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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더 깊은 '인연'

등록|2009.05.15 11:52 수정|2009.05.15 11:52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커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엔 현지인들도 있고, 한국 여행객들도 많다. 물론 결혼한 사람보다는 애인과 함께 온 경우가 훨씬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들이 여행객일 때는 유레일 패스를 함께(함께 끊으면 돈을 아낄 수 있는 상품들이 있다) 끊지 않았으면 아마 벌써 헤어졌을 거라고, 정말 이렇게 많이 싸우게 될지는 몰랐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민박집 주인 분들께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실제로 싸우고 먼저 가버리는 커플들도 많은 모양이었다.)

벨기에를 다녀오는 기차안에서도 나는 한 작은 칸에 한국인 커플 한쌍과 같이 오면서 어쩌다가 그들의 하소연을 듣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짜증나게 하는 성격인 줄 몰랐다느니.. 여행은 꼭 한번 가봐야할 것 같더라.. 여행을 와보니 ..하루종일 같이 있어보니 그 사람이 어떤 줄 알겠더라는 "등등의 속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혼자 여행을 다녔던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었었다. "그래도 혼자 있어서의 문제도 많다. 일단 외롭고, 또한 서로 각자 도와줄 일이 있을 때 혼자 모든 걸 다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들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둘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혼자라면 절대로 쉽지 않았을 일들이." 

그렇게 말을 하면 다들 자신들을 한번 더 깊숙이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그 커플 역시 .. "그렇지요.. 또 그런일도 있었지요. 저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 도 놓칠 뻔했고, 저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이 큰 짐 혼자 짊어지기 어려웠을 테고.. 또 저 친구가 아니었으면 덜렁거리는 성격의 제가 참 놓치는게 많았을 거예요" 라고 말하면서 서로를 다시 한번 바라보는 것 같았다. 

혼자냐 둘이냐 그걸 말하고 싶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야말로 혼자도 둘도 각각 장단점이 있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미술관에는 혼자가는 게 참으로 좋고, 음악은 같이 들으면 참으로 좋고... 길은 함께 걸을 때도, 혼자 걸을 때도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산책 나오신 할아버지. 독일 베를린 근교의 한 공원에서 만났다. ⓒ 배수경


하지만 둘이 있어 아름다운 경우를 만나곤 했다. 위 사진은 독일에서 찍은 것인데 베를린에서 약 2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오면 독일에서 두번째로 큰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원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저기다.

실제 왕궁의 터이기도 했다던 저 곳은 그저 직선으로 관통하는 데만도 걸어서 4시간 이상을 걸어야 가능하다. 그러니 그곳을 둘러 본다면 그야말로 하루도 부족한 규모이다. 나는 이곳을 같은 방을 썼던 한 여자 친구와 같이 갔는데 끝까지 와서 지쳐버린 그녀는 벤치에 누워 잠깐의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 나는 멍하니 토끼풀에서 네잎 클로버나 찾고 있었다. 

그때 내 옆을 저 두 분이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셨다. 처음에는 "우와, 저 연세에도 저렇게 손을 꼭 붙잡고 산책을 나오셨네"라며 "뭐 저렇게 안 잡고 간다고 누가 빼앗아갈 연세들도 아닌데, 금술이 좋으시나 보네"했다. 더군다나 할머니가 머리는 희끗하지만 워낙 젊어보여서 혹시 여기도 각자 부인 남편 따로 두고라는 생각까지 슬쩍 날 만큼 너무나 꼭 잡은 손이 두드러졌던 커플이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지나가고 뒤를 돌아보니 그제서야 할머니가 눈이 안 보이는 장님인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손을 꼭 붙잡고 간 거였구나. 무엇보다 손이 두드러져 다가올 만큼, 두 손 꼭 행여나 떨어질세라, 그렇게 할아버지가 그래서 무거워보이진 않지만 짐도 다 들으시고 그렇게 할머니를 이끌어주고 걸어가셨구나. 

순간, 어찌나 저 커플이 소중해보이던지. 상대에게 훨씬 더 많은 희생을 해야하지만 '여자라는 혹은 남자라는 말도 안되는 덧씌움에 의한 경우가 아닌' 내 짝이기에 온전히 그것을 감내하는 것. 진실로 서로의 길을 밝혀주고 그가/ 그녀가 부족하다고, 그래서 내가 힘들다고 물건 버리듯 버려 버리지 않는 것.

또 스위스였던 것 같다. 역시 스위스답게 유람선을 타고 리기산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내 테이블 맞은 편에 앉으셨던 한 노인 커플 두분이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역시 어디서 왔고, 왜 여기 있으며 등등의 간단한 자기 소개가 끝나자 그분들 말씀이 본인들은 각각 79, 72세 이신데 결혼한 지 2년도 안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어찌된 거냐고 묻자, 사실 지금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처음 부인하고 결혼했을 때 부인 들러리를 서 주었던 죽은 부인의 절친했던 친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지금의 할머니 역시 할아버지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셔서 서로 외롭게 늙어가다가 서로에 대해 이 만큼 잘 아는(실제로 이 분들의 인연이 30년이 넘는 세월이니) 이가 없기에, 같이 살게 된 것이라고. 

순간 머릿속에 먼저 든 생각은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내가 만약 전 부인이었다면 이 결혼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그래도 내가 잘 아는 친구가 옆에 있어주니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지, 아니면 차라리 다른 생판 모르는 여자랑 결혼을 하지 그랬어라고 질투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쩌면 저 두 분이 나이 들어 외롭게 보내지 않는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다. 

또 한 커플은 한국인 민박집 아저씨 아주머니. 둘 다 미인 미남이신데 그 집에 오래있었던 덕분에 거리낌 없이 내가 아저씨게 여쭈어 보았다. "아저씨, 아주머니가 귀여운 그 매력에 푹 빠지셨던 거지요? 지금도 아주머니 너무 예쁘시잖아요?" 그러니 아저씨 말씀하신다. "내게 저 사람은 밥이다. 저 사람에게 나도 그럴 것이다. 저 사람 없으면 그냥 라면이나 대충 끓여먹고 대충 국에 밥이나 말아 한끼 떼우고 말 것을 저 사람이 있기에 상을 차리고 없는 반찬이라도 이것 저것 내어서 먹는 것. 내가 생각하는 부부는 바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밥이란 얼마나 신성한 것이던가.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부부의 인연이란 천 겁의 만남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던가. 꼭 부부의 연이 아니라 일반적인 남자와 여자의 인연만큼 놀랍고 신비한 것은 그닥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하여  쉽게 버리고 쉽게 취하고 그 사람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요즘의 세태들 속에 나를 돌아보면서 인연이란 우리가 말하는 핑크빛에 그치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여행에서 만났던 분들은 바로 그것을 말해주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 스웨터의 먼지를 털어주던 할머니, 그 할머니의 무거워 보이지 않는 가방을 메주던 할아버지, 2년 된 결혼 반지를 수줍게 밝은 미소로 자랑하던 두 노인의 얼굴, 부부는  밥과 같은 존재라던 아저씨의 말씀 속에서 인연이란 사랑보다 깊은 그 무엇 어디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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