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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세 명, 우리도 세 명, 미팅 할까?

[이란 여행기26] 연애장소로도 이용되는 이맘광장

등록|2009.05.15 12:25 수정|2009.05.15 12:25

▲ 이맘광장에서 게임을 하며 놀고있는 우리 집 큰 애와 작은 애. 날씨가 좀 쌀쌀한 편이었는데 멋 부린다고 옷을 너무 가볍게 입은 것 같다. ⓒ 김은주


▲ 이맘광장의 분수대. 더울 때는 50도까지도 올라가는 여름에 이 분수대 앞은 장사진을 이룬다고 한다. 그런데 겨울이라 한산하다. 앞에 보이는 돔은 쉐이크로폴라모스크이다. ⓒ 김은주


이맘광장을 향해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와 애들은 인도에서 걷고 있었는데 차도에서 다른 차를 추월하며 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가는데 거기에 타고 있던 남자는 창 밖으로 상반신을 내놓고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말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높은 걸로 봐서 질문보다는 놀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로는 그의 스타일도 한몫 했습니다. 많은 이란의 젊은 남자들이 좀 긴 머리를 무스로 세우고 몸에 꼭 끼는 바지에 가죽점퍼를 입고 다니는데, 이 남자도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요란스럽게 멋을 부린 모습이었지요.

'날라리'로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은근히 경계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우리가 한참 걷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또 우리 옆을 쌩하고 지나갔습니다. 이 남자 때문에 평화롭게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란의 다양성 중 하나가 바로 젊은 남자들입니다. 도대체 지극히 종교적인 나라에서 젊은 남자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나타난 사람들 마냥 이상한 복장을 하고, 또 행동 또한 건들건들했습니다. 모든 이란의 젊은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들의 모습이 워낙 눈에 띄니까 마치 대부분의 이란 젊은 남자들이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냈습니다.

▲ 이맘광장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여학생 중 한 명이다. 우리 큰 애 나이가 14살이고, 이 여학생은 16살이니까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데도 마치 아가씨와 어린 애의 차이처럼 나이차가 많아 보이는 게 신기하다 ⓒ 김은주


애들과 함께 좀 전에 봤던 그 날라리 같던 젊은 남자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이맘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광장은 조금 한산했습니다. 몇 사람이 보이긴 했지만 천안문 광장 다음으로 넓은 이맘 광장의 넓은 잔디밭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요. 겨울이라 광장은 조금 쓸쓸하고 황량한 느낌조차 들었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은 추워보였습니다. 광장에는 마차가 몇 대 서 있었는데 돈을 받고 광장을 한 바퀴 도는 모양입니다. 애들에게 타지 않겠냐고 했더니 추워서 싫다고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황량하고 사람도 없고 쓸쓸한 광장이지만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사람들이 몰려나와 소풍을 즐기는 곳입니다. 이란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연못도 있습니다. 물론 수영장 스타일 연못인데 이맘광장의 규모에 걸맞게 굉장히 컸고, 겨울이지만 물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맘광장으로 내리는 따뜻한 햇볕이 좋았습니다. 이스파한이 이란의 중부에 있어 테헤란 보다는 따뜻했지만 그래도 겨울인지라 바람에 찬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따뜻한 햇볕은 마냥 좋았습니다. 그래서 햇볕을 쬐며 광장 잔디밭에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이란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 하나라는 이맘 모스크는 이맘 광장 서남쪽에 위치해 있고, 알리카푸 궁전은 이맘광장 서쪽에,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는 동쪽에, 그리고 이스파한 최대 시장인 보졸그 바자르의 유명한 벽화가 그려진 출입문은 북쪽에 있습니다. 이 모든 유적지가 다 이맘광장을 중심으로 배치돼 있기에 우리는 잔디밭에 앉아서도 이스파한의 명소를 다 감상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래되고 여전히 아름다운 건물에 취해 15세기를 헤매고 있을 때 아침처럼 또 현대의 이란인이 끼어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여학생들입니다.

여학생들은 외국인인 우릴 보자 다가왔습니다. 나도 영어 못하지만 여학생들도 거의 단어를 나열하는 수준인데 단어도 아는 게 몇 개 안됐습니다. 그 몇 개의 단어로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이름이 뭐냐, 나이가 몇 살이냐, 하고 나니까 할 말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함께 찍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면서 헤헤 웃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학생들이 우리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와 얘기하면서도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마침내 찾은 모양입니다. 두리번거리던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귀엣말을 하고, 또 다른 한 명에게도 귀엣말을 하고,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웃으면서 좋아했습니다.

▲ 이맘광장을 둘러싼 가게에서 본 기념품. 이스파한이 이란에서 가장 기념품을 사기 좋은 장소라는데 이곳은 정말 많은 물건이 있었다. ⓒ 김은주


▲ 이맘광장 가게에서 수작업으로 기념품을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 ⓒ 김은주


이유는 저 쪽에 있었습니다. 우리와 얼마 안 되는 곳에 아침에 봤던 청년 비슷한 스타일로 옷을 빼 있는 젊은 남자 애들이 세 명 서서 이 여학생 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눈치로 봐서 이들은 예전부터 아는 사이는 아니고 여기 와서 눈이 맞은 모양이었습니다.

아마도 너희 세 명이지, 우리도 세 명이니까 짝이 맞네, 오늘 우리 미팅이나 할까, 뭐 이런 상황 같았습니다.

그들 청춘 남녀의 연애사업에 우리 가족이 어색하게 끼어 있는 꼴이었습니다. 그래서 눈치 빠른 난 얼른 작별 인사를 하고, 이맘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가게들 쪽으로 걸었습니다. 이맘광장이 시민의 휴식처뿐 아니라 청춘남녀의 연애 장소로도 이용되는 모양입니다.

이맘광장 주변에는 수공예품 등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파는 가게가 즐비합니다. 이 가게들 또한 이맘광장의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우린 천천히 걸으면서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엽서를 두 장 사고 마우스 카펫을 두 장 샀습니다. 이스파한에서만 살 수 있다는 세밀화가 그려진 타일을 사서 거실 벽에 붙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이 많은데 벌써부터 짐을 무겁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이스파한에는 이란의 그 어떤 곳보다도 살만한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이스파한이 이란에서 가장 수공예기술이 발달한 곳이니까 기념품도 많은 것이지요. 특히 타일이 유명하다고 했습니다.

돌아다니다 피곤해졌는지 애들이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거려서 이맘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서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애플파이를 사서 먹었습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맘광장을 내려다보니까 세상의 절반을 가진 것 마냥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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