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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31) 공과(功過)

[우리 말에 마음쓰기 639] '대국(大國)'과 '큰나라'

등록|2009.05.15 11:02 수정|2009.05.15 11:02

ㄱ. 공과(功過)

.. 마지막으로는 '메이지 시기 일본의 번역주의가 남긴 공과(功過)'랄까 ..  《마루야마 마사오, 가토 슈이치/임성모 옮김-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2000) 12쪽

 '시기(時期)'는 '때'로 고쳐 줍니다. "일본의 번역주의"는 그대로 둘 수 있겠지만, "일본에 떠돌던 번역주의"나 "일본을 휘감던 번역주의"로 풀어내어 토씨 '-의'를 털어낼 수 있습니다.

 ┌ 공과(功過) : 공로와 과실을 아울러 이르는 말
 │   - 공과를 논하다 / 공과를 따지다
 │
 ├ 번역주의가 남긴 공과(功過)
 │→ 번역주의가 남긴 좋고 나쁜 것
 │→ 번역주의가 남긴 보람과 잘못
 │→ 번역주의가 남긴 잘잘못
 │→ 번역주의가 남긴 뜻
 └ …

 '공과' 같은 한자말은 한글로만 적으면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겠군요. 그러면,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볼 수 있도록 풀어내어 적으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어 준다고 하여 더 잘 알아들을까요? 묶음표에 한자를 넣기는 했으나, 이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어찌하지요? 한글로만 적었을 때 알아보기 어렵다면, 이러한 낱말은 우리가 굳이 써야 할까요? 한글로 적을 때 알아보기 어려운 낱말이라면, 우리 말이라 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 功勞 / 功績
 └ 過失

 '공로'와 '과실'을 아울러 이른다고 하는 '공과'입니다. '공로'란 '공적'을 뜻하고, '공적'은 다시 '보람'이나 '열매'를 가리킵니다. 또한, '과실'은 '잘못'이나 '아쉬움'을 가리켜요.

 그런데, 공로이든 과실이든, 이러한 낱말은 '공과'와 마찬가지로 한글로만 적어 놓을 때에는 제대로 못 알아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과'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달아 놓듯, '공로'와 '과실'에도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달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요즈음이야 이런 한자말을 그저 한글로 적어 놓지, 예전에는 이런 한자말은 하나같이 한자를 밝혀 대놓고 적었습니다. 한자를 밝혀 대놓고 적다가 한자를 털어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 공과를 논하다 → 보람과 아쉬움을 말하다
 └ 공과를 따지다 → 좋고 나쁨을 따지다

 문득, 이런저런 한자말을 쓰느니 마느니, 또는 옳으니 그르느니, 또는 털어내야 하느니 그냥 쓰느니 하고 따지기 앞서, 겉껍데기부터 속알맹이까지 오롯이 우리 말로 쓰려고 하는 움직임은 왜 없는지 궁금합니다.

 '論하다'를 '논하다'로 적는다 한들 우리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말하다'나 '이야기하다'로 적어야 비로소 우리 말이 됩니다. '功勞'를 '공로'로 적고, '功績'을 '공적'으로 적는들 우리 말이 되지 않습니다. '보람'이나 '열매'로 적어야 비로소 우리 말이 됩니다. '過失'을 '과실'로 적는다 한들 우리 말이 되지 않아요. '잘못'으로 적어야 바야흐르 우리 말이 됩니다.

 우리 스스로 말다운 말을 찾아야 하고, 우리 손으로 글다운 글을 써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말다운 말길을 터야 하고, 우리 손으로 글다운 글길을 닦아야 합니다.


ㄴ. 대국(大國)

.. 러일전쟁 때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군사 간섭이라는 형태로 서양의 대국(大國)이 나섰습니다만 ..  《마루야마 마사오, 가토 슈이치/임성모 옮김-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2000) 17쪽

 "처음으로 본격적(本格的)인 군사 간섭(干涉)이라는 형태(形態)로"는 "처음으로 군사 간섭이라는 모양새로"나 "처음으로 군대가 쳐들어오며"쯤으로 다듬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러일전쟁 시기(時期)"라 하지 않고 "러일전쟁 때"로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 대국(大國)
 │  (1) 국력이 강하거나 국토가 넓은 나라
 │   - 경제 대국
 │  (2)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중국을 이르던 말
 │
 ├ 서양의 대국(大國)이 나섰습니다만
 │→ 서양 큰나라가 나섰습니다만
 │→ 힘센 서양 나라가 나섰습니다만
 └ …

 나라를 이끄는 분들은 우리 나라가 '경제 대국'이 되거나 '문화 대국'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국'을 우리 말로 풀면 '큰 나라', 그러니까 "경제가 큰 나라"나 "문화가 큰 나라"로 우리 나라가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될 텐데, 경제나 문화가 큰 모습은 어떤 모습일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번다면 경제가 큰 나라 모습이 되는지요. 집집마다 자가용을 몰고 다닌다면, 자기가 사는 집값이 껑충껑충 뛰어서 앉은 자리에서 떼돈을 벌면 큰 나라 모습이 되나요. 돈 걱정 없이 살아야 경제가 큰 나라 모습으로 자리매기는가요. 문화가 큰 나라 모습은 어떠할까 모르겠습니다.

 ┌ 경제 대국
 │
 ├ 경제가 큰 나라 / 경제 큰나라
 ├ 돈 많은 나라 / 살림 넉넉 나라
 └ 경제나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경제이든 문화이든 정치이든 사회이든 교육이든 꼭 커야 할까 싶습니다. 작으면서도 아름다운, 작으면서도 즐거운 나라이면 안 될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크든 작든 아랑곳하지 말고 아름다움을 가꾸어 갈 수 있으면, 나아가 아름답든 아름답지 않든 저마다 다른 제 모습을 고이 받아들이면서 알뜰히 보듬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로 '경제나라'가 되지 않아도, '문화나라'가 되지 않아도, '교육나라'가 되지 않아도 좋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저 우리 모두 수수하고 껴안고 조촐하게 어깨동무하는 사람 삶을 사랑하고 믿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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