까지 겸비한 '딱' 제 스타일인 국어과 선생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장가를 이미 가신 분이었지만 참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른 어느 날의 종례시간이었습니다. 교실 커튼을 빨아야 하는데 누구 자원할 사람 있으면 손을 들라는 겁니다.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칠까 걱정하며 고개를 푹 숙였지만 저는 오히려 잽싸게 손을 들었습니다. 이런 기회야말로 담임 '샘'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 새로 온 담임 선생님을 보고 쓴 일기. ⓒ 권영숙


"이름이 뭐지?"
"권영숙이요."
"그래. 권영숙, 수고 좀 해줘."

전 담임 선생님의 그 은근한 눈길을 한 번 더 받으며 큰 커튼을 들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니 그게 뭐꼬?"  
"어. 학교 커튼."

"니 반장 됐나?"
"아니. 엄마, 반장은 1등이 해."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럼 뭐 맡았나?"
"아니. 간부는 아직 안 뽑았지만 안 뽑힐 거 같은데?"

"니 그게 자랑이가? 반장도 아니고, 간부도 아닌데 커튼을 와 들고 왔는데?"
"아니. 내가 집이 제일 가깝잖아. 애들은 버스 타고 가야 하는데 집 가까운 내가 해야지."

"그 커튼 니가 빨기가?"
"엥?????????????"

저요, 진짜 욕 많이 먹었습니다. 담임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손 번쩍 들었다가 성적표 보여줄 때마다 엄마의 그 커튼 타령이라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뭐, 커튼 빨아서 담임 선생님한테 예쁨을 받았냐구요? 그런 걸로 차별하실 담임 '샘'은 아니셨구요. 좋게 말해서 그냥 개성 있는 아이로 봐주셨습니다.

내 개성 알아봐준 선생님의 한마디 "계속 해라"

▲ 1986년, 조선일보의 성고문 보도- 언론도 공정성을 잃었다. ⓒ 권영숙


제가 개성 있는 아이로 선생님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다 제 일기 덕분입니다. 성당 주보에 실린 글 중에 시사성이 있거나 괜찮다 싶은 글은 일기장에 스크랩하고 그 옆에 제 나름의 생각을 적어놓곤 했었거든요.

스크랩한 글들 중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인권 회복을 위한 강론 말씀도 있었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글도 있었고, 의문사로 죽어가는 대학생들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 등 사회적인 글들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일기 검사를 하시면서 사인을 해주실 때 제게 "이것만 읽으마" 하시면서 한참 제 일기장을 들고 읽으셨습니다. 다 읽으신 후에는 알 듯 모를 듯,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계속 해라"라고 하셨지요. 계속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얼 의미하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감안하건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커밍아웃... 교장께 보낸 나의 '장문의 편지'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선생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겨레>에 실린 전교조 성명서에 동의하는 사람 명단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본 순간 가슴이 찡했습니다. 따뜻하게 웃어주던 그 해맑은 웃음을 다시는 학교에서 볼 수 없는 건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 교장선생님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이신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썼습니다. 참다운 스승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시기에 그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라고 간곡히 썼습니다. 솔직히 교장 선생님을 엄청 싫어했지만 존경한다고 '뻥'을 쳐가며 열심히 썼습니다. 다행히 선생님은 제 편지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해직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후, 딱 한 번 선생님을 뵙게 되었는데 명동성당 앞 집회에서였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제 두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그때는 스승과 제자가 아닌 함께 길을 가는 동지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선생님께서 잡아 주신 두 손의 느낌. 제게 바른 길로 가라고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재작년,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하듯 전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늘 '한 번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한 것이 어느덧 스무 해를 훌쩍 넘겼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흔한 이름을 가진 저였음에도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20년만에 선생님께 편지를 썼어요

"너 학교 옆 권영숙이지? 네 성격에 사회 활동 열심히 하지? 너의 그 밝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기 바란다."

선생님께서는 장난 잘 치던 절 밝고 명랑한 아이로 기억하셨습니다. 나름 진지한 면도 많았는데 말이죠. 저는 선생님께서 권해주셨던 길로 비록 가진 않았지만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떠겠냐는 그 한마디가 제 인생에서 나침반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성적이 아닌 다른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 선생님은 학생의 있는 그 모습만 가지고 이해해주셨습니다. 또 인생을 살 때 어떤 삶이 좀 더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탬이 되는 삶인지 선생님의 당당한 모습에서 보고 배웠습니다. 

스승의 날입니다. 대체로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이 근사하게 차려입고 학교를 방문하던데 저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출세했으니 명함 들고 한 번 찾아뵐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