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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판사 "소장 판사들 행동은 법원 권위만 훼손"

정진경 부장 "신 대법관 사퇴시키면 향후 법관 신분보장은 휴지조각 될 것"

등록|2009.05.13 16:37 수정|2009.05.13 16:37
신영철 대법관 파동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각급 법원 소장 판사들의 판사회의 소집 등 집단반발 움직임에 대해 중견 법관이 우려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정진경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7기)는 13일 법원내부통신망에 올린 '오늘의 법원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징계와 사퇴를 요구하는 소장 판사들의 행동은 법원 전체의 권위만 계속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더라도 '정직'도 힘들 사안을 가지고 (집단행동으로) 대법관을 사퇴시킨다면, 향후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신분보장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부장판사는 먼저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를 옹호하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고,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서의 행위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으며, 말문을 열었다. 윤리위 결정 이후 13번째 판사 글이다.

그는 "소장 판사들 중에는 정식 징계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징계 절차에 의해 법관을 파면할 수는 없으며 설사 징계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미미한 징계가 예상되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고, 또한 대법관은 더 이상의 승진자리가 없는 최고위직 법관이기에 징계라는 것이 일반 법관과는 달리 별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신 대법관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것은 징계절차를 통해 심리적 압박을 가해 사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솔직한 본심일 것"이라며 "헌법상 신분이 보장된 법관을 심리적 압박을 가해 사직시킬 수는 없고,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다른 법관이 사직을 요구할 어떠한 법적인 근거도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 부장판사는 특히 "상대가 헌법에 위반된 행위를 했다고 비난하면서 그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헌법에 위반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며 "또한 현실적으로 소장 판사들의 행동은 법원 전체의 권위만 계속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건은 기존의 사법파동과 관련된 사건들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며 "신 대법관의 행위가 사법행정권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별 것 아닌 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음에도 계속 문제 삼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러한 행위가 나온 동기를 의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서울중앙법원장으로서 차기 대법관이 유력시 되는 상황에서 정치권력을 의식하고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생각 때문에 많은 판사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믿는다"며 "그러나 촛불집회 자체가 정치적이었고 신 대법관 사건의 전개를 보아도 정치성이 강하게 내재돼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부장판사는 "사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법관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며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며 "집단행동은 독재정권하에서 사법부의 독립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였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아무런 다른 수단이 없었던 시절에 자신의 직을 걸고 국민을 상대로 호소했던 것"이라고 상기시켰다.

아울러 "과거 수차례의 사법파동이 있었고 이를 국민들이 수용한 것은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나, 현재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법관은 자신의 본래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또한 이 사건의 위와 같은 정치적 성격은 법관의 집단행동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얻기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정 부장판사는 "판사들의 집단행동은 적어도 법원의 선배판사들의 묵시적인 동의와 국민 대다수의 지지가 있을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며 "저는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으로 인해 국민의 반은 반대할 수밖에 없으며, 대다수의 선배판사는 신 대법관의 행위의 문제점은 인정하더라도 판사들의 집단적인 대응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반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 생각한다"고 집단행동에 반대했다.

그는 "현재의 울분에 찬 소장 판사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법관이 법에 근거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법원의 발전과 사법부의 독립에도 해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소장 판사들에게 부탁했다.

그는 "현재 법원의 규모가 커지고 관료화가 심해지면서 판사들 간에도 소통의 단절이 심각한 문제로 됐고, 저는 부장이 된 후로 경력에 별 차이가 없는 단독판사들과도 심리적 벽을 여러 차례 느낀 바 있다"며 "선배들이라고 해서 수구꼴통은 아니고, 단지 연륜이 더 쌓인 정도에 불과한 사람들이니, 선배들을 적대시하지 말고 많은 대화를 나눠 보길 권한다"라고 당부했다.   

또 정 부장판사는 징계를 요구하는 절차나 시기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 대법관 행위 당시에 정식으로 이의를 했어야 하고 해결되지 않는 경우 법원내부 절차를 밟아 처리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대법관 제청과정이나 인사청문 과정에서 걸러지도록 했어야지, 대법관이 된 후에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고,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집단행동에 대한 선배들의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신 대법관 문제는 이미 상당한 정도의 심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법원장들이 신 대법관과 동일한 일을 반복하기는 어려울 것인 만큼 향후의 노력은 법원 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적정하게 처리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에 집중돼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대형 법원에서 법관에 의해 선출된 직급별 대표로 구성된 고충처리위원회를 설치해 법관의 요청이 있으면 그 고충을 신속히 처리해 주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고, 거시적으로는 현재의 사법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판사는 끝으로 "오늘 (대법원장의 '엄중경고') 징계로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정직도 힘들 사안을 가지고 대법관을 사퇴시킨다면, 향후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신분보장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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