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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공원에는 토끼가 살아요!

등록|2009.05.13 10:02 수정|2009.05.13 10:02

"공원에 토끼가 살아요"공원 입구에 선 팻말. 이 곳 공원에 토끼가 살게 된 짧막한 사연이 담겨 있다. ⓒ 허선행



도심 한복판의 공원에 토끼가 사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의 한 공원 풍경은 다른 공원과 다를 바 없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과 마라톤 연습을 하는지 땀 흘리며 뛰는 젊은이들, 아기와 함께 자연을 즐기는 엄마와 운동기구를 이용해 열심히 운동하는 주민들.

우리 집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감나무실 공원'이 있다. 하지만 그 공원에는 다른 공원과 달리 토끼가 살고 있다. 빙 둘러 아파트 단지이기에 찾는 사람들도 늘 많다.

내가 이곳에서 본 토끼는 스무 마리 정도인데 내게 선을 보이는 녀석들은 매일 다르니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느 날은 검정 토끼, 어느 날은 줄무늬 토끼, 어느 날은 점박이 등 공원을 찾을 때마다 다른 토끼와 마주하게 되니 오늘은 어떤 토끼와 만날까 기대를 하고 가게 된다.

과일껍질도 잘 먹어요지난 겨울 그들의 먹이를 주기 위해 난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공원을 찾았다. ⓒ 허선행



도심 속의 자연도심 속 공원에서 어미와 새끼가 노는 모습 ⓒ 허선행




내겐 그들이 특별하다. 주인도 아니지만 그들은 나를 주인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겨울 그들의 먹이를 주기 위해 난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공원을 찾았다.

우리 부부 손에는 늘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그 비닐봉지 안에는 토끼들이 좋아하는 배춧잎이나 야채, 과일껍질 또는 찬밥 남은 것 들이다. 다른 분들도 토끼먹이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난 조금 특별하게 그들을 부른다. 비닐봉지를 바스락 거리며 그 소리로 내가 왔다는 신호를 요란하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토끼야! 토끼야!" 부르면 어디선가 쏜살같이 나타나곤 한다. 요즘에는 자연스럽게 다가오기도 하고 앞발을 들며 예쁜 짓도 하니 더 사랑스럽다.


그 토끼가 새끼를 낳았다. 여러 색의 토끼 새끼를 보니 귀엽기도 하고 가슴이 뛰기까지 한다. 행여 그들이 놀랄까봐 조심스레 다가가지만 새끼들은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 놀라 도망가기 일쑤다. 아직은 사람 사는 세상이 두려운가보다. 제 집으로 쏘옥 들어가 버리니 아쉽지만, 그들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하니 어쩌면 다행이다.

그런가하면 며칠 전엔  이곳저곳에서 흩어져 풀을 뜯고 있는 녀석들에게 과일을 주고 돌아오는 길에 하얀 토끼가 자꾸 따라 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줄 것도 없는데 두 앞발을 들며 자꾸 애교를 부리는 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에 돌아 서려는데 못보고 가는 줄 알고 앞에 다가와 내 발을 핥고 있다.

"아이쿠! 이 녀석아."

토끼와 아이공원을 노니는 토끼를 아이가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허선행



집으로 가는 길어두워지니 제 집을 찾아 간다. ⓒ 허선행



이러니 어찌 매일 공원을 찾지 않을 수 있나. 오늘도 숲 속을 보니 어미 옆에 새끼 두 마리가 배를 쭉 깔고 한가롭게 쉬고 있는 것이 보여 부리나케 카메라를 들고 다시 올라갔다. 도망이라도 갈까봐 살며시 셔터를 누르는데 마치 모델이라도 된 듯 빤히 쳐다보며 포즈를 취해준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이젠 풀도 많이 나고 날씨도 좋으니 너희들에게 더없이 좋은 계절 아니냐.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길고양이가 그랬는지 토끼가 다친 걸 봤다고 하시니 걱정이 된다. 탈 없이 잘 자라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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